외국인 노동자 100만명 시대 ②

우선순위 밀린 외국인 노동자 '인권' … 법안 심사 제자리

2018-11-01 10:54:51 게재

1년 만에 상임위 통과한 기숙사환경 개선법, 법사위서 제동 … 경기 침체로 외국인 노동자 처우개선 꺼내기도 어려워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은 외국인 노동자의 기숙사 환경 개선을 골자로 하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열악한데다 위험하기까지 한 외국인 노동자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인권을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개정안에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용자가 갖춰야 할 요건에 기숙사 기준에 관한 사항을 추가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숙사 설치 및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담겼다. 제대로 된 기숙사를 제공받지 못한 경우엔 외국인 노동자가 다른 사업이나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외국인 노동자, 특히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주거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몇해 전부터 농·축산업 외국인 노동자 중 상당수가 냉난방장치나 화장실 등 기본적인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박스 등에서 생활하는 현실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지속적으로 개선 요구가 있어왔다.

하지만 이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1년이 지난 올 9월에서야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다시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려 언제 처리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법과 함께 처리돼야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가운데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처벌조항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면서 법안심사 2소위에 회부된 탓이다. 자구만 심사하는 1소위와 달리 내용을 다시 검토하는 2소위로 넘어간 법안은 가까운 시일 내에 통과되기가 쉽지 않다. 외국인 노동자와는 상관없는 내용으로 근로기준법 개정안 처리가 막히면서 외국인근로자 고용법 개정안까지 발목이 잡힌 셈이다.


◆외국인 처우 개선 위한 법 발의했지만 = 외국인 노동자가 100만명을 넘어 이들 없이는 우리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됐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우리사회의 차별은 여전하다.

열악한 근로 및 생활환경, 낮은 노동인권 의식 등 개선해야할 점이 많다. 외국인 근로자와 공존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법 개정을 통해 이들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하고 노동인권을 제도화해야 한다.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국회의 입법 노력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 들어 발의된 법안 중 외국인 노동자의 권익보호와 처우개선을 위한 법안은 7~8개 정도에 그쳤다. 대부분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도 이용득 의원 발의 법안이 유일하다.

자유한국당 김명연 의원이 2016년 9월 대표발의한 '외국인주민 집중거주지역 지원 특별법'은 지난해 7월에서야 상임위에 상정됐는데 그 이후 별다른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 법은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해 다문화가족과 외국국적 동포들이 집중 거주하는 지역의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매년 외국인주민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해 5년마다 외국인 집중거주지역 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중앙·지방 정부가 주민 지원시설과 편의시설 등을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발의한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 개정안도 2년 가까이 상임위에서 잠자고 있다. 외국인 여성노동자를 상대로 한 성범죄가 많은 현실을 고려해 외국인 취업교육 내용에 성폭력·성매매·성희롱 예방과 피해자 보호에 관한 사항 등을 포함시키는 것이 골자다. 논란의 여지가 별로 없는 법안이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심사가 늦어지고 있다.

◆명칭 변경도 쉽지 않아 = 법안 명칭을 바꾸거나 내용을 구체화하는 비교적 단순한 법안도 진행이 더디기는 마찬가지다.

자유한국당 문진국 의원은 지난해 1월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차별금지 사항을 '임금, 근로시간, 복리후생 및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근로조건'으로 구체화하는 법안을 내놨다. 또 민주당 유승희 의원은 같은해 4월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 명칭을 '외국인근로자 고용과 보호에 관한 법'으로 바꾸고 법의 목적에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권익을 보호한다'고 명시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의 목적과 조항을 명확히 해 실효성을 높이자는 취지인데 두 법 모두 1년 넘게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서형수 의원이 지난해 2월 내놓은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 개정안도 지지부진하다. 이 법은 직업안정기관에 노동자단체·사용자단체·외국인근로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권익보호협의회를 두고 외국인근로자의 사업장 변경에 관한 사항, 외국인근로자와 사용자간 갈등해소방안, 외국인근로자의 권익보호와 처우개선에 관한 사항 등을 협의하도록 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사용자가 제공하는 기숙사 기준을 마련하고 외국인근로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민주당 정성호 의원이 올해 8월 발의한 '재한 외국인처우 기본법 개정안'도 통과가 불투명하다.

정부 출연금과 보조금, 외국인으로부터 걷은 수수료와 과태료 등으로 이민·통합기금을 설치해 재한외국인의 인권보호와 사회적응지원 등에 사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 기금 설치에 대해 부처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까닭이다.

◆최저임금·근로시간 단축 이슈에 밀려 = 외국인 노동자 관련 입법이 부진한 것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 근로시간 단축 등 최근 노동 관련 굵직한 현안이 많아 우선순위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또 20대 국회 출범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대통령 선거, 지방선거 등 정치일정이 잇따르면서 전반적으로 법안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진국 의원실 관계자는 "올해만 해도 지방선거에다 하반기 원 구성 등 정치일정이 많아 법안을 차분히 심사하기 어려웠다"며 "특히 환경노동위원회의 경우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과 근로시간 단축 등 다른 이슈가 많다보니 외국인 노동자와 관련한 법안 심사가 늦어졌다"고 말했다.

어려워진 경제상황도 외국인 노동자 관련 법안에 대한 관심을 줄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서형수 의원실 관계자는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아무래도 국내 근로자 보호에 더 관심을 두게 되고 외국인 노동자의 권익이나 처우 개선에 대해선 이야기하기가 어려워진 분위기가 있다"며 "그러다보니 외국인 노동자 관련 법안 심사도 뒤로 밀리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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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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