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 이후 한국에선 그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 일각에선 ‘페미니즘 리부트(재부상)’라고 부르는 페미니즘 붐 현상. 운좋게도 그 날 그 자리에 있지 않아 살아남았을 뿐 그 여성이 나였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은 여성들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고 이는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수많은 추모 포스트잇으로 가시화됐다. ‘묻지마 살인’이라는 이름 아래 은폐될 뻔했던 젠더 담론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순간이었다. 이후 각계의 성폭력 고발과 미투운동은 어쩌면 필연처럼 이어졌다.
여성학 연구자인 두 저자는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를 이끄는 또는 그 흐름 속에서 태어난 한국의 페미니즘 그룹 10개(활동가 28명)의 목소리를 담았다.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자유발언대를 진행한 일로 시작된 페미몬스터즈, 여성주의 정당 탄생을 목표로 활동하는 페미당당, ‘천하제일 겨털대회’와 상의 탈의 시위로 유명세를 탄 불꽃페미액션,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분투중인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이다. 여성 혐오적이고 소수자 감수성이 부족한 인터넷 정보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인터넷 백과사전을 쓰고 있는 페미위키, 가부장적 교회 질서와 문화를 허무는 믿는페미 등의 목소리도 만날 수 있다.
인터뷰에 응한 활동가들은 한국에서 최전선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삶이 쉽지만은 않다. 가부장적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다수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 ‘프로불편러’처럼 딴지를 거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갈아 넣으며 마모되고 백래시에 꺾이고 지친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럼 그들은 멈출까? 아닐 것 같다. 나만 불편하고 예민한게 아니었다는 깨달음을 넘어 그 불편함을 편들어 줄 사람들이 생겼고, 그럼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앞으로도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실패를 만날 용기와 이유가 생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