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최초 바다 생존수영 훈련 | 전남 신안군 도초초교

바다에 둥둥 뜬 아이들 "생존수영이 뭔지 확실히 알았어요"

2019-09-17 11:39:07 게재

세월호 사고 이후 아직도 흉내만 … "권장 사항 아닌, 의무교육으로"

사고날까 벌벌 떠는 시도교육청·학교 … 공통 매뉴얼 없어 제각각

"바다에 들어갈 때 파도가 치고 물이 차가워서 좀 무서웠어요. 그런데 강사 선생님들이 지켜줘 안심이 됐어요(5학년 송민지). 수영장(운동장에 설치한 조립식 수영장)에서 배운대로 호흡법을 했더니 물에 떴어요(6학년 박효빈)." "몸이 조류에 조금씩 떠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옆에 있는 친구 손을 잡고 동그랗게 원을 만들었더니 신기하게도 몸이 파도를 타는 것을 경험했어요(6학년 이미진)."
바다에서 누워뜨기 실전훈련을 하는 전남 신안군 도초초교 학생들. 아이들 대부분은 10분 이상 바다에 누워 파도를 타며 호흡법을 익혔고, 조류에 밀리지 않도록 서로 손을 잡고 타원형 대열을 유지했다. 이날 구명조끼나 물에 뜨는 구호장비는 사용하지 않았다.


바다에 눕거나 엎드려서 밀려오는 파도를 타던 아이들은 한참을 지나서야 강사들의 부름을 듣고 백사장으로 나왔다. 아이들은 10~15분 이상 스스로 바다에 떠 파도에 몸을 맡겼다. 얼굴을 타고 넘는 파도는 자연스럽게 호흡을 하면서 넘겼다. "쌤, 저 몇 분 동안 떠 있었어요?" 밖으로 나온 아이들 얼굴에는 웃음과 자신감이 넘쳤다.

전남교육청이 섬 지역 아이들을 위한 '찾아가는 생존수영' 교실을 열었다. 섬 지역에 수영장을 설치한 것은 전국 최초다. '섬 아이들은 수영을 잘 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다. 수영장이 없는 농산어촌 아이들에게도 균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신안군 도초도 아이들은 생존수영을 배우려면 배를 타고 목포까지 나가야 한다. 그러나 3시간짜리 체험형 생존수영은 스스로 물에 뜨지 못한다.

바다 입수전 몸풀기는 기본.


전남교육청이 앞서 발빠르게 움직였다. 과거와 달리 수영 경험이 부족한 농산어촌 지역 아이들이 익사 사고에 더 취약함을 인지하고 대안을 마련했다. 이기봉 부교육감은 "수영장이 턱없이 부족한 지역에 효율성이 높은 '찾아가는 생존수영'을 보급하고 교육 내용을 체계화시켜 나가겠다"며 '생명 지킴' 교육에 강한 의지를 밝혔다.

◆ 수영장 교육 마친 아이들, 바다생존수영에 도전 = 도초초등학교에 설치한 생존수영 훈련장을 찾았다. 운동장 한쪽에 높이 6m. 길이 20m. 폭 15미터짜리 에어돔을 세웠다. 에어돔 안에 설치한 조립식 수영장은 길이 10m, 넓이 5m로 초등학생 20여명이 한꺼번에 들어가 교육을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안에는 남녀 구분한 탈의장과 샤워장 시설까지 갖췄다. 날씨에 따라 실내 온도와 수온을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학교 운동장에 설치한 수영장에서 이론과 실기 교육을 배우는 학생들.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매일 단계별 생존수영과 위기상황 대처방법을 익혔다.


도초도에 조립식 수영장을 세우자, 학교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관심을 보였다. 소문이 퍼지자 도초도를 거점으로 비금초교, 비금동초교, 비금중학교와 인근 유치원 아이들까지 도초초교로 몰려들었다. 8월 19~9월 11일까지 4주간 진행된 생존수영 집중교육에 참여한 학생들은 230여명. 4주 동안 900여명이 조립식 수영장에서 훈련을 받은 셈이다. 처음엔 도초-비금도 유치원 아이들은 교육과정에 없었다. 학부모들과 지역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유치원 생존수영 교육시간을 편성했고 아이들과 부모들은 교육과정에 크게 만족했다. 섬 거점지역에 조립식 수영장을 설치하고, 인근 학교 학생들이 모두 참여하는 높은 효율성을 보인 것이다. '저비용 고효율'의 조립식 수영장의 진가를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에 대한 공포심을 극복한 아이들은 수영장을 놀이터 삼았다. 호흡법을 배운 아이들은 물속에서 보물찾기나 잠수를 하며 교육과정을 익혔다. 수영장에서 실기와 이론을 배운 아이들은 바다로 나가 실전훈련에 도전했다. 강사들도, 학부모도, 교직원들도 긴장한다. 이세은 도초초교 교장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아이들이 물에 대한 공포심을 날려버릴 수 있도록 놀아주고 스스로 물에 뜰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 교장은 아이들이 가까운 바다에 나가서 실전훈련을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줬다. 전국 최초의 바다 생존수영 교육인 셈이다.


◆ 물에 뜨지 못하는 생존수영, 언제까지 = 교육부는 '찾아가는 생존수영'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사고 발생시 아이들이 스스로 물에 뜰 수 있는 실전에 강한 교육과정을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시도교육청은 쉽게 나서지 못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생존수영 열풍이 불었지만, 교육의 질은 낮았다. 아직도 시도교육청들은 수영장에 아이들을 맡기는 구조다. 수영장 시설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부실한 교육내용은 아이들을 물에 띄우지 못한다. 수영장 교육의 한계는 1년에 4시간이라는 짧은 교육시간과 의무교육이 아니라는 점에서 5년째 한발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생존수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의무교육이 아니라는 점이다. 교육기본법상 '안전사고 예방' 규정에 따라 초등학교 3~4학년만 의무교육 대상이다. 정부는 초등학생 대상 '생존수영 의무화'를 강조하지만, 실제는 권장 사항이다. 교육시간도 10시간 중 4시간만 생존수영 교육을 받도록 했다. 따라서 현장에서 운용과정은 제각각이고 공통 매뉴얼도 없다. 교육부는 전문성이 높은 기관을 위탁기관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택할 것을 강조하지만, 시도교육청은 귀를 열지 않는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따로' 노는 셈이다.


도초초교에서 4주간 생존교육을 진행한 장동립 대한문화체육교육협회장은 "실내 수영장 교육만으로는 익사 사고에 대비할 수 없다. 사고가 발생하는 강이나 바다에서 실전훈련을 하는 것이 가장 큰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며 "국가가 나서 생존수영을 권장 사항이 아닌 의무교육으로 확정해야 아이들의 소중한 목숨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초유치원 학부모는 "생존수영 배운다고 목포까지 나갔는데 알고 보니 수영장 구경만 하고 온 셈"이라며 "내년에는 학교 운동장에 설치한 조립식 수영장에 학부모들도 함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숫자에만 집중하는 시도교육청 = 4시간짜리 생존수영은 물에 들락거리는 체험형으로 끝난다. 누가, 어떻게, 무엇을, 가르칠지 공통 매뉴얼이 없다. 학교는 영법 수영에 능한 수영장 강사들에게 의존한다. 그러다 보니 사고가 발생하는 강이나 호수, 바다에 관한 교육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시도교육청은 예산 편성에 따른 생존수영 대상자 늘이기에 열중한다. 시도교육청은 올해 3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편성하면서 생존수영 대상자를 126만명으로 계산했다. 지난해 104만명에서 대폭 늘린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교육의 질은 담보하지 못한다.

수영장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생존수영을 배운 아이들은 강이나 호수, 바다에서 사고를 당하면 대부분 사망한다. 스스로 물에 뜨지 못할 뿐 아니라,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학부모들과 학교장, 교육청 담당자들의 무지와 사고시 책임회피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는 게 현장 교사들의 증언이다. 따라서 학부모와 학교 간부들이 위기상황 대처능력을 함께 배워야 한다는 게 강사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찾아가는 생존수영' 집중교육은 스스로 물에 뜨는 기술만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친구 관계가 좋아지거나, 학교생활 자신감도 함께 얻는다는 것. 주지은 강사는 "4주 동안 생존수영 교육을 하면서 아이들 스스로 자신감을 키우거나,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침착하게 행동하는 기량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신용운 도초초교 체육담당 교사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생존수영 교육이 아닌 체계적인 프로젝트 학습으로 이루어지는 생존수영 교실을 통해 학생들의 물속 생존능력이 향상 되었다"며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의 효과로 학생들이 바다에서도 생존수영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생존수영 교육은 큰 의미가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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