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민 200여명 아직도 체육관 텐트 생활

2019-11-14 11:09:22 게재

'11.15 포항 지진' 2년, 피해현장 가보니

"빚더미에 앉았는데 고작 1천만원 지원"

지진 피해보상 특별법은 국회에서 낮잠

포항지진 발생 2년이 지났지만 주민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진이 할퀸 상처는 곳곳에 그대로 남아있다. 정부가 지열발전소의 촉발지진 즉 '인재'라고 판정했는데도 책임지는 주체는 없고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고통은 심해지고 후유증과 상처도 아물지 않고 있다.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성곡 3리는 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규모 5.4의 포항지진 진앙지와 가깝고 지진을 촉발한 지열발전소와는 불과 1㎞정도 떨어져 있는 자연부락이다. 이 마을은 당시 포항지역 자연부락 가운데 가장 많은 지진피해를 입었다. 이 마을 40여가구 가운데 10여가구가 완파됐다. 반파와 담장붕괴 등을 합치면 마을 전체가 성한 곳이 없을 정도였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체육관에는 포항지진 발생 2년이 지났지만 200여명의 이재민들이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진 최세호 기자


◆1년 6개월 콘테이너 생활 끝내고 빚내 집지어 = 12일 오후 2년만에 다시 찾은 성곡 3리는 깔끔하게 정리된 시골 전원주택단지 같았다. 무너지고 기울어진 집들은 새집으로 바뀌었다. 마을 입구의 고급 2층 슬라브 주택자리에는 1층짜리 집이 새로 들어섰고 가장 피해가 심각했던 마을 안쪽 김 모씨의 1층 적벽돌집도 오간데 없고 별장같은 새집이 지어져 있었다.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갈라졌던 마당에는 국화꽃과 잔디가 심겨져 지진 흔적은 없었다. 지진 발생 후 집에서 대피하다 마당에 쓰러졌던 할머니의 집에도 새집이 세워졌다. 폐허였던 마을은 외견상 여유로와 보였다.

그러나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의 속은 타고 있었다. 2년이 지났는데도 지진의 충격과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회관에서 쉬고 있던 3~4명의 주민들은 지진 관련 불평과 원망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성이 난 한 할머니는 "성곡3리 마을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극단 행동을 하겠다고 좀 써달라"며 지난 2년동안의 고생담을 털어놨다.

여섯식구가 오붓하게 살던 집이 하루 아침에 붕괴되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5평 남짓 콘테이너집에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복년(73) 할머니는 "지진후 전파보상금 900만원과 철거무료, 설계비 일부 등만 지원받았다"며 "콘테이너집에서 1년 6개월 정도 살다가 참다 못해 은행빚을 내 올해 4월 집을 지었는데 70대에 지진 때문에 빚만 떠안게 됐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새로 집을 지은 주민들은 집터를 담보로 5000만원에서 9천만원의 대출을 냈다"며 "늙어 돈벌이도 할 수 없어 대출금에서 이자몫으로 일부를 떼어 뒀는데 4년뒤부터 원리금을 갚을 때가 되면 은행에 집을 빼앗길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또 다른 할머니는 "집단 소송비 10여만원의 분담금도 아까워 소송에도 참여하지 않았지만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보상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며 한탄했다.

흥해체육관은 2년전 상황과 같았다. 이곳의 이재민들은 더 악에 받쳐 있었다.

◆악에 받친 흥해체육관 이재민 = '누구하나 죽어야 해결되나? 엉터리 정밀안전점검 이재민은 두 번 운다, 눈 감은 정부·귀 막은 포항시, 약속 저버린 포항시장 물러나라' 등의 현수막이 이재민들을 대변했다. 주로 흥해읍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의 목소리다. 바로 옆 사용불가판정에 따라 임시주택으로 이주한 대성아파트 4개동과 달리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은 정밀안전진단 결과, '소파'(시설물 안전등급 C)로 판정난 것을 수용할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주민들은 1심에서 패소해 항소 중이다.

체육관안에는 이재민이 거주하는 소형텐트 223개가 설치돼 있다. 체육관 실내 바닥과 2층 관중석까지 텐트가 빼곡해 숨막힐 지경이었다. 한미장관맨션 주민 등 96가구 213명이 장기거주하고 있다.

한미장관맨션은 아슬아슬했다. 아파트 옥상 환기구가 금이 가 부서질듯했고 외벽 출입구 주차장에는 아파트 외벽의 낙하물에 대비해 안전망이 설치돼 있다. 안전망 아래로 출입하는 주민과 주차된 차량이 위험천만해 보였다.

건물이 기울고 심하게 손상돼 주거불가판정을 받은 대성아파트 6개동 가운데 4개동은 지진 이후 빈집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 출입이 차단된 아파트단지 내부는 을씨년스럽다. 쓰레기가 나뒹굴고 잡초와 수목이 무성했다. 육안으로 봐도 기울어진 E동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경북도와 포항시는 특별재생지역으로 지정된 흥해지역의 전파공동주택 6개단지 483가구와 상가 2곳에 대해 보상을 진행중이다. 12일 현재 67.5%인 326가구의 보상을 끝냈고 올해말까지 보상을 완료할 계획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소파로 판정된 건수가 전체 5만6000여건에 달해 특별법 제정 등의 법적인 조치가 마련되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강덕 경북 포항시장은 13일 포항지진 2주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포항지진 특별법을 하루 속히 통과시켜 줄 것을 거듭 촉구했다.

이강덕 시장은 "지진으로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진 전파주택에도 최대 1400만원이 지원된 게 전부"라며 "소파 주민과 기업, 소상공인 등은 자연재난기준에 따른 주택피해 일부만 보상받는데 그쳤다. 시민들이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 지진발생 이전의 정상생활을 찾을 수 있도록 특별법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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