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 후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 놓고 검찰-변호인 충돌
검찰 "국가 수사권에 대한 중대한 제약"
변호인단 "20~30년전 판결 적용 어려워"
재판부 "기소 후 증거, 법원이 최종 판단"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5촌 조카 조범동씨 피의자신문조서를 증거로 인정받기 위해 1980년대 대법원 판례를 꺼내들었다. 조 씨가 기소된 이후 검찰이 작성한 조씨 피신조서 증거능력에 재판부가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검찰은 "진술조서가 공소제기 후 작성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곧 증거능력이 없다고 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제시했다. 변호인단은 "20~30년 전 판결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며 반박했다.
◆"기소후 진술조서도 증거" =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4부(소병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조씨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 사건 첫 공판에서 검찰 측은 2차 증거목록과 관련해 증거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1984년 대법원 판례를 소개했다. "진술조서가 공소제기 후에 작성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곧 증거능력이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이를 증거로 채택해도 공판중심주의 내지 재판공개의 원칙에 위배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공소를 유지해야 하는 검사로서 피고인이나 참고인을 불러 공판준비 과정에서 신문하는 것은 대법원이 인정한 것"이라며 "피고인 이익을 위한 것이거나 재판 절차 신속성 도모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사기관은 실체 진실 규명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법적 의무가 있다"면서 "그런데 여죄 수사 과정에서 적법하게 취득한 조서를 피고인이 기소됐다는 이유만으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면 국가 수사권에 중대한 제약을 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판례는 수사기관이 대형 수사 때마다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다툴 때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이 판결에 배치되는 판례가 나오지는 않았다.
검찰은 다단계 판매 사기로 악명 높은 '제이유네트워크 주수도 사건'을 예로 들었다. 주씨는 제이유트워크라는 다단계 판매 회사를 세워 2조원대 사기 혐의로 징역 12년을 확정받았고, 최근 추가 범행으로 또 유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다단폐 판매사기의 경우 공범이 수십~수백명에 이르기 때문에 추가 수사를 통해 기소를 한다"며 "단지 그 이전에 기소됐다는 이유로 증거를 내지 못하면 이후 드러난 사실에 대해 면죄부를 받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이어 "소위 거악이라고 할 수 있는 범죄, 반드시 척결되어야 하는 고위층 부정부패 사건에서는 한꺼번에 기소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국민의 생명과 자유 안전을 위해서라도 현행 법률과 기존 대법 판례 취지에 맞는 증거 판단을 해주기 바란다"고 장시간 설명했다.
◆"당사자 대등주의 침해" = 변호인단은 검찰 주장에 반격했다. 조씨 측 변호인단은 "피고인은 18번 수사를 받았고, 기소후에도 11번이나 된다"며 "이례적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법원이 2000년 이후 공판중심주의를 도입하면서 위법 수집 증거에 대해 엄격한 법률 해석을 하고 있다"며 "검찰이 소개한 판례는 선고된 지 20~30년 지난 것 아니냐"며 지적했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제시한 판결을) 일률적으로 저희 사건에 적용하긴 어렵다"며 "특히 당사자 직접 공판중심주의 등 피고인도 기소되면 검사와 동일한 자격, 수사 객체로만 취급한다면 당사자 대등주의에 침해된다"고 강조했다.
또 "이미 기소된 범죄 이외의 새로운 범죄에 대해 조사는 큰 이의 없다"면서도 "이미 기소된 범죄 사실을 기소 후에도 계속 조사를 한다는 것은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고 맞섰다.
검찰이 기소된 이후에 작성된 피신조서, 참고인 조서를 증거로 채택해달라는 요청을 재판부에 했고, 변호인단은 위법수집 증거로 봐 채택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결국 재판부는 "(쟁점이 되는 증거 목록을) 피고인 측이 동의하면 증거로 쓰는게 이론이 없는 것 같다"며 "만약 동의하지 않는다면 다른 증거 능력을 다 갖췄음에도 공소제후에 제출된 증거를 채택할지는 최종적으로 재판부가 판단하겠다"고 정리했다.
◆재판부, 최근 대법 판례에 주목 = 재판부는 특히 최근 정경심 동양대 교수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합의25부와 같은 대법원 판례를 예로 들면서 최종 판단을 재판부에 맡겨달라고 요구했다. 공소제기 후 검사가 작성한 참고인 진술조서의 증거능력 인정과 관련해서는 최근 선고된 대법원 판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 28일 대법원은 "검사가 공소제기 후 참고인을 소환해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기재한 진술조서를 작성해 이를 공판절차에 증거로 제출할 수 있게 한다면, 피고인과 대등한 당사자 지위에 있는 검사가 일방적으로 법정 밖에서 유리한 증거를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당사자주의·공판중심주의·직접심리주의에 반하고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기소후 작성한 참고인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내일신문 12월 13일자 21면 참고)
기소 후 피고인 신문에 대해 대법원은 "진술조서가 공소제기 후 작성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곧 증거능력이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한다.
그러나 천주현 변호사(법학박사)의 저서 '수사와 변호'에 따르면 학계는 대체로 공소제기 후 검사실에서의 피고인 신문을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형사소송법 제200조는 '피의자'신문을 규정할 뿐이어서 피고인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고, 이를 허용한다면 피고인의 당사자지위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수사기관은 충분한 수사시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허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학계 의견이다.
한편 검찰은 조씨의 횡령 및 증거인멸 교사 혐의와 관련해 정 교수를 공범으로 추가하는 내용으로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