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vs 개인정보… 구글, 고객 불신의 벽 어떻게 깰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구글의 더 큰 야심은 이달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윤곽을 드러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20일 보도에 따르면 구글 헬스케어 부문 부사장인 데이비드 파인버그는 이 자리에서 "구글은 10억 이용자를 가진 10개 기업, 50억 회원을 가진 5개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며 "우리는 올해 그같은 회원들의 수십억년 인생을 살렸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아동심리학자 출신의 파인버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의료시스템 기업 '가이징어'의 CEO였다. 그러다 지난해 구글에 헬스케어 사업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고용됐다. 그의 임무는 '구글 브레인'과 '딥마인드'의 의료 관련 인공지능(AI)팀을 구글 사물인터넷 플랫폼 '네스트'의 스마트기기 연구팀과 결합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파인버그 박사가 전자의료기록에 대한 검색엔진과 관련한 첫 번째 프로젝트를 연구하기 시작하자마자 스캔들이 터졌다. 지난해 11월 월스트리트저널은 "구글 엔지니어들이 미국 2위 의료시스템 기업인 '어센션'이 보유한 의료기록에 접근해 새로운 상품을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현재 미국 정부는 구글과 어센션의 협력사업에 대해 조사중이다.
샌프란시스코 컨퍼런스에서 파인버그 박사는 "어센션이 언론에 무슨 말을 하든 간에, 구글은 어세션과 함께 일하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구글이 접근한 개인정보는 보호받고 있고, 어센션과의 협력은 합법적이며, 병원들이 제3자 기술기업과 정기적으로 협력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례"라고 항변했다.
어센션 측은 "구글과 함께 하는 획기적인 작업이 진료 개선에 도움을 줄 것"이라며 "구글은 환자 정보를 마케팅이나 검색 목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FT는 "하지만 구글이 헬스케어 사업의 야심찬 목표에 다가가려면 그같은 난관을 넘어야 한다"며 "어센션과 같은 의료기관엔 '환자 정보를 넘겨달라'고, 환자들에겐 '의료 목적이 아닌 곳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캠퍼스 의대 교수이자, 기술이 의학을 어떻게 바꿔놓는지에 대한 책 '디지털 닥터' 저자인 로버트 왁터는 "구글과 협력을 모색하는 잠재적 기업들이 대중의 비판여론을 걱정하게 되면서 구글의 임무 달성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구글은 자신 앞에 닥친 난관을 정확히 알고 있다. 파인버그 박사는 "우리가 겸손하게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려깊게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기술을 실생활에 접목시키지 못한다면, 그건 우리의 수치"라고 강조했다.
거의 모든 산업을 바꿔놓은 뒤 전 세계 최대 기술기업들이 이젠 '의료 시스템을 혁신하자'며 잇따라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전 세계 의료시장은 8조7000억달러 규모다.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아 나선 구글과 아마존, 애플 등 기술기업들은 의료 부문 혁신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막대한 자금력에 뛰어난 컴퓨팅 파워와 AI 전문가 풀을 갖춘 이들 기업은 능력 면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최근 시가총액 1조달러를 넘어섰다. 아마존은 온라인 약국을 사들였인 데 이어 JP모간, 버크셔 해서웨이와 함께 합작벤처 '헤이븐'을 출범했다. 이들 기업의 100만 직원들을 위해 새로운 건강보험을 출시하겠다는 목표다. 애플의 웨어러블 기기인 '와치'는 개인의 운동 습관과 심혈관 건강을 꼼꼼히 점검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병원과 제약사에 클라우드 서비스를 팔고 있다.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이 건강검진을 관리할 수 있는 맞춤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파인버그 박사의 지휘 아래 구글은 '전 세계 정보를 조직한다'는 주요 임무에 집중한다. 그리고 데이터와 AI, 센서 등의 능력 개선에 초점을 맞춘다.
파인버그 박사는 헬스케어와 기술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고용됐다. 그는 혁신가로 알려져 있다. '가이징어' CEO로서 환자들에게 게놈지도를 그리라고 설득했고 당뇨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맞춤 식단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강식 약국을 열기도 했다.
구글과 알파벳에 산재한 헬스케어 사업들을 한데 통합한 '구글헬스'(Google Health)에 각기 다른 산업 리더들을 영입했다. 전직 보건부 건강정보기술 조정관이었던 카렌 데살보, 전직 미국식품의약국 위원 로버트 캘리프 등이다.
헬스케어와 AI의 역할에 대한 책 '딥 메디신' 저자 에릭 토폴은 "구글이 궁극적인 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진 못했지만, 그 비전은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구글 어시스턴트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구글은 전자의료기록을 스마트폰 정보나 게놈, 포도당 모니터와 같은 센서로 얻은 정보, 식습관을 기록하는 애플리케이션 등에서 얻은 정보 등을 결합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관점에서 보면 구글이 최근 21억달러를 들여 핏빗을 인수하면서 가장 정교한 데이터원천 중 하나를 획득했다"며 "돈을 찍어내는 것처럼 돈을 버는 구글에겐 그같은 인수금액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구글의 클라우드 사업은 어센션뿐 아니라 많은 정보 제공기업들과 연계돼 있다. 오하이오주의 클리블랜드 클리닉, 미네소타주의 마요클리닉 등이다. 구글은 헬스케어 기관들과 협력하면서 특정 의료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구글은 고객의 건강 관련 정보를 흡수하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검색과 위치 이력 이상의 정보다. 핏빗을 비롯해 구글 네스트가 주도한 각종 인수 거래를 보면 구글이 스마트홈을 디지털 헬스 사업을 위한 중요한 관문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병원 밖에서도 환자들을 모니터할 수 있다. 구글은 2017년 '세노시스 헬스'를 인수했다. 이 기업은 마이크를 유량계로 활용해 폐 기능 정보를 추적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하고 있다. '니트 헬스'도 인수했다. 영유아는 물론 성인의 수면 패턴 등을 모니터하는 스마트 기기를 만드는 기업이다.
건강관련 기술을 컨설팅하는 '헬스 어드밴스'의 앤드류 매츠킨은 "구글과 애플은 새로운 기기를 활용해 스마트폰보다 더 가까이 고객에게 접근하려 한다"며 "우울증과 심박변동 등과 같은 상태를 알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 센서가 중요하다"며 "침대맡이나 매트리스 밑에 두는 센서, 화장실 변기와 통합된 센서 등으로, 구글은 비침해적 건강 모니터라 불리는 각종 기기에 특허를 갖고 있다. 변기시트 센서를 통해 심장박동과 혈압을 재는 특허도 구글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파인버그 박사의 임무가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헬스 프로젝트와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알파벳은 생명과학 기업인 '베릴리'와 노화방지 연구회사 '캘리코' 등을 소유하고 있다.
베릴리의 목표는 야심차다. 로봇 수술 또는 신체 이식 가능한 기기가 한 축이고, 이미 일부 시판중인 소프트웨어가 또 다른 축이다. 당뇨병 관리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베릴리는 사노피사와 함께 합작벤처 '온듀오'를 설립했다.
이스라엘 디지털 헬스 기업 '헬시아이오' 대표로, 가이징어와 합작한 요나탄 아디리는 "구글이 꼭 새로운 페니실린을 발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들은 1년에 수억달러를 벌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파인버그는 그런 일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구글의 가장 큰 장점은 데이터 소스를 결합하는 능력과 그것으로부터 배우는 능력이다. 이는 구글 비판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건강 측정 플랫폼으로 기술기업, 제약사에 분석자료를 제공하는 '에비데이션' 대표인 크리스틴 렘케는 "구글의 핵심 장점 중 하나는 비전통적 자료 소스를 활용해 건강을 보다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글은 이미 헬스케어 검색에서 최대 정보 제공자다. 구글은 그런 지위를 활용해 다른 비전통적 데이터를 편입시켜 더욱 개인화된 의료와 치료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며 "하지만 어센션 사례에서 봤듯, 신뢰 문제가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파인버그 박사도 '구글이 언젠가 고객 정보를 의료 정보와 결합할 것'이라는 점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알고 있다. 그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샌프란시스코 컨퍼런스에서 서로 다른 유형의 정보를 혼합하면 의료적으로 장점이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그는 의료 기록과 유전자 정보를 활용해 유방암 검진 엑스레이의 정확도를 개선하려는 구글의 작업을 설명하면서 "서로 다른 유형의 정보를 결합하면 믿을 수 없이 강력한 능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구글은 페이스북이 겪었던 프라이버시 관련 여론의 역풍을 피했다. 하지만 구글 브랜드는 여전히 이용자의 깊고 세분화된 프로필을 구축하고 있다. 이미 많은 병원들은 구글과 함께 일하면서 부정적인 여론에 직면하는 것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디지털 헬스에 초점을 둔 벤처캐피털 '록 헬스' 이사인 빌 에반스는 "광범위한 산업에 파급효과가 있을 것을 우려한다"며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구글처럼 메이저 브랜드가 방금 태어난, 고도의 윤리적 혁신 스타트업보다 더 뛰어나다는 인식이 가져올 사기저하"라고 말했다.
구글은 어센션과의 계약을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실적발표 때 공개했다. 하지만 본인의 자료가 수집되는 많은 환자들은 언론보도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됐다.
어센션 스캔들은 런던 소재 구글의 딥마인드가 영국 국민의료보험(NHS)와 합작했을 때 벌어졌던 논쟁과 비슷하다. NHS를 관장하는 로열프리재단은 2017년 구글이 160만 환자 정보를 명시적 하락 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이유로 영국 정부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딥마인드는 지난해 헬스 관련 부문의 통제를 구글에 이전했다.
고객 정보 쓰임새에 대해 구글과 시카고대는 소송에 걸려 있다. 구글이 검색 제휴를 통해 얻은 익명의 의료관련 데이터를 특정인이라고 재확인하는 능력이 있다는 내용이다. 원고는 구글이 사람들의 스마트폰 위치정보와 의료가 예약된 시간대를 결합해 더 상세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구글은 이같은 연계성을 부인했다. 구글 대변인은 "우리는 헬스케어 검색이 미래 사람들의 인명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우리가 프라이버시를 심각하게 여기는 이유이고, 건강 데이터를 다루면서 관련 법규정을 따르는 이유"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메드 컨피덴셜'의 프라이버시 활동가 샘 스미스는 "고객들이 구글이나 페이스북, 아마존 등이 모든 영역에 개입한 만족할지가 의문"이라며 "그 대답은 '아니올시다'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구글이 누군가의 모든 것을 파악하면서 돈을 벌길 원한다면, 개인이 건강 데이터를 관리하는 것은 아마 무용한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계 일각에선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파인버그 박사 강연 행사를 주최한 '스타트업 헬스' 대표인 우니티 스토아케스는 "구글은 검색과 스마트폰으로 우리 삶 속으로 통합되고 있다"며 "사람들은 이런 기술기업들을 신뢰한다"고 말했다.
구글은 나쁜 악당 중 그나마 최선의 기업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달 초 '록 헬스'의 조사에서 응답자 11%만 기술 기업들과 건강 자료를 공유하겠다고 응답했다(그래프 참조). 하지만 11%의 긍정 응답자 중에서 구글은 가장 신뢰하는 기업으로 나타났다.
구글이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다고 해도 다른 난관에 부닥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구글은 이전에도 한 차례 실패했다. 2008년 전자 의료기록을 전환하려 했지만 좌절했다. 너무 많은 건강 정보가 수기로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글은 효과를 내지 못하는 프로젝트는 접는다. 이달 초 '구글 파이버' 작업을 중단했다. 모든 미국인에게 저렴한 초고속 인터넷 접속을 제공하겠다는 프로젝트였다.
왁터 교수는 2000년대 중반 구글의 자문단이었다. 그는 당시 구글이 헬스케어 사업의 복잡성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구글은 보다 성숙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환자들이 구글을 통해 편두통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검색하고 최고의 의사를 찾고, 최고의 진료를 찾아가는 선진화된 툴을 제공하는 세상을 상상해보자"며 "구글은 이미 주요한 강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글은 본질상 소비자기업이다. 기업들과 거래하는 데 고전해왔다. 그래서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에게 클라우드 컴퓨팅에서 뒤처졌다. 어센션과의 거래 이전에도 일부 잠재적 고객들은 구글과 연합하는 걸 걱정했다. 자신들의 데이터가 상품이 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헬시아이오' 대표 요나탄 아디리는 "실험실이나 이미징 기업 등 소규모 제휴파트너들은 구글이 판매하려는 클라우드 서비스 조건이 너무 좋았다는 점이 오히려 걱정거리였다"며 "자사의 데이터가 구글의 사업에서 큰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구글에 그런 자료를 넘기고 있다는 것을 매우 우려한다"고 말했다.
'헬스 어드밴스'의 앤드류 매츠킨은 "구글이 당장 이를 통해 돈을 벌지 못한다 해도 놀랍지 않다"며 "구글이나 애플이 가진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장기적인 관점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이라며 "그들은 거대한 야망을 갖고 있다. 10년 넘는 시간표를 갖고 이 영역에서 노력을 기울이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