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를 여는 사람들│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원장

환자·의사 서로 신뢰하는 공동체 추구

2020-01-29 11:11:54 게재

3천 조합원, 주치의 진료 받고 경영 주도 … "차별없는 돌봄, 아파도 존엄한 삶에 기여"

5년 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가운데 한국사회는 '전환의 시대'를 요구받고 있다. 그간의 관주도, 돈 중심, 공급자 위주의 보건복지제도 환경에서 벗어나 이용자의 인권과 편의성을 높이며 자주적 참여와 민관협력으로 지역민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갈구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전국 곳곳에서 혁신적 실천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사람과 단체들의 경험을 소개하고 나눠 사회발전의 자양분으로 삼고자 한다. <편집자주>

# 2016년 7월 2일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협동조합)은 살림치과 개원을 위한 회의인 조합원 대토론회를 열었다. 치과 치료비 중 비보험 진료수가를 정하는 것이 이날의 안건이었다. 조합원들은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저렴한 것이 좋지만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저렴하기만 해서는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환자이자 경영자인 조합원들은 긴 논의 끝에 저수가가 아닌 적정한 가격대로 진료비를 책정하게 됐다.

2016년 5월7일 살림치과 열린 개원회의 때 찬반 투표를 하는 장면. 초록은 찬성. 반대는 빨강. 사진 살림협동조합 제공


살림협동조합원이 되면 이런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협동조합의 성격 자체가 조합원이 소비자이자 경영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료만 받아온 일반시민인 조합원들이 의료기관 운영에 참여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추혜인 살림의원 원장에 따르면, 설립 초기에 일반시민인 조합원들이 동네의원과 달리 소유주가 조합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조합운영에도 소유자 입장에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추혜인 원장(오른쪽)과 박인필 살림치과 원장.

시간이 흘러 살림협동조합 안에서 운영 중인 살림의원 내과, 살림치과, 건강혁신(정신건강학과) 살림의원 그리고 운동과 건강증진을 위한 공간인 살림건강센터의 경영, 시설설치, 설비 디자인, 청소관리 등등 모든 일들에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지난 22일 살림협동조합에서 만난 정수경 직원(2019년 입사)은 "조합원들의 활동에 너무 놀랐다. 이렇게 운영되는 회사가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특히 세상에 태어나 좋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많이 만나고 있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람 온기 느껴지는 이웃 생겨 = 조합원인 이동은(2014년 가입) 김정희(2011년 가입)씨들도 "거주공간만 있던 은평에서 사람 온기를 느끼면서 정겹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이웃사람이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조합원들과 여러 모임들을 하면서 너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이들은 다른 조합원들처럼 책읽기, 등산, 반찬 만들기 등 여러 소모임 활동, 그리고 대청소 등 조합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살림협동조합의 직원과 조합원들이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는데, 실제 조합을 설립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일까?

2009년 조합 설립을 처음 제안하고 추진해온 추혜인 살림의원 원장의 애초 욕구는 '의사와 환자가 신뢰하는 환경에서 진료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5월 29일 진행된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2019 건강돌봄학교 프로그램 중 하나인 '잇솔질 돕기'를 실행하는 모습. 사진 살림협동조합 제공


의사와 환자 간의 불신은 '행위별수가제도' 환경 탓에 생긴다고 여겼다. 더 많이 진료하고 더 검사해야 이익을 볼 수 있는 수가체계에서 환자는 의사의 처방이 진료에 필요해서 하는 것인지 수익을 내기 위해서인지 의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찾아낸 협동조합식 의료기관을 세우기로 결심하고 당시 페미니즘 활동을 하던 여러 의료인들과 함께 수년을 준비했다. 지금 3000여명의 조합원이 참여한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으로 성장하게 됐다.

박인필 살림치과 원장은 "추 원장님과 학생 때부터 활동을 같이 했는데, 의료인과 시민들 사이의 신뢰관계가 깨진 시대에 치과의사로서 환자들에게 필요한 치료도 편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설립 당시 이사로 참여한 후 의료협동조합의 의료기관에서 치과의사로서 일하기로 결심했다"며 "조합원들은 환자로서 주치의 진료를 받으면서도 의사나 직원들의 마음고생도 같이 배려해 준다"고 말했다.

추 원장과 박 원장은 조합을 설립 운영하는 과정에서 병원경영과 조합 지속 유지라는 두 가지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게 어려웠다고 밝혔다.

단순히 진료를 잘해서 경영 수지를 맞추는 것, 조합원들이 협동하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 등 다양한 활동에 대해 정확하게 측정하고 평가하면서 실행하는 모든 것들이 새롭고 도전적인 과제였다고 한다.

이런 난제를 해결하는 데는 결국 조합원들의 집단지성과 적극적인 참여가 도움이 됐다고 이들은 밝혔다.

지난해 6월 22일 서울혁신파크에서 진행된 '살림10원칙 운동회' 마지막 율동 장면. 사진 살림협동조합 제공


◆주치의에 맞는 별도 수가체계 필요 = 살림협동조합 의사들은 조합원들의 주치의로서 진료한다. 주치의는 환자의 건강과 질병관리를 연속적으로 담당하면서 필요할 경우 다른 의료자원을 연결하는 활동을 한다. 또 환자 가족과 지역사회 의료복지 환경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추 원장은 "가족통합적으로 진료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살림의원과 치과 상호 의뢰를 하기도 하고 운동처방·영양상담을 일대일 혹은 그룹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의원 왕진과 치과 방문 구강관리도 있다.

박 원장은 "일반적인 주치의와 달리 살림협동조합에서 진행되는 주치의적 진료의 다른 모습은 '조합원들의 참여'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75세 어르신께 방문 구강관리를 하러 갔는데, 어르신보다 간병하는 따님의 상태가 더 좋지 않았다. 치과로 와서 치료받아야 할 상황이었지만 호흡기를 달고 있는 어르신 곁을 한시도 떠날 수 없었다. 이때 간호사 면허가 있는 조합원이 어르신을 몇 시간 돌봐 드리겠다고 참여하면서 따님의 치과치료를 진행할 수 있었다.

추 원장은 팀주치의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사람의 의사가 오랫동안 환자를 맡다보면 익숙함과 친함 속에서 병을 놓칠 수 있다. 이 때 다른 의사가 새로운 시선으로 함께 진료 함으로써 주치의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추 원장은 또 "주치의제는 환자의 의료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증명돼 있다"며 "환자와 상담시간이 길면 그만큼 환자의 의료 외적인 부분에서 해결책을 찾는 경우들이 많다. 행위별 수가체계가 아닌 주치의에 등록한 환자의 경우 별도의 수가체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사회 뿌리내리는 돌봄 강화 계획 = 추 원장은 앞으로 살림협동조합의 활동에서 '돌봄 강화'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살림협동조합은 '차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겠다'는 지향을 갖고 있다.

대개 의사들은 병원진료가 환자 건강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추 원장과 박 원장은 달리 말했다.

돌봄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의료만으로는 힘들다는 것. 욕창이 자꾸 생기는 환자에게 찾아가 드레싱을 하고 약을 바른다고 해서 그 욕창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주자주 기저귀를 바꿔주고 체위를 변경하고 영양상태를 개선하는 등 적절한 건강 돌봄이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의료인은 환자가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 있게 도와주고 조언해 주는 조력자일 뿐이다. 건강관리의 주체인 자기 자신, 가족 그리고 지역사회가 건강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살림협동조합 살림의원과 치과 등에 진료를 받으러 간 비조합원 시민들도 조합활동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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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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