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제약사들은 보건보다 돈이 우선?
2020-07-07 11:10:20 게재
코로나19 치료제를 둘러싼 논란
영국 NHS 소속 지역보건의이자 '데이터 조작 : 의학적 조언과 헛소리를 구별하는 법'(Doctoring Data - How to Sort Out Medical Advice from Medical Nonsense) 저자인 맬컴 켄드릭은 6일 러시아 국제보도 전문채널 'RT' 기고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매일 산더미 같은 의학 정보가 쏟아진다. 정면으로 모순되는 정보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커피는 몸에 좋다'고 한 연구결과가 나왔다가 다시 '몸에 나쁘다'는 논문이 등장한다. 그러다 조금 지나면 '아니다, 몸에 좋다'는 식의 정보가 지겹도록 되풀이된다.
켄드릭은 의약계에 제약사를 등에 업은 데이터 조작이 횡행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만의 주장은 아니다.
1812년 창간된 '뉴잉글랜드의학저널'에서 20년 넘게 첫 여성편집장을 지낸 마르시아 안셀 하버드 의대 교수는 2009년 이렇게 말했다.
"임상연구 논문의 상당수를 더 이상 믿기 어렵다. 믿을 만한 의사 또는 권위있는 의학 가이드라인이 내린 결론을 난 더 이상 의지할 수 없다.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게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편집장으로 20여년을 지내면서 천천히 그리고 마지못해 도달할 결론이다."
하지만 현 상황은, 안셀 전 편집장이 토로한 10여년 전보다 더 악화됐을 수 있다. 켄드릭에 따르면 지난 5월 영국 런던에서 저명한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모여 코로나19 대처 관련 토론을 벌였다. 철저한 익명성을 지키기 위해 채텀하우스 규칙이 적용된 녹취 금지 토론이었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었다. 프랑스 전 보건장관이자 세계보건기구(WHO) 차기 사무총장 후보로 거론되는 필립 두스트 블라지는 5월 31일(현지시간) 프랑스 24시간 뉴스채널인 'BFM TV' 대담에 출연해 해당 비밀토론의 발언들을 발설했다.
그에 따르면 의학저널 '랜싯'(The Lancet)과 '뉴잉글랜드의학저널' 편집장은 거대 제약사들의 범죄적 영향력을 비판했다. 랜싯 편집장 리처드 호턴은 '우리는 더 이상 임상연구 데이터를 게재할 수 없을 것 같다. 오늘날 제약사들은 금전적으로 너무 막강하다. 우리에겐 방법론적으로 명백히 완벽한 논문들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약사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론 내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뉴잉글랜드의학저널 편집장은 이를 '범죄'(It's criminal)라고 표현했다.
뉴잉글랜드의학저널과 랜싯은 전 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의학저널이다. 1812년과 1823년 각각 창간됐다.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논문이 얼마나 많이 인용됐는지를 나타낸 '영향력지수'는 2018년 기준 각각 70.670, 59.102다. 대표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41.063)와 '네이처'(43.070)보다 높다. 이들조차 조작된 연구논문을 가려내기 힘들다고 토로하며 그 배경에 도사린 거대 제약사들을 비판한 것.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친 이후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연구, 새로운 데이터, 새로운 정보가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공개되고 있다. 하지만 꼼꼼한 검토를 거의 또는 아예 거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누구를,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항말라리아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여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치료제로 치켜세운 바로 그 약이다.
켄드릭에 따르면 지난 수년 동안 수많은 연구결과에서 클로로퀸이 바이러스의 세포 침투를 억제하고, 일단 세포 안으로 들어올 경우 바이러스의 복제를 간섭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작용원리는 클로로퀸이 말라리아 기생충의 적혈구 진입을 막는 데 도움이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많은 연구자들은 클로로퀸이 코로나19와 관련해 경천동지할 정도는 아니라 해도 일부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게다가 클로로퀸은 '사이토카인 폭풍'을 줄여주는 데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나왔다. 이는 바이러스 등 외부 병원체가 인체에 들어왔을 때 체내 면역 물질인 사이토카인이 과도하게 분비돼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면역 과잉반응 현상을 말한다. 이는 코로나19엔 치명적인 반응이다.
클로로퀸의 안정성만큼은 철저히 입증됐다. 인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처방되는 약 중 하나다. 수십억건의 처방이 이뤄졌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일반의약품으로 이용가능하다. 때문에 코로나19 바이러스에 항말라리아제를 시험해보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도 큰 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초기부터 클로로퀸을 시험한 연구자들이 있었다. 프랑스 언론 '코넥시옹'의 3월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대학병원 연구소 '메디테라네 인펙션' 소속 디디에 라울 교수가 코로나19에 클로로퀸을 처방했고, 시험 6일 만에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것을 막는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전했다.
모로코월드뉴스는 6월 22일자 보도에서 프랑스 릴대학 자와드 제모리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유럽에서 클로로퀸을 처방했다면 코로나19로 인한 죽음의 78%는 막을 수 있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인구 3600만명의 모로코는 대략 미국 인구의 1/10 수준인데, 확진자는 1만79명 사망자는 214명에 불과했다. 모로코는 클로로퀸을 적극 사용했다.
제모리 교수에 따르면 클로로퀸을 사용할 경우 코로나19 회복률이 82.5%에 달하고 치명률은 2.1%에 그쳤다.
반대 결론에 다다른 연구결과도 있었다. 지난 5월 22일 의학저널 랜싯에 '클로로퀸이 코로나19 사망자를 늘린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하지만 해당 데이터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게다가 저자들이 항바이러스제를 만드는 거대 제약사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해 자료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랜싯의 호턴 편집장은 해당 논문을 철회됐다.
그리고 나서 영국에서 '클로로퀸의 효과가 전무하다'는 논문이 나왔다. 코로나19 치료제를 대상으로 무작위 추출평가를 이끄는 옥스퍼드대 마틴 랜드레이 교수의 연구였다. 그는 "클로로퀸은 코로나19 치료제가 아니다. 효과가 없다. 클로로퀸의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다른 연구자들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다. 클로로퀸이 긍정적 효과를 내기엔 너무 늦게 투여됐다는 지적이었다. 시험 대상 환자들 중 많은 이들이 이미 산소호흡기를 부착한 상태였다.
한편 '국제감염질환저널'에 실릴 예정인 논문에 따르면 클로로퀸이 환자의 치명률을 크게 낮춘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 CNN은 "미국 미시간주 헨리포드 헬스시스템이 6개 병원에 입원한 2541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3월 10일부터 5월 2일까지 시험한 결과 클로로퀸을 처방한 환자 13%가, 그렇지 않은 환자 26%가 사망했다"고 전했다.
켄드릭은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이익 충돌(conflicts of interest)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클로로퀸은 1934년부터 사용된 일반의약품으로, 60정 한통에 7파운드 정도다. 클로로퀸을 맹비난해야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 매우 비싼 항바이러스제를 만드는 기업들이 있다.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만드는 '렘데시비르'의 경우 미국에서 5일치 처방을 받으려면 2340달러를 내야 한다. 둘째, 백신을 먼저 개발하려고 내놓으려고 분투하는 기업들이 있다. 여기에 수십, 수백억달러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켄드릭은 "거대 제약사의 입장에서 클로로퀸과 같은 저렴하고 안전한 약은 도움이 안된다"며 "연구자들과 거대 제약사들 간의 금전적 관계를 끊어내지 않는다면, 연구과정과 결과에서의 불미스러운 상황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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