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디지털의 배신
디지털 사회, 이면을 생각하다

마켓컬리에서 새벽에 배송받은 샐러드로 아침을 먹는다. 궁금한 주제가 있을 때면 유튜브에 들어가 영상들을 재생하며 정보를 얻는다. 배달앱으로 시킨 점심을 먹고 나면 쿠팡에서 산 물건들의 포장을 뜯어 정리한다.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이다. 그런데 과연 디지털로 이뤄진 세상은 편리하기만 할까. 유튜브알고리즘에 의해 선정된 콘텐츠들로 인해 나와 생각이 다른 콘텐츠를 볼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닐까. 집까지 음식을 배달한 라이더의 고단한 플랫폼 노동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
새로 나온 책 '디지털의 배신'은 디지털에 의해 변화하는 사회의 이면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인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학과 교수는 기술 사회 문화가 상호 교차하는 접점에 비판적 관심을 갖고 연구, 저술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이 플랫폼으로 수렴
가상의 데이터 논리가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피지털(physital)'이라고 한다. 디지털 고유 논리는 때론 현실세계로 들어와 인간과 사물을 통제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대표적 사례는 플랫폼 기업이다. 공유 플랫폼들은 사용하지 않는 재화나 서비스를 필요한 이들에게 효과적으로 공급하고 중개한다.
그런데 플랫폼은 시장논리에서 무관하다고 여겼던 거의 모든 것들을 플랫폼으로 가져온다. 우리에게 익숙한 상호부조의 전통은 임시직 노동 플랫폼으로, 아는 이들끼리 숙박과 음식을 나누던 문화는 에어비앤비로, 자동차 동승문화는 우버와 카카오택시 카풀이 됐다. 이와 같은 플랫폼 기업들은 상생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미 악화된 노동상황을 더 위태롭게 만들고 가상의 별점과 평점을 동원해 실물자산에 영향을 미친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플랫폼들은 어떨까. 이용자들은 자발적으로 플랫폼에 문화콘텐츠를 생산해 업로드하지만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받지 못한다. 유튜버로 유명해지는 소수의 인플루언서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대다수는 무급의 데이터 생산 문화노동자들로 전락한다. 특히 청년들의 불안정한 노동 상황이 악화될수록 그들은 자발적으로 플랫폼에 접속해 자유시간에 '그림자 노동'을 수행한다.
맞춤형 동영상을 추천하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에도 비판 지점이 있다. 최적화된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반면, 낯설고 타자화된 문화들을 배제하게 한다.
플랫폼 노동에 관심을
최근 우리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노동형태 중 하나는 플랫폼 노동이다. 공유경제에서는 누군가 시간 노동 서비스 상품 등 남는 자원을 빌려주고 빌리면서 시장을 최적화한다. 플랫폼 기업은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고용에 대한 부담도 지지 않는다. 노동자는 개별 사업자(비정규직 프리랜서)의 지위로 플랫폼 운영자와 계약을 맺는다.
책은 플랫폼 노동문제를 해결할 다양한 대안들을 제시한다. 우선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인권을 보호해야 한다.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플랫폼 노동에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서로 다른 이해당사자들의 중재를 계속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를 위해서는 플랫폼 사업자들의 인식전환과 함께 시민들의 플랫폼 노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 새벽 배송은 편리하지만 사실, 공식적으로 배달노동을 24시간 동안 일어나게 하는 체계임을 시민들도 알아야 한다.
법적 근거 없는 '안심밴드'
책은 코로나19와 관련해서도 언급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물리적 비접촉과 격리가 일상이 되면서 삶은 더욱 기술이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때문에 기술을 어떻게 사회에서 활용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예컨대 확진자의 동선을 드러내는 방식은 사회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에 근거해 감염자 감염의심자 접촉의심자 자가격리자까지 신용카드 사용명세, 진료기록부, 휴대전화 기록, 상세 위치 정보 등을 합법적으로 수집하고 활용할 수 있다. 해외에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비상사태에 여러 기술을 도입하고 있지만 확진자의 이동 동선을 파악하는 감염동선 위치추적 방식을 도입하는 데 대해서는 나라마다 판단이 갈린다. 독일의 경우 이와 같은 방식의 위치 추적을 개인에 대한 기본권 침해로 인식하고 있다.
또 정부는 4월 방역수위를 높여 '안심밴드'라는 더 논쟁적인 위치추적 장치를 도입했다. 저자는 범죄자가 아닌 시민에게 위치추적 장치를 착용하게 하는 것은 선례가 없으며 법적근거 없이 도입이 결정된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외에도 책은 생태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첨단산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첨단기업들의 책임감을 논한다. 또 시민 스스로 기술의 사회적 도입과 적용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문제를 제기할 '데이터 시민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