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댐·한탄강댐 '우수', 화천댐·군남댐 '주의'
북한강·임진강 수계 댐들, 홍수조절 성적표는?
평화의댐·한탄강댐은 홍수기 전에 저수위 유지 … 화천댐 만수위 유지, 군남댐은 되레 홍수 키워
북한강·임진강 수계 최상류 댐들은 이번 수해 때 어떤 역할을 했을까? 8월 초 장마전선과 제4호 태풍 '하구핏'에 의한 지속적인 강우로 북한강 수계 댐 유입량이 현저히 늘었다. 춘천댐 의암댐 청평댐 팔당댐은 이미 수문을 개방하고 수위조절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먼저 평화의댐을 보자. 최악의 홍수가 발생한 8월 5일 평화의댐은 최고수위 189미터를 기록했다. 계획홍수위 265미터에서 한참 여유가 있는 수위였다. 이날 평화의댐은 유입량 2900톤/초에 방류량 2180톤/초로 초당 800톤 이상 홍수를 조절했다.
상류에 있는 북한 금강산댐이 얼마나 많은 저류 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평화의댐은 '5공정권의 대국민 사기극'이란 오명을 벗고 이번에 홍수조절댐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한강홍수통제소 관계자는 "평화의댐은 수문조작장치가 없는 단순 저류용댐"이라며 "상류에서 많은 물이 내려오면 물을 가두었다가 4개의 수로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하류로 물을 방류한다"고 설명했다.
수로에 수문이 없으니 평상시에는 흐르는 강물을 전혀 가두지 않는다. 2억6000만톤 저수용량만큼 홍수조절을 하는 셈이다. 14일 오전 평화의댐 위에서 보니 상류 하류 모두 누런 흙탕물이었지만 홍수 피해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화천댐은 8월 4일부터 방류 시작 = 평화의댐 물은 곧바로 하류 파로호로 흘러든다. 파로호는 화천댐이 만든 호수다. 한수원이 운용하는 화천댐은 평상시 수력발전 전용으로 사용한다.
한수원(주) 한강수력본부(본부장 정헌철)에 따르면, 화천댐은 8월 3일부터 홍수조절을 위해 화천댐 수문방류를 시행했다. 화천댐 수문방류는 3년 만에 처음으로 화천댐은 3일 오후 4시부터 수문 16개를 24미터까지 열어 초당 874톤을 방류했다.
한강수력본부 관계자는 "올해 4월 한강홍수통제소와 체결한 '발전용댐 다목적 활용' 협약에 따라 댐의 다목적 활용을 시범운영하고 있으며, 홍수기 수문방류 등에 있어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중"이라고 밝혔다.
과연 적극적인 대응을 했을까? 화천댐은 이번 홍수 전에 해발 166미터 수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2일 유입량이 초당 115톤으로 늘었지만 화천댐은 방류량을 평상시처럼 초당 22톤으로 유지했다. 3일 저수율 67%에서 제한수위 175미터 코밑인 174미터까지 수위가 올라갔다. 이런 상황에서 초당 1895톤의 물이 상류에서 유입됐다.
수문을 열어 초당 114톤까지 방류량을 늘렸지만 수위는 계속 올라갔다. 5일엔 초당 3370톤의 물이 유입됐고 방류량을 2597톤으로 늘렸지만 수위가 179미터까지 올라갔다.
14일 오후 화천댐 상류에서 만난 장복동 비수구미마을 이장은 "올해부터 화천댐을 다목적댐으로 운영을 한다더니 장마철 전에 수위를 전혀 낮추지 않았다"며 "보통 모내기철이 지나면 마을로 들어오는 잠수교가 물 밖으로 드러나 차량통행이 가능한데, 올해는 한번도 잠수교가 드러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탄강댐 담수로 재인폭포 물에 잠겨 = 15일 오전 한탄강댐 바로 위 재인폭포에는 물에 잠겼다 다시 드러난 폭포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재인폭포 문화관광해설사는 "한탄강댐 담수로 재인폭포가 두번이나 물에 잠겼다"며 "안내소 컨테이너박스가 물에 둥둥 떠서 진입도로 위로 겨우 건져서 옮겼다"고 말했다.
한탄강댐 수문그래프를 보면 5일 수위는 102미터, 계획홍수위 114미터에서 조금 여유가 있는 정도까지 물을 가두었다. 이날 유입량은 초당 2957톤, 방류량은 1823톤이었다. 한탄강댐의 저수용량은 2억7000만톤. 홍수기 전까지 저수위인 47미터를 유지했으니 대부분의 저수용량을 홍수조절용으로 쓴 셈이다.
한탄강 상류 철원군 이길리 생창리 일대 침수피해와 관련해 한탄강댐 담수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일부 의혹은 사실과 달라 보인다. 한탄강 옆 이길리는 해발 195미터, 김화 남대천 옆 생창리는 해발 227미터 높이다. 한탄강댐 최고수위 102미터와는 높이나 거리 차이가 너무 크다.
윤한순 이길리 마을 사무장은 "한탄강댐 담수와 여기 수해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5일 오후 3시에 한탄강 제방이 범람했는데, 그 전날부터 강우량과 상관없이 한탄강 수위가 오르락내리락했다"고 말했다. 북한 쪽에 비가 많이 온 탓에 한탄강과 김화 남대천이 범람해 이길리와 생창리 일대가 침수됐다는 얘기다.
윤 사무장은 "군사정부 시절 전시행정으로 한탄강이 범람하는 홍수터에 마을을 조성한 것이 상습침수 피해로 나타나고 있다"며 "현재 마을 주민 65가구 중 대부분이 마을 이전에 찬성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길리 생창리 마을과 인근 하천의 해발고도 차이는 2~3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홍수조절댐이 되레 홍수피해 키워 = 15일 오후 찾아간 임진강 본류 군남댐은 고요한 상태였다. 10일까지 초당 6000톤을 쏟아내던 엄청난 방류는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의 양이 줄면서 일단 멈추었다.
군남댐은 임진강 수계의 홍수를 조절하기 위해 만든 홍수조절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댐이 이번 홍수기 내내 유입량과 똑같이 방류를 했다. 6일에는 초당 9200톤 유입에 방류량 9800톤을 기록했다.
5일에는 수위가 40미터까지 올라가 홍수기 제한수위를 7미터나 넘겼다. 댐 상류 삼곶리 일대가 침수됐다. 방류량이 늘어나면서 하류 왕징면의 농지나 음식점까지 침수됐다. 홍수조절댐이 홍수조절은커녕 되레 홍수피해를 키운 셈이다.
김경도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 전문위원은 "군남댐은 애당초 만들지 말았어야 할 댐"이라며 "북한에 있는 임진강 수계의 큰 댐들을 홍수조절용으로 활용하는 남북 협력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한강홍수통제소 관계자는 "북한쪽 정보는 접근할 수도 없고 필승교 수위 데이터만 군부대에서 통보받아 수문 개방을 하고 있다"며 "군남댐은 소규모 홍수조절용댐이라 이번과 같은 큰 홍수에는 제대로 대응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임진강과 한강 하류의 홍수터가 사라져 제방 범람 등 홍수 위험이 높아졌다는 지적도 있다.
노영대 임진강생태학교 교장은 "장단반도 일대의 임진강과 한강 홍수터에 제방을 쌓고 논으로 만드는 바람에 불어난 강물이 갈 곳이 없어졌다"며 "군남댐이 최대방류량을 하류로 내보내는 상황에서 한강 하류에서 큰 밀물이 올라오면 엄청난 홍수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상존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