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재벌개혁,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
일명 ‘공정경제 3법’에 대한 심의가 국회에서 시작되었다. 공정거래법에서 소위 총수일가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금지 조항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상법에서는 다중대표소송 제도 도입과, 이사회 내의 감사위원 최소 1명을 분리해서 선출하면서 대주주 측의 지분율 중 3%를 넘는 부분에 의결권을 제한하도록 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런 공정경제 3법은 ‘재벌개혁’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법안으로 생각되지만 사실 그렇게 ‘개혁적’인 내용은 아니다.
재벌규제법에도 경제 집중도 높아진 이유
물론 전문경영이냐 가족경영이냐를 선택하거나 그 우열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 회사법은 전문경영을 전제로 만들어졌지만, 현실은 대부분 가족경영 방식이다. 법에 커다란 공백이 있다는 얘기다. 어떤 구멍일까?
전문경영 방식에서는 경영자가 주주나 회사가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결정(예를 들어, 고액 연봉을 위한 단기이익 추구 등)을 하는 것이 문제고 이것을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주주 가족의 직접 경영에서는 이런 문제가 없는 반면, 오히려 대주주들이 회사를 이용해서 일반 주주들이 아닌 자신의 부를 극대화하기 위한 결정 (‘사익추구’라고 불리는 행위)을 막아야 하는 것이 회사법의 중요한 목표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후자가 중요하고 후자의 관점에서 법이 발전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회사법은 주로 이사회 강화나 주주대표소송 등의 관점에서만 제도개선이 논의되어왔는데 이는 전문경영에서의 문제 해결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회장’으로 일컬어지는 개인 대주주가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법의 공백을 이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회사의 부를 개인 대주주 것으로 만드는 데 기업 역량이 많이 투입되어왔다.
물론 지난 25년 동안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한 수많은 재벌(규제)법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오히려 경제력 집중도는 높아지고, 재벌 가족들의 기업 지배력은 더 강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공정경제 3법과 같이 법이 더 치밀하게 개정되면 문제는 해결될까? 필자는 회의적이다. 처음부터 법의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가장 중요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의 이해상충 방지라는 ‘알맹이’를 쏙 빼놓고 재벌규제 논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사가 대주주 이해 치열하게 논의해야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법은 일감몰아주기와 같은 거래에서 가격이 시가보다 더 비싼지 싼지, 물량이 너무 많은지 그렇지 않은지 문제에 매몰되어서 다른 문제를 거의 보지 못했다. 구체적인 지분율 요건을 바꾸면 회사들은 다시 개인 대주주들을 위해 요건을 피해나갈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공정거래법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사실 이것은 회사법의 가장 중요한 문제다. 때문에 이 문제를 판단하고 책임을 질 사람 역시 바로 회사의 의사결정을 하는 ‘이사’여야 한다. 주식회사, 특히 상장회사의 이사가 개인 대주주 가족들과 관련된 거래를 심의할 때 단지 회사의 손실만 없으면 아무런 고민 없이 승인해도 되는지, 아니면 개인 대주주들에게 특별히 이익이 되는 거래임에도 승인할 경우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하는지 이런 문제들을 치열하게 논의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가족경영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의 기업에서 벌어지는 개인 대주주와 일반주주들 사이의 이해상충에 관한 법의 구멍을 메우는 기초를 세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