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명성황후 평전·이상설 평전·서재필 평전·유인석 평전
명성황후·이상설·서재필·유인석 재조명
인문사회과학계 중진연구자 4명이 대한제국의 명성황후 이상설 서재필 유인석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평전이 나왔다. 한국근현대학술총서사업의 첫 결실로 모습을 드러낸 4권의 평전은 '대한제국 정치리더 연구'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희주 서경대 문화콘텐츠학부 교수의 '명성황후 평전'은 명성황후의 출생부터 1895년 일본의 칼에 죽음을 맞을 때까지 연대순으로 기술했다. 시아버지 대원군과의 대립갈등 관계와 민씨 세력의 거두로 인식돼온 기존의 분석을 정면으로 반박한 대목이 눈에 띈다.
명성황후를 직접 만난 외국인의 저서와 명성황후의 편지글을 소개한 저자는 "좁게는 명성황후에 대한 재평가이기도 하지만, 넓게는 굴절된 역사인식을 재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박민영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이사는 독립운동가 이상설을 '독립운동의 대부'로 소개하면서 1906년에 북간도 용정에 민족주의교육의 요람인 서전서숙을 열고 이듬해 6월에는 이준 이위종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대한제국 최후의 구국외교를 펼친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이상설은 미주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전열을 정비하고 러시아 연해주 한인사회에서 십삼도의군 성명회 권업회 등을 주도했다. 1917년 임종시엔 '시신을 화장하고 일체의 자료를 불태우라'는 유언을 남기도 했다. 저자는 "조국과 민족으로 체인화된 독립운동가의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이황직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학부 교수는 서재필에 대해 '시민 정치로 근대를 연' 인물이라고 평가해 다소 생경한 시각을 보였다. '자주적 개화 → 독립 → 민주 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는 한국사를 주도적으로 개입한 정치 리더였다는 분석이다. 서재필은 '과정과 수단 자체를 민주화하여 많은 사람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실천한 인물로도 부각됐다. 저자는 소년 서재필의 출계 배경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통해서 혁명가와 고학생을 오가는 청년기 독립적 삶의 심리를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서재필의 '라디오 방송 강연'의 실체를 밝혀냈다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윤대식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네르바교양대학 교수는 '유인석 평전'에 '자존의 보수주의자'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정치지성이라는 프레임으로 위정척사를 대표했던 유인석의 삶이 조망됐다. 유인석은 화서 이항로의 위정척사로부터 출발했지만 외연을 확장해 '민족'이라는 정치적 주체로 재탄생시키는 사상적, 실천적 전환을 보여줬다. 윤 교수는 "그의 삶에서 나온 민족관념과 자기책무의 빛, 동시에 그것이 드리운 중화와 사대의 그림자는 우리나라 민족주의의 정신적, 사상적, 실천적 연원에 내재한 자주와 사대의 길항관계를 투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