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진보정당 돌파구는
"위기 아닐 때 있었나 … '과감한 정책'으로 정면돌파해야"
세대교체 상징 당대표, 성추행으로 물러나
시대정신 담은 차기 대표 선출이 최대 관건
"내년 지방선거 겨냥, 진보정책 제시해야"
진보정당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제3 정당인 정의당이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위기는 김종철 전 대표의 장혜영 의원 성추행사건에서 시작한 게 아니었다. 정의당의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은 연동형비례대표제를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보인 정의당의 정체성 논란부터 수면 위로 올라왔다. 노회찬-심상정으로 이어지는 진보정당 1세대의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심상정 전 대표가 후선으로 물러났고 정의당 내에서 주류였던 인천연합계파가 당대표 자리를 내줬다.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컸다는 의미다.
◆성추행은 마무리하겠지만 = 당대표의 성추행은 '사건'이었다. 정의당에 따르면 성추행 사건은 지난달 15일 저녁 여의도에서 일어났고 피해자인 장 의원이 지난 18일 당 젠더인권본부장인 배복주 부대표에게 사건을 알렸다. 배 부대표는 당사자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결과가 대표단에 공식 보고된 것은 25일. 그 사이 일주일간 당 지도부 등은 '최선의 해법'을 찾으려 했다. 결론은 '개인이 아닌 당차원의 해결, 피해자 공개, 가해자 고발 없이 당기위 제소' 원칙이었다. 성추행 문제는 충격적이었지만 피해자의 '일상 복귀'를 위한 실명 공개, 가해자의 즉각적인 인정과 당대표 자진사퇴 등은 '새로운 선례'로 주목받기도 했다. 활빈당의 검찰고발로 친고죄 논란까지 빚고 있지만 해결수순으로 접어드는 모습이다. 류호정 의원의 비서 해고과정과 근무환경 등이 불거지면서 정의당의 또다른 정체성인 '노동문제'가 부각되기도 했지만 당 차원의 조사를 진행하기로 하는 등 초동 진화에 나섰다.
◆정의당식 해법은 = 정의당의 해법은 대형 사고에 '당 지도부 전원 사퇴, 비대위 구성'로 이어지는 일반적 행태와 다소 달랐다.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강은미 원내대표는 배복주 부대표를 포함해 황순식 경기도당 위원장, 문영미 인천시당위원장, 노창섭 현 경남도당위원장을 비대위원으로 임명했다. 지도부가 사실상 수습에 나선 것이다. 그러고는 정의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빠른 사태 수습과 조직문화 개선을 이루겠다"며 "코로나 민생 위기 극복 등 현안에 대한 과제 또한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교수는 "정의당이 뭔가 수습책을 만들고 수습성과를 내려고 하면 안된다"면서 "국민들이 정의당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봐야 한다"고 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장)은 "정의당이 다른 정당들 방식의 위기 타개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지금은 위기관리능력이 중요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사람을 바꾸고 대책을 마련해 '혁신의 형식'을 갖추는 데에 에너지를 소모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묵묵히 '정면 돌파' = 전문가들이 내놓은 해법은 김종철호가 추진해온 '과감한 정책'이다. 김 교수는 "정의당이 창당 이후 최대의 위기를 처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진보정당이 위기가 아닌 적이 언제 있었느냐"면서 "노회찬 의원처럼 스스로를 반성할 계기와 방식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노회찬 정신은 구체적이고 실행적이어야 한다"고도 했다. 이어 △민주노동당 시절 17대 국회 초기 신용카드대란과 관련한 한나라당과의 민생연대 △이명박 정권 시기의 민주당과의 '선거연합' △정의당 시절의 '데스노트'와 민주평화당과의 원내교섭단체 구성 사례를 제시하며 "독일 녹색당과 같은 대안정당처럼 사회민주당과 밀착해 의제를 공급하다 연정파트너가 될 것인지, 양대정당 사이를 오가며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경첩정당'이 될 것인지 등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또 민주노동당 시절 17대 총선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던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슬로건이나 부유세, 상가임대차 보호법, 무상의료, 무상급식, 장애인 이동권 보장 등 진보성 짙은 정책을 내놔야 한다는 얘기다. "정의당은 한층 더 과감하고 발칙해야 한다. 좀 더 근본적인 사회변혁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서 연구원은 "진보정당은 앞선 정책을 제기해놓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것이 대중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젠더, 기후 등 내년에 제기될 시대정신을 읽고 제시하는 등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아젠다 선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21대에 거둔 중대재해기업법에 이어 코로나 손실보상 특별법, 전국민 소득보험제 등으로 이어지는 정책 승부수만이 '생존의 길'이라는 얘기다.
◆생존 가를 '차기 지도부' = 비대위는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절차에 당장 들어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당대표만 뽑을지, 모든 지도부를 다시 뽑을 지도 명확치 않다.
다만 수면 밑에 있었던 계파간, 세대간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전국위원회 등을 거쳐 드러났다. 오랫동안 진보정당을 지켜온 당원들과 최근에 합류한 당원들 간의 괴리가 작지 않다는 점도 확인됐다.
따라서 비대위뿐만 아니라 차기 지도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세대 교체'의 흐름을 역행하지 않을 것인지, 결국 기존 계파의 힘겨루기로 변질될 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차기 당권과 관련 김종철 전 대표에 무릎을 꿇은 후보들의 재등장, 장혜영 의원 등 신진세력의 도전, 과거 지도부에서의 재진입 등 다양한 방식으로 물밑에서는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 연구원은 "정의당엔 퇴로가 없다"며 "차기 지도부가 시대의 흐름에 맞는 변화와 새로운 어젠다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럴 역량과 의지가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과제인 인재 양성에 대해 김 교수는 "진보적 성향의 학자, 전문가들과 같이 하는 데 역량과 재원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고 서 연구원은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한 만큼 (잠재적 리더들에게) 꾸준하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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