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런 바퀴벌레와 거미 모형 소포로 보냈어도 '협박죄'
대구지법, 항소 기각
바퀴벌레와 거미 모형을 보냈어도 형법상 협박죄에 해당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법은 정보통신망법 위반 및 협박으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 A씨 항소를 기각했다.
30대 여성인 A씨는 2018년 4월 한 종교단체 회관에서 알게 된 피해자 B씨가 자신에 대해 연락하지 말라고 하자 앙심을 품게 됐다. A씨는 4회에 걸쳐 B씨가 다니던 회사 홈페이지에 적시돼 있는 이메일로 B씨가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말 등을 해서 피해를 줬다는 등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
반복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공포심을 느끼게 할 만한 부호, 문자, 영상 이미지를 보내면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해당한다. A씨는 2017년 12월 B씨 휴대전화에 "진짜 욕 나오게 하네요" 등 48회에 걸쳐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문자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보냈다.
이도 모자라 A씨는 B씨에게 2018년 5월 대구 남구 한 우체국에서 "안녕하세요? 부장님 여태 연락을 취하고 카톡을 보내고 소리를 치고 싸우려 했던 이유가 부장님을 너무 사랑해서 그랬습니다. 마음을 좀 받아주시고 알아주시면 안 될까요? 작은 것이지만 제 마음을 받아 주세요. 사랑합니다. 부장님"이라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혐오감이 드는 바퀴벌레와 거미의 플라스틱 모형을 박스에 넣어 소포로 보냈다.
1심은 A씨의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불안감조성 문자) 혐의와 협박 혐의를 모두 인정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이에 A씨는 항소심에서 "B씨 욕설에 대응해 이메일 또는 메시지를 전송한 것으로 정보통신망법 위반의 점은 정당행위에 해당해 위법성이 조각되고, 바퀴벌레 및 거미 모형이 박스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보낸 것으로 협박의 고의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구지법은 A씨의 행위 동기 등을 고려하면 정보통신망법 위반 부분이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협박 고의가 없었다는 A씨 주장도 배척했다. A씨가 B씨에게 수차례에 걸쳐 욕설 등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B씨 직장 홈페이지에 비방글을 게시해 오는 등 관계가 좋지 않았던 점, 택배 박스에는 A씨 편지 외에 바퀴벌레와 거미 모형만이 담겨 있어 이를 직접 포장한 A씨가 모형이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는 점. 편지 말미에 '작은 것이지만 제 마음을 받아 주세요'라고 적혀 있고, 이는 '바퀴벌레와 거미 모형'을 보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점 등을 들어 A씨 주장이 이유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 양형 부당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천주현 변호사(법학박사)는 8일 "이 사건에서 정보통신망법위반죄가 성립함에는 별다른 의문이 없으나, 혐오스런 곤충 모형을 소포로 보낸 것이 협박죄에 해당하는지는 상급심에서 사안마다 달리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와 일반인 입장에서 생명·신체에 대한 공포심을 느꼈다고 볼 수 있는지에 관한 법률적 판단이 갈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천 변호사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