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반도체 산업, AI반도체 개발 불꽃경쟁
지배적 강자 없는 초기 단계 … 미국은 기업, 중국은 정부가 주도
반도체는 일정한 명령어가 입력된 시스템반도체와 데이터를 저장하는 역할만 하는 메모리반도체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시스템반도체다. 대표적인 시스템반도체는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 스마트폰 두뇌 역할을 하는 어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이다. 최근 수급난으로 국내외 자동차 공장을 멈추게 만든 자동차용 반도체도 시스템반도체다.
최근 미국 중국 EU 등 반도체 기술력 내재화에 나선 선진국들이 관심을 쏟고 있는 것도 시스템반도체다. 그 가운데에서도 AI반도체는 가장 주목받고 있다.

미국은 인텔 애플 엔비디아 등 거대 기술기업을 중심으로 기술개발이 활발하다. EU도 최근 반도체 수급난을 겪으면서 반도체 산업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수년 전부터 반도체굴기에 나선 중국은 정부 주도로 산학연관이 힘을 합쳐 독자적인 AI반도체 기술력 확보에 나선 상태다.
한국 정부도 AI반도체를 반도체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한 핵심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 'AI반도체 산업 발전전략'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정부는 당시 전략발표에서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은 아직 지배적 강자가 없는 초기 단계"라며 "지금부터의 국가적 대응 노력이 글로벌 주도권 경쟁의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라고 전략 수립배경을 설명했다.
◆엔비디아·인텔·애플 AI반도체 선점 경쟁 = AI반도체 개발에서 가장 앞서 있는 것은 미국계 거대 IT기업들이다.
엔비디아 인텔 등 시스템반도체 업체들은 신제품을 잇따라 선보이며 시장을 이끌고 있다.
엔비디아는 지난 4월 12일 데이터센터용 중앙처리장치(CPU) '그레이스'와 자율주행차용 칩 '엔비디아 드라이브 아틀란'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그레이스는 AI와 고성능컴퓨팅(HPC) 기술을 접목해 인텔이나 AMD 제품에 비해 10배 빠른 성능을 낸다. 이에 맞서 인텔은 4월 7일 '아이스레이크'라는 데이터센터용 CPU를 공개했다. 이 제품은 자체 개발 기술을 이용해 보안과 AI 기능을 향상시킨 것이 특징이다. 전작 대비 평균 성능이 46% 향상됐다.
모바일 AP 강자인 퀄컴은 지난해 9월 서버용 고성능 AI 추론 가속기 '퀄컴 클라우드 AI 100'을 출시했다.
기존 반도체 업체가 아닌 IT 기업들도 거대 자본을 기반으로 유망기업 인수, 인력유치 등을 통해 AI반도체 시장 선점에 나섰다.
우선 애플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업체 TSMC와 함께 자율주행전기차용 AI반도체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해 4세대 인공지능칩(TPU)를 발표했고, 지난 3월에는 전 인텔 프로세서 개발 임원을 서버칩 설계담당 부사장으로 채용했다.
이 외에 페이스북 아마존웹서비스 테슬라 등도 AI반도체 관련 조직을 신설해 자체 칩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 정부주도 산학연관 생태계 구축 = 중국은 AI반도체 산업을 반도체 자립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AI반도체 산업 육성을 국가의 존망이 달린 핵심사업으로 본다. 이에 따라 베이징 상하이 심천 난징 항저우 청두 등 6곳을 거점으로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이 가운데 베이징 상하이 심천 3대 지역이 핵심이다.
미국이 기업 중심으로 AI반도체 개발에 나선데 반해, 중국은 정부주도로 산학연관이 뭉친 것이 특징이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에 따르면 중국에는 현재 대략 50곳 내외의 인공지능 반도체 기업들이 설립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5곳 내외의 대기업을 제외하면 모두 중소기업 내지 스타트업이다. 중국 AI반도체 스타트업은 주문형반도체(ASIC)에 연구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품 적용분야는 데이터센터 스마트폰 자동차 사물인터넷 등 다양하다. 대표적인 AI반도체 기업으로는 자율주행차 이미지 인식용 AI반도체를 개발하는 '호라이즌 로보틱스'가 있다. 이 업체는 지난 1월 4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받는 등 주목받고 있다.
한편 한국은 수출의존형 경제 구조에서 반도체 수출비중이 과도하게 높은 것이 문제다. 한국은 수출입 규모가 GDP의 80%를 넘는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국내 총 수출(5382억달러) 가운데 반도체가 18.4%(992억달러)를 차지했다. 단일 품목으로 단연 1위이다.
반도체 수출에서 메모리반도체 비중이 높은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메모리 시장 주력인 D램에서는 70%,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는 4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선 상황이 다르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시스템 반도체 53%, 메모리 반도체 28%, 개별소자 부문 18%로 나누어진다. 한국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선 3% 정도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난의 주요 원인인 차량용반도체 수급에 대한 대책을 정부와 업계가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최첨단 반도체 개발과 생산에 주력하고 낮은 수준 반도체는 새로운 비즈니즈 모델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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