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마약오염국 | ② 재범률부터 줄이자

"마약류 중독, 40·50대 조폭에서 20·30대 청년·여성으로"

2021-04-28 11:40:04 게재

인터뷰 - 천영훈 인천 참사랑병원 원장

폭발적 증가세에 밀려드는 환자 감당 안될 정도

상습투여인구 50만명 추정 … 사실상 통제불능

치료보호조건부 기소유예, 사후관리 제대로 안돼

사진 이의종

우리나라의 마약중독 치료현장은 사실상 황무지다. 법상으로는 마약류 중독자들의 치료보호와 사회복귀 촉진을 국가가 책임(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제2조의2)지도록 했지만 실제로는 부족한 인프라 등으로 소수의 병원에 집중적으로 환자가 몰리는 구조다. 정부의 예산지원도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면 치료할수록 병원은 재정난에 시달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최근 몇년새 마약류가 일상에 스며들면서 중독환자 증가세가 가팔라지자 일선 진료 현장의 부담은 더 커졌다.

천영훈 인천 참사랑병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21일 내일신문과 인터뷰에서 "진료실 상황만 봐도 숨이 턱 막힐 정도다. 입원은 시킬 수도 없고 진료예약만 두달 이상 밀려 있다"면서 "밀려오는 환자들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천 원장은 마약류 중독 전문가로서 수년간 중독환자들을 치료해왔다.


■지난해 검거된 마약사범 숫자가 1만8050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솔직히 이렇게 빨리 늘어날 줄 생각도 못했다. 5년 만에 거의 2배가 됐는데 그야말로 미친 증가율이다. 마약지수라는 게 있어서 적발된 마약사범의 20~30배 정도를 상습투여인원으로 본다. 1만8000명 기준으로 생각하면 거의 50만명 정도가 상습투여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상 통제불능상태다. 만약 알콜이나 도박중독이 이 정도로 늘었다고 한다면 정부나 언론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였을 텐데 마약중독에 대해선 치료해야 할 환자라기보다는 범죄자로 보는 시각 때문에 이슈가 되지 않는다. 연예인이나 재벌가 뉴스가 나왔을 때나 자극적으로 소비할 뿐이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마약류 중독 증가세를 실제 느끼나.

진료실 상황을 보면 정말 심각하다. 진료예약만 두달치 이상 밀려 있고 입원은 시키지도 못한다. 2016년만 해도 마약류 중독 환자가 61명이었는데 지난해는 10배 이상 늘어 700명에 육박했다. 밀려드는 환자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현장에서 보는 마약류 중독 환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예전에는 마약 하면 40·50대 조폭, 아니면 아예 돈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거리에서 마주칠 법한 평범한 사람들이 마약에 중독돼 치료 받으러 온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마약 중독 환자의 연령이 젊은 층으로 확 이동했다는 점이다. 최근 마약사범 통계상으로도 20·30대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실제로 병원에 진료받으러 오는 환자들은 거의 80~90%가 이 나이대다. 여성 비율도 예전에는 10명 중 1, 2명 정도였다면 최근에는 거의 절반이 여성일 정도로 확 늘어났다.

게다가 대부분의 환자들이 다양한 약물에 중독된 채 찾아오기 때문에 치료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옛날에는 한국에는 필로폰 한 가지 약물만 쓰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마약 연구하기 좋은 곳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아직 젊은 나이인데도 LSD, 엑스터시같은 클럽약물부터 펜타닐, 자낙스, 페니드 온갖 약물에 노출돼서 찾아온다. 의사들에게 처방받은 약물을 오남용한 중독자들이 많아진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젊은 환자들과 상담해 보면 그들이 가는 '성지'가 있다. 일부 병원에서 정말 중증 환자에게나 줘야 할 마약성 진통제를 아무렇지 않게 처방한다는 거다.

■왜 이렇게 마약이 가까이 스며들었을까.

여러 요인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다. 다크웹이나 텔레그램같은 은밀한 온라인 세상이 커졌고 결제도 비트코인으로 할 수 있으니 (마약을 사도) 나는 안 걸리겠지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인터넷을 통한 구입은 언젠가는 100% 다 적발된다. 시중에 유통되는 마약 공급량 자체도 예전보다 훨씬 늘었다. 코로나19도 영향이 있다고 본다. 스포츠같은 건강한 놀 거리보다는 방에 처박혀서 비대면 거래로 마약을 전달받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사회가 경쟁위주에 성공 지향적이고 공부만 강요하는 나라 아닌가. 자살률 1위에 청소년행복지수가 꼴찌인 나라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어느 곳보다도 마약이 번지기 쉬운 나라다. 이렇게 방치하다가는 마약이 불길처럼 번질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정부는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정부 대처는 어떤가.

안타까운 게 많다. 예를 들어 여성 환자들의 경우 다이어트약물에 중독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부분은 식약처가 전국민대상으로 홍보를 해야 한다. 먹기만 해도 살이 빠진다는 건 분명히 중독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는 걸 국민들에게 알리고, 국민들이 먹는 성분이 어떤 성분인지 확인할 수 있게끔 하고 경각심도 줘야 하는데 부족하다.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을 막기 위해서 마약류 빅데이터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의사들이 부적정하게 처방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입증하고 처벌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시스템 자체도 공인인증서 로그인하고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해 의사들 입장에서도 사용하기 불편한 점이 많다.

■마약중독자를 환자라기보다는 범죄자로 보는 인식이 여전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게 마약 중독자들이 쾌락추구를 위해 마약을 찾는다고 생각하는데 처음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중독 단계로 넘어가면 사실은 많은 환자들이 고통스러워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약을 끊지 못하는 자기 모습을 보면서 자존감이 무너지고, 그러다 또 약에 손대는 악순환이 이뤄진다.

미국에선 약물법원을 둬서 기소단계부터 중독자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한다든지, 판사가 중심이 되어 중독자와 사례관리자를 정기적으로 불러서 치료성과는 어떤지, 중독자 모임에는 잘 참석했는지 등을 보고받고 그에 따라 성과가 좋으면 전과를 없애주기도 하고, 치료성과가 안 좋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구속을 시키기도 한다. 중독자들에게는 치료가 필요하다는 개념이 사법체계에 들어와 있는 거고, 그 효과도 입증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치료보호조건부 기소유예 등의 제도로 형사사법체계에 일부 치료 개념을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사실 사후관리가 거의 안 된다. 예를 들어 치료보호 환자가 치료받으러 와야 하는데 안 오면 의사가 강제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조건부 기소유예가 늘어나고 있는 건 고무적이지만 치료조건부 기소유예를 내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철저하게 시행할 수 있도록 강제하고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등 좀 더 세부적인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유명무실해지는 걸 막을 수 있다.

["한국은 마약오염국" 연재기사]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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