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프라 구축, 왜 그리 비싸고 힘들까

2021-07-02 12:10:27 게재

복스(Vox) “환경규정, 친환경 대중교통망 발목 ... 20세기 중반 이후 노하우 축적 실패도 한몫”


미국의 초대형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가 전세계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도로와 철도, 교량 등 인프라 건설비용으로 당초 6210억달러(약 703조원) 를 책정했다. 미 의회는 건설비 규모와 재원조달 방법을 놓고 줄다리기를 한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를 거론하는 이는 거의 없다. 왜 미국의 인프라 구축사업은 힘들고 비싼 걸까.

미국 대중교통 구축 지지 시민단체인 ‘트랜짓 코스트 프로젝트’에 따르면 미국은 고속전철 인프라 구축 비용 측면에서 세계 6번째 비싼 국가다. 현재 전철 1km 구간 건설 평균비용은 약 5억5000만달러다. 미국보다 비싼 국가는 뉴질랜드(8억6000만달러) 홍콩(8억2000만달러) 카타르(7억3000만달러) 싱가포르(6억7000만달러) 영국(6억3000만달러)이 있다.

하지만 세부내역을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상위 5개국 고속전철 노선은 80% 이상이 지하구간이다. 고속철 건설에서 가장 비싸고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문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지하구간은 37%에 불과하다.

미국 전철·도로 건설비, 전세계 최고 수준

도시별로도 마찬가지다. 미국 비영리 시민단체 에노교통센터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뉴욕 세컨드애비뉴 지하철의 1마일당 건설비용은 26억달러에 달했다. 샌프란시스코 센트럴 지하철은 9억2000만달러, LA 퍼플라인 지하철은 8억달러였다.

반면 덴마크 코펜하겐 지하철은 마일당 3억2300만달러,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 마드리드 지하철은 마일당 각각 1억6000만달러, 3억2000만달러였다. 에노교통센터 정책금융 담당 부대표인 폴 루이스는 “미국은 지하철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매우 큰 할증금을 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피트 부티지지 교통장관은 지난달 초 미국 인터넷매체 ‘복스’(Vox)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교통인프라 고비용 문제를 인정했다. 하지만 부티지지 장관은 “그 원인에 대해선 좀더 연구해야 한다”며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진 못했다.

바이든행정부의 교통인프라 구축계획은 기후변화 위기에 대처하는 차원이기도 하다. 쓰임새가 개인에 한정된 화석연료 기반 승용차보다 대중을 한번에 실어나르는 전기 기반 대중교통이 환경보호에 훨씬 유리하다. 바이든 대통령도 교통인프라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미국은 정기적으로 예산을 들여 짓는 인프라 구축 측면에서 캐나다와 영국, 호주 등 다른 동맹국에 뒤처졌다”고 인정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교통인프라 구축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은 데 대해 명쾌하고 단순한 이유는 없다고 지적하면서 정부에게 보다 많은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대중교통망을 적절히 구축할 경우 경제적 이해관계는 막대하다. 뉴욕대 연구에 따르면 미국 주요 도심에 촘촘한 대중교통망을 구축할 경우 미국 경제산출량을 대략 10% 높일 수 있다.

미국 인프라 고비용 문제는 고속전철에 국한되지 않는다. 고속도로도 마찬가지다. 뉴욕연방준비은행과 브라운대 연구자들이 공동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각주를 오가는 고속도로 구축 비용은 1990~2008년 사이 5배 늘었다. 고속도로 건설 관련 전문가인 조지워싱턴대 레아 브룩스 교수 역시 196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 미국 고속도로 1마일당 건설 비용이 3배 늘었다고 지적했다. 브룩스 교수는 “각 주간 고속도로 건설비용은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까지 점진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후 건설비용이 치솟았다”고 말했다.

워싱턴D.C. 소재 싱크탱크 ‘니스카넨센터’의 철도전문가 앨런 레비는 최근 보고서에 “인프라 고비용 문제는 미국의 부와 관련 없다. 미국 1인당 GDP와 지하철 건설비용 사이에 인과관계는 없다. 지질적으로 미국 주요 도시가 지하철을 구축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고비용 프로젝트 배경엔 순전히 제도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브라운대 매튜 터너 교수 역시 “노조 때문에, 혹은 미국이 도로를 건설하는 방식이 낙후됐기 때문에, 또는 건설현장이 주로 도심에 몰려 있기 때문에 고비용 현상이 생긴다는 건 통계적으로 그른 것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시간과 돈 장악한 부자들의 반대

1990년 메릴랜드주 몽고메리 카운티를 관통하는 26km 길이의 경전철 ‘퍼플라인’ 구상이 마련됐다. 하지만 착공은 2017년 8월 시작됐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현재 퍼플라인 공사진척은 40%에 불과하다. 게다가 당초 예산보다 수억달러가 더 들어갔다.

이 지역 시민단체인 ‘대중교통행동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퍼플라인 공사 지연의 주 원인은 인근 워싱턴D.C. 외곽 부유한 동네인 ‘체비체이스’ 주민들의 잇따른 민원 때문이다. 주민들은 경전철 건설로 멸종위기종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10년 넘게 경전철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 주장과 달리 멸종위기종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자 주민들은 ‘경전철 공사로 인근 골프장인 컬럼비아컨트리클럽 운영에 잠재적 피해가 예상된다’고 말을 바꿨다.

이 지역 이민자권리 옹호단체인 ‘CASA’의 구스타보 토레스 대표는 볼티모어선지에 “이 지역 노동자들은 노스캐롤라이나주 베데스다로 출근하기 위해 버스를 3번 갈아타야 한다. 2시간이 걸린다. 퍼플라인이 완공되면 15분에서 최대 20분이 걸릴 거리”라고 말했다.

복스는 “건설공사는 사실 많은 이들에게 짜증과 고통을 안긴다. 공사구간엔 교통정체가 발생하고, 멋진 전경을 즐겼던 주민들은 시끄럽고 혼란스런 건설현장을 마주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교통망 구축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지워싱턴대 브룩스 교수는 “퍼플라인 경전철 사례는 미국 인프라 구축사업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설명한다”며 “이 현상을 시민목소리의 급부상으로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프라 구축 비용 상승의 원인을 노동자 임금이나 건설자재 비용 상승이 아닌, 사법과 행정적 변화로 봤다. 특히 1970년 국가환경정책법(NEPA)의 통과를 지목했다. 이는 정부정책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크게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NEPA 자체는 본질적으로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봇물 터지듯 소송이 급증한다. 인프라 구축 주체는 소송에 대처하느라 분주하고, 당연히 직간접적 비용이 급증한다.

정부가 시민에 해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라면, NEPA는 아주 훌륭한 방어막이다. 하지만 부유한 개인들이 일반시민의 욕구를 누르는 데 활용하는 경우라면 사회의 공공선 구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NEPA는 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부의 주요 조치에 대해 ‘환경영향평가서’(EIS)를 요구한다. 니스카넨센터 연구원 브링크 린지와 새뮤얼 해먼드에 따르면 EIS는 당초 길어야 10쪽 정도로 짧았다. 하지만 각종 소송 위협이 늘어나면서 현재 미국의 평균 EIS는 600쪽을 넘는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1000쪽이 넘는 각종 증빙문서가 보태진다.

EIS 1권당 초안에서 완성본까지 평균 4.5년이 걸린다. 2010~2017년 4권의 EIS 평가서가 완성됐다. 4권의 EIS 작성기간은 평균 17년이 넘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그 어떤 건설프로젝트도 EIS와 관련된 법적소송이 완료될 때까지 삽 한번 뜰 수 없다. 여기엔 연방정부 프로젝트는 물론 민간 프로젝트도 포함된다.

뉴욕대 교수이자 고속전철 연구자인 에릭 골드윈은 “주요 인프라 건설이 시작되면, 인근 주민들은 불평한다. 그리고 이런 불평은 소송으로 번진다”고 설명했다. 2018년 기준 모든 이동수단의 62%가 전철과 자전거, 도보였던 뉴욕시에서도 세컨드애비뉴 지하철 프로젝트와 관련한 지역민들의 반대로 몸살을 앓았다.

캘리포니아 소재 공공정책 비영리 시민단체인 ‘SPUR’에 따르면, 주법 역시 공공인프라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캘리포니아주 환경보호법(CEQA)은 종종 부적절하게 활용된다.

환경에 막대한 이익을 줄 수 있는 고속철과 지속가능한 교통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중단된다. 도시계획자이자 UCLA 주택연구자인 놀란 그레이는 최근 '애틀랜틱' 기고에서 "CEQA 소송으로 인해 새크라멘토에선 주택 사이 빈공간에 집을 짓는 인필 하우징(infill housing)이, 샌디에고에선 태양광발전소 구축이, 샌프란시스코에선 고속철 건설이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그레이는 "지역 주택건설 등 소규모 사업은 '소송 걸겠다'는 위협만으로 좌초되기에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보스턴시 경전철 그린라인 확장

뉴욕대 연구자 에릭 골드윈과 앨런 레비, 엘리프 엔사리는 미국 교통인프라 비용 문제의 근본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보스턴시를 들여다봤다. 경전철 '그린라인' 확장이 30년째 논의되고 있는 곳이다. 4.3마일 노선확대에 드는 비용은 2012년 11억2000만달러로 추산됐다. 하지만 2015년 약 3배 늘었다. 당연히 사업은 보류됐다.

뉴욕대 교수이자 '트랜짓 코스트 프로젝트' 활동가인 골드윈은 "이 문제와 관련해 곤란스런 점은 여러 이유가 복잡하게 얽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연구자들이 파악한 문제점은 △대규모 건설사업을 관리하거나 자문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두 곳의 각기 다른 기관이 사업주도 경쟁을 벌였다는 점 △이 기관들엔 직원도 부족했다는 점 △자유방임적 접근으로 이해관계자들의 내놓은 값비싸고 때론 비현실적인 아이디어를 검토 없이 사업에 추가했다는 점 △사업이 계속 지연되면서 대중들은 더 많은 옵션을 요구하게 됐다는 점 등이다.

골드윈은 "미국이 대중교통망을 저렴하게 구축하는 데 능숙하지 않은 한 이유는 이전에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며 "프랑스 파리나 한국 서울, 중국 상하이를 보라. 대중교통망은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끊임없이 구축돼 왔다. 반면 뉴욕시는 1940년대까지는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지하철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후엔 잠잠했다"고 설명했다.

주기적으로 새로운 건설사업을 관장해야 노하우가 쌓인다. 하지만 미국의 책임기관들은 그런 경험을 쌓지 못했다. 가뭄에 콩 나듯 건설사업을 진행하고, 그때마다 원점으로 되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UC버클리대 법·에너지·환경센터 기후프로그램 국장 에단 엘카인드는 "미국 인프라 사업엔 학습곡선이 매번 등장한다. 즉 처음 어떤 작업을 수행할 때 작업에 익숙하지 않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거의 모든 도시, 거의 모든 교통인프라 사업이 그렇다.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지역적 지식기반이 없다. 어떤 작업과정이 건설 측면인지 아니면 감독 측면인지 그도 아니면 공공관리 측면인지 알지 못한다. 단계단계마다 헛발질을 한다"고 지적했다.

다수 지자체의 관할권이 겹치는 인프라 구축사업은 더욱 복잡해진다. 연방정부는 다수의 도시 또는 카운티가 수십억달러가 소요될 단일 건설사업에서 협력하기를 원하지만, 기대대로 되지 않는다. 이전엔 해본 적도 없고, 사업을 주도적으로 끌고 나갈 리더도 없기 때문이다. 복스는 "기능장애를 겪는 것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엘카인드는 "심지어 연방정부도 협력부재의 문제를 갖고 있다"며 "워싱턴D.C의 패러것노스역과 패러것웨스트역이 분리된 건 연방정부가 소유한 땅을 제공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허가기관들의 직원이 부족해 승인 단계마다 병목현상이 생긴다. 골드윈은 "대규모 건설사업에선 'CCTV 연결선을 이걸로 할까요 저걸로 할까요'와 같은 질문에 즉각 답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질문은 무수히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것에 신속히, 충분히 답할 수 있는 전문가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뉴욕대 앨런 레비는 "미국 기관들은 전세계 다른 나라로 눈을 돌여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더 잘하는지 배워야 했지만 실패했다. 미국엔 인프라 건설과 관련해 더 많은 독일인, 더 많은 이탈리아인, 더 많은 스웨덴인, 더 많은 한국인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진짜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미국은 다른 나라에서 배우는 데 익숙지 않다. 어떤 사업이 미국에선 좌초되는데 다른 나라에선 순조롭게 진행된다. 하지만 미국은 잘못을 고치기 위해 경로수정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예산과다, 비효율적 집행 등을 보면 미국이 대중교통망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브루킹스 대도시정책 프로그램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교통 인프라 지출은 지난 10년 동안 물가조정 기준으로 99억달러 감소했다. 미국은 대중교통 인프라에 GDP의 1.5%를 쓰지만, 영국은 2% 프랑스는 2.4% 호주는 3.5%를 지출한다. 미국은 건설에 투자하는 것에 비해 그로 인해 얻는 게 매우 적다. 브루킹스 대도시정책 프로그램 연구원인 애디 토머는 "우리는 올바른 인프라를 올바른 장소에 올바른 이유로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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