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만 남은 섬진강 열목어

한반도 최남단 서식지는 '낙동강'

2021-07-05 11:34:07 게재

빙하기 간빙기 거쳐 낙동강 상류로 … 백천계곡 아래 '낙동강 본류'에도 서식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우리나라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는 섬진강 발원지 계곡이다. 한국어도보(韓國魚圖譜)(정문기. 일지사. 1977) 122쪽에 섬진강 수계 열목어에 관해 짤막한 내용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전북 진안군 백운면 임하리의 팔공산 서쪽(섬진강 상류)과 경북 봉화군 소천면 석포리, 대천리 및 고선리 부근 태백산 남쪽(낙동강 상류), 평북 강계, 강원도 홍천군, 영월군 등지에 분포한다."

봄에 태어난 열목어 치어들. 아래 올챙이와 비교하면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백천계곡이다.


현재 진안군 행정지명에서 임하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팔공산 서쪽 계곡에 '고림하'라는 마을이 있고 이곳은 섬진강 발원계곡 3곳 가운데 하나다. 팔공산-마령재-구름재를 잇는 능선 북쪽 계곡이 열목어 서식지였을 것이다.

한국어도보는 일제강점기에 우치다 케이타로(內田惠太郞)를 중심으로 조선총독부 수산시험장에서 축적한 우리나라 어류상에 관한 조사자료를 집대성한 책이다. 책을 쓸 때 섬진강의 열목어를 직접 조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 근거 없이 기록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섬진강 수계 열목어는 기록으로만 남았다. 본 사람도 없고 현장에 가 보면 계곡 아래가 1962년에 축조된 신암저수지로 가로막혀 있다. 열목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열목어를 복원하려면 먼저 저수지를 없애고 섬진강 발원계곡 3곳의 물이 자유롭게 만나 여울과 소를 이루며 하류로 이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1980년대 복원한 백천계곡 열목어 = 현존하는 한반도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는 낙동강 상류다. 낙동강 상류에 열목어가 서식한다는 사실이 학계에 처음 보고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7년이다.

당시 거물급 학자였던 우치다 케이타로가 낙동강 상류에서 열목어를 채집했을 때 모두들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남한강 상류 정암사 계곡에 열목어가 있는 것도 기적이라고 했는데 그보다 더 남쪽인 낙동강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경북 봉화군 소천면(지금은 석포면으로 분리) 석포리와 대현리 백천계곡 일대가 천연기념물 74호로 지정된 것도 그때 일이다.

그러나 이곳 대현리의 열목어도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걸쳐 멸종위기를 맞는다. 백천계곡 하류에 아연광을 생산하는 연화광업소가 들어서면서였다.

백천계곡의 숲이 남벌되고 여름철 수온이 섭씨 20도 이상으로 올라갔다. 열목어들이 월동하던 깊은 소들은 광산 수질오염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 산란장은 토석으로 메워지거나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사람들은 열목어를 보기만 하면 잡았다. 폭발물 약물 전기충격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1984년 7월 백천계곡 주민들이 열목어복원회를 조직했다. 이 소식을 들은 호림수산양식개발연구소 백윤걸 소장이 새끼 열목어 200마리를 기증했다. 남한강 수계 성어로 인공부화시킨 새끼 열목어 100마리는 백천계곡에, 100마리는 계곡 옆 현불사 연못에 방류됐다.

1989년 봉화농촌지도소 기술진이 현불사 연못에서 다 자란 열목어 성어 24마리를 친어로 인공부화에 성공, 1990년부터 인근 계곡에 방류했다. 이렇게 방류된 열목어들은 백천계곡을 비롯, 봉화군 소천면 고선계곡에도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지금 백천계곡과 고선계곡에는 1980년대 이후 주민들이 방류한 개체들과 최상류 태백산 계곡에 있던 원래 열목어들이 뒤섞여 있다. 다행히 유전자 분석 결과는 낙동강 열목어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낙동강 본류가 월동지일 수도 = 열목어는 한여름엔 수온이 섭씨 20도 이하로 유지되는 산간계곡에서 지낸다. 그러나 날씨가 추워지고 강물 온도가 20도 이하로 내려가면 큰 강으로 내려간다.

백천계곡을 흐르는 병오천은 구 연화광업소 앞을 지나 육송정 삼거리에서 태백에서 내려온 낙동강 본류를 만난다. 고선계곡 현동천 물도 소천면 소재지 현동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그렇다면 겨울이 되면 현동에서 육송정 삼거리까지 30km가 넘는 낙동강 본류가 열목어들의 월동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열목어 이동경로를 모니터링한 결과 백천계곡의 열목어들은 대부분 육송정 삼거리 인근에서 월동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하류에는 아연을 생산하는 영풍석포제련소가 있어 열목어들이 그 아래로는 잘 안 내려가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양원역 인근 주민들은 "1999년부터 울진군 서면 골포천과 낙동강 합수지점에서 큰 열목어들을 보았다"고 일관되게 얘기한다. 심지어 골포천보다 더 남쪽에 있는 회룡천에서 열목어를 보았다는 제보도 있다.

채병수(담수생태연구소 소장) 박사는 "2014년 전국자연환경조사 당시 석포제련소 하류 낙동강 본류에서 열목어 성체가 관찰된 적이 있다"며 "그해 11월 6일 발생한 석포제련소 황산 유출사고 때 하류 20km까지 물고기 2만2467마리(수거한 개체 기준)가 폐사했는데 그 가운데 15마리의 열목어가 있었다"고 말한다.

채 박사는 "한여름에도 낙동강 본류에서 열목어 치어들이 종종 관찰된다"며 "백천계곡과 고선계곡, 석포천 상류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한 열목어들이 낙동강 본류와 인근 하천으로 점점 서식지를 넓혀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 낙동강 상류, 그 한가운데 자리잡은 아연제련소, 열목어를 멸종위기2급 생물로 지정한 환경부, 이 삼각함수를 과연 어떻게 풀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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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준기 기자 namu@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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