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한 에너지세제, 전력소비 부추겨
수송용석유류 세금 과다
반면 발전용은 과소편성
여름철에는 폭염으로, 겨울철에는 이상한파로 전기수요가 급증하면서 매년 전력수급 비상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올 여름도 예외는 아니었다.
낮은 전기요금과 불공정한 세제에 따른 '가격왜곡' 현상이 주 원인 중 하나다. 그 결과 석유·가스 수요가 값싼 전기소비로 옮겨가는 '에너지의 전력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전기요금, 33년간 1.9배 인상 그쳐= 예를 들어 제조공장은 설비가동을 위한 연료가 유류에서 전기로 바뀌었다. 제조업 에너지원 중 전력비중은 2004년 33%에서 2016년 49%로 급증했다. 농촌 비닐하우스에서 사용하는 연료도 전기로 대체되는 현상이 늘었다.
또 각종 건물의 시스템 냉난방기 보급이 급격히 증가했고, 가정과 가게에서는 전기레인지(인덕션)·전기장판 사용이 보편화됐다. 정부는 수십년간 '낮은 전기요금'을 전제로, 에너지세제와 전기요금 정책을 유지해왔다.
한국전력 경영연구원에 따르면 kWh당 전기요금은 1984년 67원에서 2017년 125원으로 33년간 1.9배 인상됐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 자장면 가격은 350원에서 4830원으로 14.0배, 버스요금은 120원에서 1300원으로 10.8배, 택시 기본요금은 500원에서 3000원으로 6.0배 각각 올랐다.
용도별 전기요금은 일반용을 제외하면 원가 이하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력이 마지막으로 용도별 원가를 공개했던 2012년의 종합 원가회수율은 88.4%였다. 이중 가정용 전기요금 원가는 2012년 85.4%에서 2019년 70.4%(2017년 누진제 개선 영향)로 오히려 낮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원가보다 낮은 전기요금'이라는 비판이 확산되자 올해부터 전기요금에 연료비연동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물가안정 등을 이유로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연동제 적용을 유보, 제도가 유명무실화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전은 올 상반기 1932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전력판매 증가로 매출이 4285억원 증가했지만 연료비·구입전력비 등 영업비용도 1조4421억원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수송용석유에서 세금 24조원 걷어 = 에너지 세제개편 필요성도 제기된다. 에너지에 붙는 세금이 편중돼 있어 특정 에너지원의 수요를 부추기거나 억제해 왔다는 지적이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의 2019년 국세수입 총액은 293조4543억원으로, 이중 23조6000억원을 수송용 석유류에서 걷었다. 전체 에너지세 중 수송용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85~90%에 이른다.
이처럼 수송용 석유에 세금이 높게 편중되다보니 발전용 에너지에 대한 세금은 상대적으로 과소 편성됐다. 우리나라는 이처럼 1차 에너지인 유류와 2차 에너지인 전기의 가격 왜곡이 에너지믹스의 불균형을 가속화시키고, 전력소비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휘발유와 경유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5%, 46%로 소비자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반면 전력은 부가가치세 10%와 전력산업기반기금 3.7%만 소비자에게 부과한다.
◆발전부문 내에서도 연료간 세제 불균형 = 한국 에너지 세제구조에 대한 문제점은 해외에서도 비판적 시각이 짙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제3차 한국 환경성과평가(2017)' 보고서에서 "한국의 에너지 세제가 에너지 생산 및 사용과 관련된 환경비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급격한 전력소비 증가를 가져오는 등 에너지 소비를 왜곡했다"고 진단했다. 이어 "에너지 세수에서 수송용 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기·우라늄·석탄보다 현저하게 높다"고 꼬집었다. 이 보고서가 나온 시점과 2021년 현재 에너지 세제정책은 크게 바뀐 게 없다.
발전부문 내에서 연료간 세제 불균형 현상도 개선해야 할 대목이다. 원전 연료인 우라늄은 관세를 비롯 개별소비세·교통세·교육세 등 부과되는 세금이 없고, 발전용 유연탄은 kg당 개별소비세 43~49원, 부가가치세 10%만 부과한다.
이에 비해 발전용 액화천연가스(LNG)에는 ㎥당 관세 3%, 개별소비세 60원, 수입부과금 24.2원, 안전관리부담금 4.8원, 부가가치세 10%가 부과된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발전부문 연료 간 과세구조 차이가 원전과 석탄 편중 현상을 가져왔고, 에너지원 간 공정한 경쟁을 저해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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