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서 쏟아진 막말 역사에 남는다 … "회의록 못 고쳐요"

2021-10-27 11:31:08 게재

피감 기관장이 공개한 '고인의 일기장'

동료 의원에게 던진 "철없는 의원들"

농담으로 한 '동료의원 학폭 가해 발언'

2003년 '삭제 불가, 자구만 정정' 명문화

국회의원들이 쏟아낸 막말은 역사에 그대로 남는다.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국회에서 이뤄지는 공식 회의의 회의록은 매우 제한적인 예외를 제외하고는 수정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많은 국회의원들이 그걸 모르고는 자신이나 상대의 발언을 삭제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회에서의 발언은 면책특권이 있어 실정법 처벌에서는 비껴갈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길이 남아 후대의 평가를 받게 된다는 얘기다. 올해 국감장에서도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말을 주워 담으려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오징어게임 옷 입고 질의하는 임오경 의원│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영화진흥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옷을 입고 조현래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 등에게 OTT 관련 질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27일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국회법 117조에는 속기로 작성한 회의록의 내용은 삭제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2003년 2월 16대 국회때 새롭게 명문화한 대목이다. 자구 정정 규정을 확대해석해 발언의 실질적인 내용까지 바꾸려는 시도가 빈번해 정정의 한계를 명확히 하고 국회의 모든 회의에서 의원의 발언에 대한 책임성을 강화하려는 측면이 강하다. 또 발언내용의 삭제를 둘러싸고 발생할 수 있는 비효율적인 회의운영을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의지도 들어가 있다.

하지만 18년이나 효력을 이어진 법률인데도 국회의원들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해양수산부 종합 국감에서 국민의힘 홍문표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전남 신안에서 세계최대해상풍력단지 협약식을 할 때 세 번이나 말씀하시길 '풍력단지 조성문제는 현지 지역민과 상생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겠다'고 천명했다"며 "그런데 민주당 철없는 의원 44명이 풍력발전보급촉진특별법을 내놨다"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민주당 맹성규 의원은 "철없는 민주당 의원들이라는 표현을 속기록에서 삭제하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고 요구했다. 중재에 나선 김태흠 농해수위 위원장이 "속기록 문제는 양당 간사들이 추후에 협의해 결정하고 전체회의에 보고하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20여분 정회 후 재개된 자리에서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은 "속기록 내용 삭제는 안 되지만 홍 의원에게 앞으로 이런 부분들 유념토록 전하겠다"고 말했다.

같은날 문화체육관광위에서도 속기록 삭제 논란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이 학교폭력과 관련 질문을 하면서 "3선인 정(청래) 의원이 학교 다닐 때 싸움도 많이 하고 친구도 많이 괴롭혔다고 한다"고 했다. 또 한복의 날을 맞아 한복을 입고 국감에 참석한 임 의원은 "옆에 있는 정 의원한테도 같이 한복을 입자고 했는데 거절당했다"고도 했다.

임 의원은 질의를 마무리하면서 "한복 부분 등 정청래 의원님을 같이 거론을 했는데 어디까지나 농담으로 한 말"이라며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라고, 속기록에서도 삭제를 요청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소속 이채익 문체위원장은 "(질의한) 의원이 일방적으로 삭제를 요구한다고 삭제가 되는 게 아니고, 위원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며 동의 절차까지 거쳤다. 하지만 해당 발언은 법적으로 속기록에서 삭제될 수 없다.

다음날인 22일엔 속기록 삭제를 요구하는 사건이 정무위에서 나왔다. 진승호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이 기관에서 근무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년인턴 A씨의 사망과 회사업무의 연관성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인의 일기장을 읽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고인의 사적 기록을 읽은 전대미문의 사태라도 생각한다"며 사과를 요구하자 진 사장은 "(고인의 ) 사생활이 공개하게 된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 용 의원은 "진 사장이 고인의 일기장을 읽은 부분을 회의록에서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윤후덕 기획재정위원장은 "국회법상 회의록은 삭제할 수 없다"고 했다.

회의록은 삭제가 불가하면서도 자구 정정은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법조문이나 숫자 착오, 특정어휘를 유사어휘로 변경, 간단한 앞뒤 문구 변경, 기록의 착오 등 자구 정정이 가능한 사례를 열거해놨다. 다만 자구 정정이라고 하더라도 발언의 취지를 변경할 수 없도록 했다. 정정 결정권은 의장이나 위원장에게 줬다.

국회 핵심관계자는 "너무 많은 의원들이 회의록 수정을 요구해 법으로 규정했는데도 아직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면서 "한번 발언하면 바꿀 수 없고 역사에 남아 평가를 받기 때문에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박준규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