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기록 43권, 진술인만 50명"
대장동 사건 본공판은 내년에나 시작
정영학 녹취록 신빙성 놓고 공방 예상
법원 인사 맞물려 새 재판부 구성될 듯
대장동 개발 특혜 및 로비 의혹 재판이 시작됐지만 1심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결국 재판부가 공판준비기일을 한번 더 갖기로 해 본 공판은 내년에나 열리게 된다. 특히 현 재판장이 2년간 재판부에 근무했기 때문에 내년 3월에는 새로운 재판부 구성이 불가피하다. 법원 인사와 맞물리면 소송 절차는 더 늦어지게 된다.
피고인들은 검찰의 방대한 수사기록을 제대로 열람·복사하지 못했다며 재판부에 시간을 더 달라는 입장이다. 앞으로 열릴 공판에서는 녹취록을 통해 사건의 결정적 단초를 제공한 정영학 회계사만 혐의를 인정하고 나머지 3명의 피고인들은 녹취록의 신빙성 등을 다툴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양철한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변호사 남 욱씨, 정 회계사 등 이른바 '대장동 4인방'에 대한 공판준비기일을 6일 진행했다.
◆정영학만 "공소사실 인정" = 공판 준비절차에는 피고인들이 법정에 출석할 의무가 없다. 코로나 상황 등을 고려해 피고인들이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구속 상태인 유 전 본부장이 수의차림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대개 형사재판은 피고인이 검찰의 수사 자료 등을 검토한 뒤 법정에서 증거 인부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유 전 본부장과 김씨, 남 변호사 모두 검찰 수사기록을 전혀 열람·등사하지 못했다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김씨 측 변호인은 "증거기록만 43권에 달하고 진술한 사람만 50명"이라며 "방어에 충분한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사건마다 다르지만 대개 증거기록 1권당 500페이지 정도 된다. 수사기록이 43권이라는 것은 최소한 2만페이지가 넘는다는 이야기다.
정 회계사는 첫 공판준비기일에 3인과는 달리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정 회계사 변호인은 "(다른 피고인들과) 입장이 다르다보니 준비기일에 나와서 의견 표명하는 게 피고인에게 낙인찍힐까 두려움이 있다"면서도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한다"고 밝혔다.
한편 김씨 측 변호인은 "피고인 기소가 이뤄지고 난 다음에도 검찰에서 계속 소환조사가 이뤄지고 있다"며 "검찰이 공소사실과 별개로 추가 사실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 수사에 불만을 나타냈다. 변호인은 "검찰 소환조사가 언제까지 계속되는지, 수사 종료시점을 재판부가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녹취록 신빙성 놓고 다툴 듯 = 대장동 의혹 사건 재판에서 증거의 핵심은 정영학 회계사가 제공한 김만배씨 등과 나눈 대화 녹취록이다. 해당 녹취록에는 "성남시의회 의장에게 30억원, 시 의원에게 20억원이 전달됐고 실탄은 350억원" 등 로비로 추정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녹취록에는 곽상도 전 의원 아들이 산재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았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뇌물이나 배임 혐의에 대한 유력한 증거인만큼 녹취 내용의 신빙성에 관한 검찰과 혐의를 부인하는 3명간에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천주현 변호사(법학박사)는 7일 해당 녹취록의 증거능력은 무리 없이 인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증거능력은 증거로 쓸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의미한다.
그는 "정영학 회계사가 녹음한 녹취록은 본인이 본래 대화의 당사자로 참여해 녹음한 것이기에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되지 않아) 적법하다"며 "증거능력 인정에는 무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녹취록의 신빙성'이 재판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천 변호사는 "정 회계사는 당시 대화 내용 그대로를 녹음한 것이라고 할 것이고, 김씨 등 3인은 의도적으로 녹음을 편집했다는 취지로 녹취록의 신빙성을 탄핵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김씨는 정 회계사 녹취록에 대해 "정 회계사가 의도적으로 녹음하고 편집했다"며 "단 한 번도 정 회계사와 진실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천 변호사는 "구속영장이 3인에 대해 발부된 것을 보면 혐의가 상당히 있어 보이는데 뇌물 부분에 관해서는 녹취록이 상당한 증명력이 있을 것"이라며 "적법하고 증명력이 뒷받침되는 금융내역과 관계자 진술이 있으면 녹취록을 대장동 4인방에 대한 유무죄 판단의 증거로 삼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편 검찰은 성남시 개발 담당자를 불러 조사하며 배임 '윗선'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대장동 의혹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은 6일 오후 김 모 전 성남시 도시재생과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대장동 사업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에 주력했다. 검찰은 김 전 과장을 상대로 대장동 사업의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성남시의 관여 여부를 확인하면서 화천대유 등에 막대한 특혜가 돌아가도록 배당구조가 설계된 과정 등에 대해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달 3일에는 대장동 사업 전후 성남시 예산법무과장으로 성남도시개발공사 관련 업무를 담당한 문 모씨와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팀 파트장인 이 모씨도 불러 조사하면서 '윗선' 관여 여부에 대해 조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