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지킴이 공공의료
"수준 높은 지역책임 공공병원 마련 시급"
지역 내 발생하는 감염병 적절한 대응과 응급-외상-암관리 등 필수의료 수행력 갖춰야
국민의 건강·생명 지킴이 역할을 하는 공공의료 강화가 화두가 됐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경험한 국민들은 의료에 대한 공공성을 각인하게 됐다. 공공의료 병상과 인력 부족은 감염병 대유행시 제때 중중환자를 입원관리하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사망자 증가를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코로나19 중환자를 치료·관리하지 못하는 공공병원의 낮은 의료 수준은 공공의료의 민낯을 드러냈다. 또한 지방 인구감소 등으로 해당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수행하는 의료기관이 불균형적으로 분포하다보니 치료가능한 사망자 발생비율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보건의료 전문가들과 소수의 보건의료단체 위주로 제기돼 왔던 공공의료 강화 주장은 이제 국민적 요구가 돼 더 이상 뒤로 미루면 안될 사안이 됐다.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공공의료의 부실한 현실을 되짚어 보고 그 대안을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경험하면서 감염병에효율적으로 대응하고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높아졌다.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전후 의료서비스를 공적 자원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22.2%에서 67.4%로 크게 증가했다.
이런 인식 변화 배경에는 2020년 3월 대구경북지역 1차 유행, 8월 광화문집회 후 2차 유행, 11월 말부터 진행된 겨울철 3차 유행, 그리고 단계적 일상회복 조치가 처음 시작된 11월 이후 발생했던 확진자 급증에 따른 중증환자 치료-입원 관리의 어려움과 의료대응 부실을 국민들이 목격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김 윤 서울대의대 의료관리실 교수는 "공공의료 부실은 코로나19 같은 재난 상황에서 국민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회적 취약계층이 적절한 치료관리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낳는다"고 말했다. 정형준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의료현장에는 과잉진료와 과소진료가 횡행하고 있고 불필요한 수도권 의료집중과 대형병원 쏠림이라는 부작용을 앓고 있다"며 공공의료 부실로 나타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공공병원 부족, 감염병 의료대응 위기 초래 =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의료대응을 감당하기 위해 전체 의료병상의 10%도 안되는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확진환자의 80% 이상을 감당했다. 하지만 공공병원의 90% 이상이 300병상 이하로 중환자 진료능력이 부족해 중증 코로나19 환자진료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공공병상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입원필요환자가 발생한 몇 차례 유행상황마다 정부는 민간의료기관에 자발적 참여를 요청하거나 행정명령을 내리는 강제조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병상을 당연히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민간의료기관 참여는 더딜 수밖에 없고 그만큼 위중한 환자 생명은 위기 상황에 놓여졌다.
특히 2020년 11월 12월 유행시기와 지난해 단계적 일상회복 조치 이후 경험한 의료대응 혼란상은 상당부분 공공의료의 부실에서 기인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는 "공공의료가 허약한 상태에서 민간의료기관을 강제할 방법이 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 공동대표는 "2010년 이후 세계적으로 감염병 발생 주기가 짧아졌다"며 "지금 유행하는 코로나19가 감염병 대유행의 마지막이 아니다. 감염병 유행에 신속하게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지역 공공병원 확충과 인력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세계적 감염병 유행은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2014년 에볼라, 2016년 지카, 2018년 에볼라, 2019년 코로나19 등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공공의료기관은 2019년 기준 전체 의료기관 중 5.1%, 병상수 기준으로는 8.9%를 차지한다. OECD 회원국 평균 공공의료기관 비율은 52.6%, 평균 병상수가 71.6%에 이르는 것과 크게 대비된다.
◆치료가능한 사망자 발생 여전 =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부실은 응급-외상-암 치료 등 필수의료영역에서도 나타난다.
건강보험연구원이 2021년 발행한 '공공병원 미래역할 설정을 위한 근거기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역 거주환자가 치료가 필요한 필수의료서비스를 적정시간 안에 이용할 수 없는 어려움이 존재했다. 필수의료 영역 대부분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진료 역량을 갖춘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을 60분 이내에 접근불가한 경우가 전국 평균 23.6%나 됐다. 17개 시·도 가운데 제주가 52.3%로 종합병원 접근 어려움이 가장 컸다.
응급-외상과 관련있는 '지역응급의료센터'에 30분 안에 접근이 불가한 경우가 전국 평균 21.0%로 나타났다. 17개 시·도 가운데 '지역응급의료센터' 기준시간 내 접근불가율이 경남 50.7%로 가장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활 영역 의료기관에 60분 안에 접근이 불가한 경우는 전국 평균 16.1%로 나타났다. 17개 시도 가운데 충북 44.4%, 경북36.9%, 전남 32.1%로 높은 접근불가 지역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연구원이 2020년 11월 발표한 '공공의료 확충의 필요성과 전략'보고서에 따르면 인구규모가 작은 취약지역은 의료수요 부족 등으로 응급-중증진료를 제공할 수 있는 양질의 의료기관이 운영되기 곤란한 상황이다. 응급취약지 99개, 분만취약지 33개, 소아청소년과 취약지 33개 시군구로 조사됐다. 같은 소득과 재산기준으로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만 사는 지역이 수도권이냐 지방 촌락이냐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 수준이 차이가 나 '의료이용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사는 지역에 따라 치료가능한 사망비율이 달라지는 건강불평등이 극심하다. 국가균형 발전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중증질환이 걸린 다음에 큰 병원에 가는 의료체계가 아닌 국민생활 가까이에서 증상에 맞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원과 종합병원이 있고 필수의료서비스를 적절히 받을 수 있도록 공공병원 중심으로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병원 우선 확충하고 유기적 연계시스템 갖춰야 =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공병원을 확충하고, 의사와 간호사인력을 체계적으로 확보하고, 중앙-지역간 공공의료기관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공공병원의 확충이 필요하다. 공공병원 확충에는 70개 중진료권에 지역책임의료기관을 갖춰야 한다고 보건의료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정부도 이를 수용했지만 대부분 공공병원을 신설하거나 공공인수하는 방식이 아닌 민간병원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 우석균 대표는 "코로나19 국내 발생 이후 사립병원 동원에 든 비용 3조원이면 공공병원 20개를 지을 수 있다"며 "최소 현재 공공병원이 없는 27개 중진료권에 공공병원(지방의료원)을 신설하는 등 공공병원을 체계적으로 확충해 공공의료 핵심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원과 공공의료체계 리더십을 가진 조직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김 윤 교수는 "건강증진기금의 건강보험재정지원을 중단하고 여기서 생기는 약 2조원을 공공의료강화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백주 교수는 "매년 1조원 정도의 공공보건의료기금(담배 개별소비세의 55%)을 신설해 공공병원 강화와 인력기준 상향에 따른 운영비 지원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의료체계 리더십을 이끌 조직으로는 공공의료청, 국가중앙의료원 등이 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