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지난해 이자만 10조달러 지출
글로벌 GDP 12% 비중 … 이코노미스트지 "초저금리 시대 저물면 얼마나 늘지 관심"
전세계 경제가 지금처럼 부채를 많이 진 적은 없었다. 글로벌 부채 총량은 2000년 말 83조달러에서 2021년 말 295조달러로 늘었다. 전세계 GDP 성장 속도보다 2배 빠르다. 2000년 GDP 대비 부채 비율은 230%였다. 그러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 320%로 늘었고, 지난해엔 355%에 달했다.
부채 급등의 이유 중 하나는 지난 20여년 동안 점진적인 금리의 하락세였다. 2000년 초 10년 만기 미국채 금리는 6.5%였다. 현재는 1.8%다. 같은 기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실질금리(10년만기 국채수익률-물가상승률)는 6.5%에서 0.08%로 하락했다. 유로존과 일본의 기준금리는 마이너스 영역에 있다. 국채금리와 중앙은행 기준금리 하락은 민간에 대한 대출이자 하락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글로벌 부채는 20년 동안 폭증했지만, GDP 대비 전세계 이자 비중은 1980년대 절정기보다 크게 낮은 상황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1989년 총 이자비용은 GDP 대비 27%였지만 2021년 비중은 12%였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은 곧 변할 전망이다. 초저금리 시대가 저물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 급증에 대처하고 있다. 일부 신흥국들은 이미 기준금리를 속속 올리고 있다. 브라질중앙은행은 이달 2일(현지시각) 기준금리를 1.5%p 올렸다. 3차례 연속 인상이다. 영국중앙은행도 0.25%p 인상했다. 전세계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미국 연준은 빠르면 3월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올 한해 모두 다섯차례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마이너스 영역이지만, 정부의 실질 이자비용도 오르고 있다. 미국의 경우 5년 만기 물가연동채권(TIPS)은 지난해 대부분 기간 마이너스 1.7% 수준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마이너스 1.2%로 올랐다.
글로벌 이자비용 총액은 막대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전세계 가계와 기업, 금융기관, 정부는 지난해 10조2000억달러의 이자를 지불했다. 전세계 GDP의 12% 수준이다. 이 매체는 기준금리 인상을 고려하면 전세계 58개국 기업과 가계, 정부가 향후 3년 동안 감당해야 할 금리는 1%p 상승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우리의 추산에 따르면 글로벌 이자비용은 2026년 16조달러를 넘을 것이다. 같은 해 글로벌 GDP 예상의 15%에 상당한다"며 "만약 인플레이션이 지속돼 각국 중앙은행들이 더 과감한 통화정책을 펴 금리를 2배 더 빨리 인상한다면, 2026년 글로벌 이자비용은 20조달러, 글로벌 GDP의 1/5에 달할 것"이라고 전했다.
기준금리 인상이 이자비용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힘들다. 여러 고려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일부 부채는 고정금리에 묶여 있어 만기 때까지 변동되지 않는다. 정부 국채의 만기 중앙값은 5년인 반면, 기업들은 보통 2년 만기로 돈을 빌리는 경향이 있다. 가계는 일반적으로 더 장기적으로 돈을 빌린다. 중앙은행들의 모임인 국제결제은행(BIS)의 조사에 따르면 금리가 높아지면 이자소득보다 이자비용이 더 크게 오른다. 부채 규모가 커질수록 압박감은 더 커진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기준금리 인상이 5년에 걸쳐 정부와 가계 부채에 영향력을 미치고, 2년에 걸쳐 기업 대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예상했다.
물론 이자 부담의 압박이 모든 채무자에게 동등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민간 채무자는 정부보다 이자 부담에 더 큰 압박감을 느낀다. 정부는 저렴하게 돈을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금융기관이나 저축이 많은 부유한 가계는 이자를 지급하는 동시에 이자를 받는다. 부채 비중이 높은 채무자들은 금리가 오를수록 이자비용은 커지기 때문에 일반 지출을 더 줄일 가능성이 커진다. 심각한 경우엔 재정난에 빠진다. 이는 결국 한 나라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코노미스트지가 2021년도 자료를 취합해 주요국의 가계와 비금융 기업, 정부 부문을 대상으로 소득(세수 또는 수익) 대비 부채비율과 그 비율의 10년 변화율을 따져 각국 각 부문에 순위를 매겼다.
정부 부문에서는 레바논이 가장 취약했다. 레바논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일부 국채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한 바 있다. 세수 대비 부채비율이 지난 10년 동안 치솟았다. 나이지리아는 주요 석유수출국임에도, 정부의 세수로 이자비용을 겨우 커버할 정도였다. 국제금융협회(IIF)는 "다행스러운 점은 신흥국 정부들이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빌린 대부분의 부채가 자국 통화 표시였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자본의 변덕에 국가경제가 좌우될 우려가 줄었다는 의미다.
가계부채의 경우 한국과 노르웨이, 스위스 등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웨덴의 경우 모기지 부채의 규모가 컸다. 이 나라의 2021년 집값은 11% 상승했다. 절반 이상의 모기지 대출이 변동금리로 진행됐다. 따라서 기준금리가 오르면 모기지 이자 비용이 늘어난다.
기업부채 부문에서 프랑스와 스위스 기업들의 운영수익 대비 부채 비중이 가장 높았다. 금리인상에 취약해졌다는 의미다. 신흥국 시장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 기업들 역시 이자비용 부담이 커졌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전반적으로 민간 부문에 대한 우리의 예상은 BIS가 산출하는 '신용갭'(Credit-to-GDP gap) 트렌드와 대개 일치했다"며 "스위스와 한국의 민간 부문이 전세계 상위 5개국에 속했다"고 전했다. 신용갭은 명목 GDP 대비 민간신용(가계부채+기업부채) 비율이 장기 추세치에서 벗어난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우리가 낸 순위는 기준금리 인상에 누가 가장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로 어떤 나라의 어떤 부문이 고통을 받을지 예상하는 건 훨씬 복잡한 그림이다. 특히 경제성장 전망과 정부의 대응조치에 따라 그림이 크게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부유한 경제선진국들의 가계부채 수준이 높다고 해도, 그들이 내야하는 이자 부담은 역사적 기준으로 보면 낮은 수준이다. 반면 아르헨티나 부채 비율은 특별히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35%라는 민간에 대한 고금리는 이 나라 채무자들이 심각한 재정압박을 겪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경제성장 전망이 불투명한 빈국들은 금리인상 시기 고전할 가능성이 크다.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인 핌코는 "미국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은 미 경제의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며 "소득이 이자비용을 감당할 만큼 빨리 오르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복합적인 위협에 처해 있다. 과도하게 빚을 진 헝다그룹이 흔들리면서 중국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꺼지고 있다. 은행들 역시 악성 가계부채를 많이 갖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기준금리를 올리는 대신 내리면서 이같은 리스크에 대응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중국과 달리 전세계 많은 국가들은 이미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했거나 곧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빚을 많이 진 채무자들이 경제회복을 둔화시킬 가능성에 걱정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