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금고 235년 선고'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한 이유
"피해자 47명에 대한 범죄 형량을 모두 합산해 피고인에게 금고 235년을 선고한다." 설 연휴에 TV채널을 돌리다 '악마판사'를 다시 보게 됐다. 범죄자를 감옥에 235년이나 가둘 수 있다는 판결로 사이다 같은 쾌감을 느끼게 해 준 드라마였다.
'악마판사'라는 제목만 보면 부패에 찌든 판사 얘기같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법에 대해 상상만 했던 법 제도를 생각해보게 한다. 악질 범죄자들을 보면 "저놈은 무조건 사형 또는 무기징역 시켜야 해" "법이 솜방망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았던 현실도 곱씹어보게 된다.
국민 모두 재판에 직접 참여한다면
누구나 한번쯤 악질 범죄자에게 내려진 가벼운 형량에 분노하고, 악을 처단해줄 정의의 심판자가 나타나길 꿈꾼다. 그런데 그것을 심판하는 사람이 법복을 입고 있는 판사라면? 그리고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이란 설정을 해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TV 라이브 법정쇼를 통해 국민들이 모바일 기기로 미디어 재판에 직접 참여한다면?
비질란테(Vigilante)란 말처럼 범죄자를 심판하지만 여기선 숨어서 하는 게 아니다. 모든 국민들과 함께 TV 라이브 법정쇼를 시청한다. 이를 통해 주인공인 판사 강요한은 국민들이 참여한 투표 빅데이터를 이용해 다수가 바라는 정의를 파악한 후 이에 맞게 범죄자에게 판결을 내린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방법이다.
'악마판사' 쓴 문유석 작가는 실제 부장판사 출신이다. 그가 현직 시절 느꼈던 부조리들을 판사 강요한이라는 캐릭터로 그려냈다는 인상이 짙다. 등장하는 배경도 현실의 대한민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 정서를 반영하는 과정도 같다. 즉 현실에는 없지만, 현실과 닿을 법한 설정으로 흥미를 배가시킨다.
'금고 235년'라는 파격적인 형량은 첫 재판에 나온다. 하지만 이 같은 선고는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형법은 유기징역 상한을 30년으로 정해두었고 범죄를 아무리 많이 저질러도 최대 50년까지만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법원이 선고한 최장 유기징역형은 서울 도심에서 한 중국동포가 두 사람을 무차별 살인한 범죄로 받은 징역 45년이었다.
미국은 '병과주의' 한국은 '가중주의'
반면 미국은 100년 이상의 초장기형 선고가 가능하다. 1994년 미국 오클라호마 지방법원은 6건의 유아 강간을 저지른 찰스 스콧 로빈슨에게 그가 저지른 범죄 1건당 5000년씩으로 계산하여 총 징역 3만년을 선고했다.
이같은 선고 형량 차이는 두 나라가 따르고 있는 원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병과주의'로 형량을 계산한다. 즉 한 사람이 여러 죄를 저질렀을 때 각각의 죄에 대한 형을 모두 합해 처벌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가중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가중주의는 한 사람이 저지른 범죄 중에 가장 무거운 범죄의 형량을 기준으로 삼고 나머지 범죄는 여기에 법에서 정한만큼만 형량을 가중해 최종 형량을 정한다.
필자도 법정에 서는 변호사로서 가끔 악질 범죄자들을 보면서 평생 감옥에 있게 하고 싶어도 법 제도상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이번 설 연휴기간 '악마판사'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면서 오랜만에 '과연 옳은 정의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