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발달장애인 가족들

생활고·돌봄부담에 극단적 선택 반복

2022-06-03 11:06:39 게재

부모연대 "24시간 활동 지원" 호소 … '가족 형태별 맞춤형 지원' 절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장애아동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것이 한 개인과 그 가족에게 얼마나 힘들고 가혹한 환경인지 절감하게 된다. 많은 노력에도 이런 결과를 막지 못했고, 계속 재발된다는 점에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피고인 개인을 비난하면서도 중벌에 처할 수 없는 이유는 결과에 상응한 적정한 형벌과 실제 선고되는 형벌 사이의 차이만큼이 바로 국가와 사회의 잘못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선고되지 않은 나머지 형이 우리가 받아야 할 비난의 몫이다."

<2005년 발달장애 자녀를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40대 여성에 대한 법원 판결문 중에서 발췌>

'죽음의 사슬을 끊어주세요' | 5월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49재 기간 집중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현수막을 들고 눈을 감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23일 숨진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49재가 끝나는 7월 10일까지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위해 집중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서대연 수습기자

극심한 생활고와 돌봄 부담 등으로 인한 발달장애 가정의 극단적 선택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장애인단체들은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 돌봄 부담이 보호자에게 모두 전가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특히 자신의 사후 홀로 남겨질 발달장애 자녀에 대한 부모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3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서울장애인부모연대는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장애가족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서울시의회 앞에 차리고 오는 7월 10일까지 장애인 탈시설 관련 조례안 통과를 요구하는 농성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들이 농성에 나선 데는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와 함께 부모가 극단 선택을 하는 사례가 반복되는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지난 5월 23일 서울 성동구에 사는 40대 여성이 발달장애가 있는 6살 아들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같은 날 인천 연수구에서 대장암 진단을 받은 60대 어머니가 30대 중증장애가 있는 자녀를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려다 실패했다.

앞서 3월 2일에는 친모가 발달장애인 자녀를 숨지게 하는 사건이 경기 수원과 시흥에서 각각 발생했다. 두 가정 모두 한부모 가정이자 기초생활수급가정으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극단적 선택을 한 장애인가정의 당시 상황은 유사하다. 자녀는 돌봄 없이는 홀로 서기가 어려운 발달장애인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사회적 지원서비스가 부족하다보니 돌봄은 몽땅 가족의 몫이 된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13.5%만이 일상생활지원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

자녀를 돌보기 위해 결국, 부모 중 최소 한명은 경제활동을 포기한다. 실제로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달장애 부모 117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부모 5명 중 1명은 자녀 지원을 위해 한쪽이 직장을 그만뒀다. 더 큰 문제는 한부모가정이나 저소득층의 경우 돌봄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국무조정실 자료를 종합하면 2020년 기준 등록 장애인은 262만명이다. 이중 발달장애(지적장애, 자폐성장애)인은 24만8000여명이고, 이중 2만9000여명이 장애인 거주시설에는 입소했다. 거주시설 입소 장애인 중 발달 장애인 비율은 80.1%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중복장애를 가진 발달장애인까지 고려하면 그 비율이 이 보다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장애인단체들은 극단적 선택의 주요 원인으로 발달장애인 가정에 대한 지원 부족을 꼽는다. 정부가 발달장애 가정에 활동지원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지만, 이용가능 시간이 부족하고 보조인 연결도 쉽지 않아 가족들의 양육 부담을 덜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장애인단체들의 설명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낮 활동 지원 서비스 개편 및 확대, 지원주택 도입 및 주거지원 인력 배치 등을 요구하며 지난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비극을 막기 위해선 부모가 온전히 맡는 발달장애 자녀의 양육 부담을 국가가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발달장애인은 전체의 26.9% 수준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수정 서울지부장은 "자녀가 장애가 있다고 해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부모들이 절대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장애 가족은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내몰리게 되거나 가정불화로 이어지기 쉽다.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발달장애인 가족은 돌봄 부담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민간기관이 힘을 합쳐 이들 가족이 지역사회와 인적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주영 교수(한국복지대 유아특수과)는 최근 발표한 '장애 자녀 연령별 부모의 가족 지원에 대한 요구' 논문에서 "선진국에선 단순 가정방문을 넘어서 장기적인 인적관계망 형성, 지역사회의 다양한 자원·지원체계와의 연계까지 포괄하고 있다"면서 "이는 단순 안부확인을 위한 1회성 가정방문은 장기적으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은 가족형태와 여건을 고려한 세심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특히 저소득 가구, 한부모·조손 가구, 고령자 가구, 다문화 가구이면서 동시에 구성원 중 발달장애인이 있는 경우, 위험요인이 커 이들에 대한 발굴·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부분 선진국들은 공통적으로 장애자녀를 두고 있는 한부모 또는 조손 가정 등을 지원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별도로 시행하고 있다.

한편, 지난달 29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벌써부터 법안의 내용, 예산이 얼마나 투입되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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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박광철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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