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섬 지심도
일제 군사시설 고스란히 … 지심도를 아시나요?
섬 전역이 아름드리 동백나무 등 난대림으로 가득 … 해방 직전까지 일본 적기부대 200여명 주둔한 '해상요새'
'지심도'(只心島)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섬의 모양이 마음 심(心)자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동백섬'이라고도 부르는데 남해안 섬들 가운데 동백나무 개체수와 수령이 압도적이다.
지심도 동백숲은 우리나라에서 원시림 상태가 가장 잘 유지되어온 곳이다. 숲으로 들어가면 한낮에도 어두컴컴하게 그늘진 동백숲 동굴이 이어진다. 동백꽃은 11월부터 4월까지 피고 지는데 이 시기에는 숲길 바닥에 떨어진 동백꽃잎을 피해가기도 힘들 정도다.
1968년 12월 31일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섬이지만 지심도에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유적지가 있다. 일제강점기 진해항을 방어하기 위해 일제가 설치한 군사기지로 소중한 근대식민유산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지심도는 경남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 동쪽에 있는 작은 섬이다. 전체 면적은 0.356㎢(약 10만여평)이고 해안선 길이는 4㎞ 정도 된다.
지난 4월 22·23 이틀 동안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이사장 조명래) 관계자들과 함께 지심도를 방문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시작되는 섬인 지심도는 다른 남해안 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아름드리 동백나무숲으로 유명하다. 일명 '동백섬'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지심도는 아름드리 동백나무만이 아니라 어른 네 사람이 손을 잡아야 둘러쌀 수 있는 거대한 '할아버지곰솔'(해송)과 '후박나무', '육박나무' '구실잣밤나무' '붉가시나무' '팽나무' '예덕나무' 등 오랜 수령의 난대림으로 가득하다. 아름드리 난대림 하층에는 '고비' '도깨비고비' '큰천남성' '큰반하' 등 초본식물들이 빼곡하다.
시 '거문도 동백나무' 이야기처럼 아궁이에 땔감을 때던 시절, 남해안 섬의 난대림 나무들은 섬 주민들의 주요한 연료였다.
지금 볼 수 있는 난대림은 대부분 1970년대 이후 땔감으로 쓰지 않으면서 자란 숲이다. 전남 고흥의 쑥섬(애도)에 600년 된 당숲이 남아있지만 매우 드문 사례에 속한다.
이곳 지심도의 난대림 식생이 그대로 보존된 배경에는 일제강점기 일본군 군사 요새로 쓰였던 아픈 역사가 있다.
◆작은 섬에 헌병 분주소까지 설치 = 일본제국은 1905년 5월 27~28일 대한해협에서 벌어진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동북아 해상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 뒤 일제는 거제도를 중심으로 진해만과 한산도에 걸쳐 광범위한 해군기지를 건설했다.
1912년에는 '진해만요새사령부'를 설치했고 진해만 방어를 위해 거제도 전역을 '군용지'로 지정하고 주요 섬 지역을 군사기지로 활용했다. 1936년 4월 23일 일제 육군 축성부 본부는 지심도를 국방용 토지로 매입했다.
국방시설과 요새 확장을 목적으로 소개령을 내리고 주민들을 일운면 지세포와 장승포로 이주시켰다. 그해 6월 29일 일제 육군 대신관방은 지심도에 있는 포대를 2기에서 4기로 증설한다고 결정했다.
1936년 7월 10일 포대 신축공사를 시작으로 군사시설 부속건물인 막사, 전등소(발전소), 방공호 등이 착공됐다. 포대 신축공사와 함께 지심도 헌병 분주소가 설치됐다.
작은 섬에 헌병대까지 설치한 것은 육지 헌병의 순찰이 어렵고 외국인 천주교회(공소)의 기반이 공고해 외국인 시찰과 주민 감시, 군사정보 유출 방지를 위해서였다. 헌병대 상주인원은 4명이었다. 군조(軍曺) 1명, 상등병 2명, 헌병보조 1명이 대구헌병대에서 파견됐다.
그해 11월 30일 포대 설치를 완료했고 이듬해인 1937년 9월 30일 45식 15밀리 캐논포(개조고정식) 2대가 배치됐다. 1938년 1월 27일 지심도 방어시설이 준공됐다. 포대, 전등소, 군 막사, 초소, 경계 표찰 등이 건설됐고 당시 돈으로 146만5000원이 들어갔다.
지심도 요새에는 '아까쯔기(적기赤旗)부대'가 주둔했다. 1945년 8월 20일 일본군이 해체되기 직전까지 양지암 1개 중대 등 200여명이 주둔하면서 작전을 수행했다.
◆1968년까지 일본 육군 소유지 = 1936년부터 건설된 지심도의 군사시설은 1900년대 초에 건설된 외양포와 저도 포대를 포함해 부산과 진해 일대를 요새화하고 태평양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전쟁 유적이다.
지심도의 군사시설은 장자등 포대, 절용도(영도) 포대, 기장 포대와 함께 건설됐다. 조선인 징용자들도 강제 동원된 것으로 알려진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구는 포 진지와 탄약고, 비행장, 관측소, 병사 숙소, 중대장 관사, 전등소(발전소) 관사 및 창고, 헌병 분주소 등이다.
4월 22일 지심도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이상철 반장댁에서 숙박을 하며 주민들 이야기를 들었다.
해방 후 지심도에는 15가구 100여명의 주민들이 들어와서 거주했다. 1954년에 개교해 1996년 폐교한 일운초등학교 지심도분교 학생수는 1982년 35명이었다.
지심도 토지 소유권은 1968년까지 일본 육군성 소유로 남아있다가 1968년 국방부로 넘어갔다. 2016년 국방부에서 거제시로 소유권이 이전됐는데 당시 매매가는 19억원이었다. 당시 주민들은 토지를 주민에게 먼저 불하할 것을 요구했지만 국방부는 거제시와 협의하라고 했다.
2017년 거제시가 지심도 관광개발 계획을 들고나왔다. 2018년에는 공유재산 임대기간이 끝났다며 12월 31일 이후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2019년 거제시와 지역주민회 협상이 무산된 뒤 거제시는 이주하지 않으면 단전 단수 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2021년 국민권익위 조사 이후 권익위-거제시-거제시의회-환경부-지역주민 사이에 합의서가 체결됐다.
합의서의 주요 내용은 △2006년 대지 기준 토지사용 허가 △허가된 건축물만 민박영업 △건축물을 거제시에 매각할 경우 감정평가금액으로 △금액 차이로 거래가 안될 경우 제3자 매각 가능 △불법건축 등으로 민박이 불가능한 실거주자는 지심도 내 국방과학연구원 건물 영업권 부여 등이다.
2022년 현재 지심도에는 15가구 22명이 거주한다. 이들의 주수입은 관광객과 낚시동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업이다.
◆"주민들 생활유적도 보전해야" = 김금호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사무처장은 11일 "2021년 국민권익위 중재안 이후 거제시는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거나 외부자본을 투입하는 관광개발 계획은 하지 않고있다"며 "하지만 감정평가금액으로 매입 예정인 일제강점기 전쟁유산에 대한 보전계획은 아직 수립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장답사에 동행한 성종상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은 12일 "지심도는 일제강점기 군사시설 유구가 온전히 남아있어 네거티브 역사유산으로 가치가 높다"며 "민박을 하며 살아온 섬 주민들의 생활유적도 지심도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자료이기 때문에 그대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아궁이가 있었을 적
거문도 동백나무는 대체로 땔감이 되었다
세상 추울 때 꽃 피워 불 밝힌 것도 모자라
아궁이에서 온몸으로 꽃이 되었다
능호관은 아내의 영결사에서
아무리 추워도 꽃나무는 때지 않은 아내를 추모했다
측은지심 지키려는 마음 아내가 도와준 것이다
하나는 꽃의 마음이었고
하나는 사람의 마음이었다
- '거문도 동백나무'. 안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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