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고로쇠나무

6월 중순인데 수액바늘 그대로 … 나무들 죽어가

2022-07-11 11:24:46 게재

지리산국립공원 내 반달가슴곰 서식지 … "자연보전지역에서는 고로쇠 수액 채취 허가 내주지 말아야"

골리수(뼈에 이로운 물)에서 나온 말이 '고로쇠나무'이다. 사람의 뼈에는 이로울 수 있지만 고로쇠나무엔 어떨까?
지난달 15일 제보를 받고 지리산국립공원 내 어느 계곡에 들어가보았다. 사람들이 골리수를 빼먹느라 수액채취용 주사바늘을 박아놓고 수확철이 지나도 그대로 둔 상태였다. 결국 고로쇠나무들은 허연 곰팡이 같은 버섯이 피고 죽어가고 있었다.
반달가슴곰이 활동하고 동면하는 국립공원 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국립공원공단은 관리감독을 어떻게 하는 걸까? 지난달 20일 이런 사실을 지리산국립공원 경남사무소에 알렸지만 경남사무소는 7월 10일 현재까지 현장확인을 못한 상태다.
현장 사진을 본 사람들은 "골리수가 아니라 살목수"라며 "자연환경을 지키자는 생협 등에서부터 고로쇠물 판매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의 모든 고로쇠 수액 채취현장이 다 이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국립공원 안에서는 이런 불법채취가 계속돼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슴높이지름 40cm 정도의 고로쇠나무에 수액 추출용 유출기(플라스틱 주사바늘) 3개가 박혀있다. 수확철이 한참 지났지만 주사바늘은 제거되지 않았다. 몇년에 걸친 고로쇠 수액 채취로 이 나무엔 10개 이상의 구멍이 뚫렸고 바늘을 제때 제거하지 않아 나무줄기에 허연 버섯이 피면서 고사가 진행중이다.


지난 6월 15일 지리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한 계곡을 찾았다. 지역주민의 안내를 받았고, 현지주민들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안내자 이름과 구체적인 지명은 밝히지 않는다.

마을 끝에 있는 집을 지나자마자 "반달가슴곰 활동지역. 매우 위험하니 즉시 돌아가시오"라고 환경부에서 걸어놓은 경고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여기서부터 국립공원 안이라는 뜻이다.

비법정탐방로가 이어지다 끊어지다 하더니 계곡을 건너면서 길이 없어졌다. 아침에 세찬 비가 내린 뒤라 계곡은 습기와 물안개로 자욱했다. 큰 바위틈 사이로 덩굴을 헤치고 계속 계곡 위로 올라갔다.

30분 정도 올라갔을 때 굵고 시커먼 플라스틱 관로가 보였다. 관 안으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났다. 안내한 지역주민은 "이건 식수로 쓰는 관이고, 고로쇠관은 굵기가 훨씬 가늘다"고 알려주었다.

잠시 후 식수관보다 굵기가 가는 고로쇠수액 관로가 나타났다. 이 관로를 따라 계속 계곡을 거슬러올라갔다. 길도 없는 계곡 바위들 사이로 1시간 가까이 올라갔을 때 주능선 아래 계곡이 시작되는 부채살 모양의 지형이 나타났다.

지리산국립공원 내 고로쇠 수액 채취현장에 버려진 각종 폐기물들. 인근 바위틈 안에는 예전에 고로쇠물을 지게로 지고 나를 때 썼던 플라스틱 물통들과 솥단지들까지 잔뜩 버려져있었다.


고로쇠수액 관로의 종점이었다. 주변엔 예전에 고로쇠수액을 채취할 때 밥을 해먹던 것으로 추정되는 큰 솥단지들도 보이고, 큰 바위틈 안에는 관로가 없을 때 고로쇠물을 받아서 지게로 져서 날랐던 대형 물통(말통)들이 나뒹군다.

◆한 나무에 10개 이상의 주사바늘 자국 = "여기로 올라오세요! 찾았습니다!"

안내한 주민이 말하는 바위 위로 올라가니 가슴높이지름 50cm 정도의 고로쇠나무가 수액채취용 주사바늘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한두 나무가 아니라 반경 20m 안에 5그루가 주사바늘을 그대로 달고 있다.

"여기 보세요! 한두해 채취한 게 아닙니다." 주민이 한 나무에 10개 이상 뚫린 주사바늘 자국을 일일이 찾아서 확인했다. 수액채취 주사바늘 자국은 나무 밑둥 근처에서 사람 키보다 높은 데까지 빼곡하다.

그 자국들이 치유돼 구멍이 막혀있는지 확인했다. 맨 위에 박힌 바늘을 뽑아 아래 구멍에 넣어보니 바늘이 2/3까지 그냥 들어간다. 상처가 제대로 치유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버어니어캘리퍼스로 측정해보니 수액채취 바늘은 외부직경 9mm, 내부직경 5mm, 평균 16mm 깊이로 나무에 박혔다.

"처음엔 낮은 데에 바늘을 박아서 수액을 채취하고, 그 바늘을 그냥 박아둔 상태에서 1년이 지난 뒤 이른 봄에 올라와서 핸드드릴로 그 위에 구멍을 뚫고 바늘만 교체해서 꼽는 식으로 작업을 합니다."

이렇게 1년 내내 주사바늘이 3개씩 꽂혀있는 나무들의 건강 상태는 심각했다. 나무 중심 줄기에 허연 버섯이 피어있다. 줄기에 버섯이 핀다면 나무가 죽어간다는 얘기다.

뿌리에서 올라간 큰 줄기에서 갈라진 큰 가지 3개 가운데 1개 이상은 대부분 이미 죽었다. 이런 골짜기는 과수원처럼 나무 하나하나가 충분히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고로쇠나무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노각나무' '신갈나무' '쪽동백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저마다 키를 높여서 자라는 햇빛 경쟁이 치열한 원시림이다.

고로쇠나무 성장에 필요한 수액을 뽑아내고 그 바늘을 1년 내내 그냥 꼽아두니 그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이다. 큰 가지 3개 중에 1개가 죽었다면 나무들 사이의 치열한 햇빛 경쟁에서 매우 불리해지고 결국 이 나무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

수목 전문가 마이스테크 김진환 대표는 10일 "구정을 전후로 나무가 뿌리에서 물을 빨아올리기 시작할 즈음 구멍을 뚫어 물관의 물을 빼내는 것이 고로쇠수액"이라며 "꽂아넣은 수액채취 바늘을 빼주어야 나무 수피 안쪽의 형성층이 상처를 덮을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형성층'(부름켜)은 식물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직이다. 나무껍질 안쪽의 진한 녹색부분이다. 동물의 줄기세포 기능을 하며 심지어 뿌리로도 변한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는 캐나다나 미국에 비해 한 나무에 구멍을 너무 크게 많이 뚫고 심지어 바늘을 빼지 않으니 사람으로 치면 뼛속의 골수가 계속 빠져나와 고사하는 형국"이라며 "나무에 구멍을 뚫으면 그 상처가 치유되는 데 통상 1개월에서 6개월이 걸린다"고 말했다.

◆"반달가슴곰 동면에서 깰 때" = 윤주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국시모) 실행위원장은 9일 "국립공원 내 고로쇠수액 채취는 자연보존지구라면 허가를 해선 안된다"며 "지금 주민들은 대부분 고령화돼 일정한 보상만 해주면 더이상 산속 깊은 곳에서 고로쇠 수액 채취를 안하겠다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특히 고로쇠나무에 천공(구멍뚫기)을 하는 시기가 곰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와 맞물리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생길 수도 있다"며 "환경부와 공단이 정책을 세워서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현장취재 결과에 대해 지난달 20일 지리산국립공원 경남사무소에 사실을 알리고 현장 조치를 요청했다.

지리산국립공원경남사무소 관계자는 8일 "6월 말 3일 동안 함양군 내 고로쇠 수액채취 허가지역을 대상으로 1차 현장점검을 했으나 동일 장소를 확인하지 못했다"며 "7일부터 2차 현장점검을 다니고 있지만 지리산국립공원 지역이 워낙 넓어서 아직 점검이 끝나지 않았다. 이번 주말 점검을 마치는대로 연락을 드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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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 글 사진 남준기 기자 namu@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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