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도 커지는 탄소배출권
"온실가스 배출 할당계수(벤치마크(BM) 방식), 국제 수준에 맞춰야"
가격 급등락 문제 여전, 시장 불확실성 해소 대책 강화 … "석탄발전과 천연액화가스 통합 BM적용 필요"
"최근 배출권(KAU21) 가격이 1주일새 t당 약 8000원 차이가 난 적이 있어요. 어느 순간에 팔았는지에 따라서 손실 정도가 큰 폭으로 달라지니 할당업체들한테는 부담이 될 수밖에요. 다음해로 이월할 수 있는 배출권양이 점점 줄어듦에 따라 거래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하는데 고민이 많죠."
7월 26일 배출권거래제 대상 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국가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 중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GHG Emission Trading Scheme, ETS)가 적용되는 비중은 80%대다. 이 중요한 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EU, 최적가용기술 기반 BM계수 적용 = 유럽연합 배출권거래제(EU-ETS) 4기(2026~2030년)부터 벤치마크 할당(BM) 비중이 75% 이상이 된다. 또한 EU-ETS 상위 10%에 적용되는 최적가용기술(BAT) 기반 BM 계수가 적용될 방침이다.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배출량 기준 1등부터 100등까지 기업이 있다고 치자. BAT 기반 BM계수는 1등부터 10등까지 실적을 평균 내 BM계수를 만드는 방식이다. 그만큼 더 깐깐하게 배출권할당을 주게 된다.
우리나라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배출권 총수량을 정하고 이를 기업별로 할당하는 계획기간별 국가 배출권 할당계획을 수립해 운영 중이다. 배출권 할당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BM과 과거 배출량에 기반을 둔 GF(Grand-Fathering) 등이다.
GF는 과거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배출권을 할당하는 방식이다. 적용이 쉽지만 배출 시설의 감축 효율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다배출 기업이 더 많은 할당을 받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BM 방식은 동일 업종 내의 배출시설의 배출원단위를 기준으로 배출권을 할당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업체가 상대적으로 많은 배출권 할당을 받을 수 있어 기술 진보를 유도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EU-ETS처럼 BM계수 강화를 추진 중이다. 현재 적용 중인 BM계수는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1등부터 100등까지 기업들의 배출량의 평균치를 내 가중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상위기술 10% 기준을 한 계수보다 느슨할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와 환경부는 2019년 12월 제 3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4차 계획기간에 BM강화 방침을 밝힌바 있다. 당시 할당대상업체 전체 배출량의 75% 이상까지 BM을 적용하되 최적가용기술 수준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7월 28일 유승직 숙명여대 기후환경융합과 교수는 "합리적인 제도 운용 측면에서 유상할당은 늘릴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서는 정교한 BM계수 설계는 필수"라며 "석탄발전소와 액화천연가스(LNG)를 분리해서 BM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를 합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제 협력 포럼인 ICAP(International Carbon Action Partnership)의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에 할당된 배출권을 정부가 경매방식을 통해 판매하는 유상할당 비율은 우리나라가 10%다. EU 57%, 영국 53%, 독일 100%, 뉴질랜드 56% 등에 비해 낮다. 유상할당 비율이 적을수록 기업의 비용 부담은 줄어든다.
◆"배출권 소멸 우려, 대책 필요해" = 지난해 2050 탄소중립의 중간목표인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2018년 대비 26.3% 감축에서 40.0%로 상향 조정됐다. 정부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부문별 연도별 달성방안을 만들고 있다. 내년 3월 확정되는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 해당 내용이 담긴다. 이 계획이 나오기 전까지 할당업체들은 기다려야 한다.
7월 25일 박현신 에코아이 탄소시장연구부 팀장은 "2030 NDC 부문별 연도별 세부 이행 방안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배출권 공급 과잉에 따른 소멸 이슈(배출권 가격 0원)가 반복될 우려가 있다"며 "경직된 이월 제한 조치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AU21 (2021년 배출권) 가격은 6월 13일 t당 1만3350원(종가)을 기록했다. 1월초 가격 3만5000원대와 비교하면 6개월 만에 약 1/3 수준으로 하락했다. 지난해 7월초 가격은 1만7750원이다.
이처럼 가격변동성이 크면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배출권 가격이 1년간 145% 상승하면 비금속광물 제품 제조업과 전기·가스·증기·공기조절 공급업의 부도율이 각각 1.2%p, 1.1%p 상승하는 걸로 분석됐다.
또한 비금속광물제품 제조업(시멘트 등) 및 1차 금속 제조업(철강 등)의 주가가 기준 시나리오(배출권 가격과 발전원별 구성비가 2021년 12월말 수준 유지) 대비 각각 31.3%, 19.4% 하락할 걸로 추정됐다. 그만큼 기업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뜻이다.
2019년 정부는 제 3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장기능 활성화를 위해 장내 선물거래 제도 도입 등을 밝힌바 있다. 배출권 선물시장이 개설되면 가격 변동성이 완화되고 시장 참여자들의 위험 부담도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한국거래소와 환경부는 선물 시장 도입을 위한 연구 용역 중이다. 이르면 내년부터 해당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선물 시장 비중이 88%(2011년 기준)인 EU와 달리 우리나라는 현물만 거래 된다.
◆외부 감축 실적, 법적 기준에 따라 인정 = 최근 유동성 이슈에 맞물려 민간 주도의 자발적 탄소시장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온실가스를 감축한 모든 기업이 참여해 '탄소 크레딧'(감축 물량에 대한 공인 기관 검증 인증서)을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이다.
문제는 배출권거래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잘못 알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정부는 유연성 확보를 위해 배출권거래제 외부에서의 감축실적을 인정하는 제도도 운영 중이다. 외부 감축실적은 상쇄배출권(Offset)으로 전환해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관련 법상 인정 기준이 따로 정해져 있다. 무조건 온실가스를 줄인다고 상쇄배출권으로 활용할 수 없다는 소리다.
7월 27일 환경부 관계자는 "3차 혹은 4차 할당 계획을 조정할지 여부는 2030 NDC 달성을 위한 부문별 연도별 이행 방안이 나온 뒤에 결정할 수 있다"며 "2030 NDC라는 큰 그림만 있는 상황에선 현 배출권 할당계획에서 업체들에게 할당된 양이 적합한지 판단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련 법에 따라 외부사업 방법론이라든지 인증 지침에 있는 사항들만 배출권거래제에서 인정을 해준다"며 "청정개발체제(CDM)에 등록돼 유엔에 인정을 받은 경우나 파리협정에 따라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가 협정을 체결해 해당 국가의 실적을 우리나라가 가져올 때는 배출권 시장에서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객관적인 인증 없이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인정해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교토의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CDM은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있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투자해 시행한 사업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감축분(CERs)을 감축 실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하지만 모든 국가가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파리협정체제 하에서는 지속가능발전 메커니즘(SDM)로 바뀌었다. CDM보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에 더 중점을 뒀다.
또한 한개의 국가가 달성한 감축 실적을 다른 국가로 이전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상응원칙(이중계산 방지)을 적용했다.
배출권거래제란?
온실가스 배출자가 배출량에 비례하여 가격을 지불하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을 발행하고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량만큼 배출권을 시장에서 사서 정부에 제출한다.
기업(할당업체)마다 감축 목표량이 있고 목표량만큼 감축하지 못하면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만약 이를 지키지 못하면 과징금을 문다. 반대로 목표량을 초과하면 그만큼 배출권을 내다 팔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 구매비용이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하면 탄소집약적 물품의 생산비용과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소비자들은 비싼 탄소집약적 물품 소비를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도 감소하게 된다.
나아가 부정적인 외부효과가 시장의 가격기구에 반영되지 못해 효율적으로 자원이 배분되지 못하는 '시장실패'도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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