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새출발기금, 탕감 재원 여전히 논란

2022-08-29 11:27:27 게재

고의연체 대책·재원 지자체부담 해소 안돼

정부 출연금 인상 등 근본 대책 마련 필요

"탕감 정책, 정부재정으로 해결해야" 주장도

지역 신용보증재단들의 보증여력 고갈 우려와 도덕적 해이 우려에 대해 정부가 보완책을 내놨다. 빚탕감 방식을 조정하고 일방적 감면 대신에 장기상환 방식을 도입했지만 현장에선 고의연체자를 걸러낼 장치가 부족하고 무엇보다 지자체에 떠넘겨진 탕감 재원 관련 대책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논란 끝에 두 번이나 연기했던 소상공인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 정책을 발표했다. 지난 11일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이 서울시청에서 만나 지역 신보 보증여력 문제를 비롯한 정부 채무조정 정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지역 신용보증재단, 서울시 등 소상공인 채무조정 업무를 담당할 일선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부안은 정책의 실효성과 특히 빚탕감 재원에 대한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은 도덕적 해이 부분이다. 3개월 이상 연체가 발생하면 최대 80%까지 빚을 탕감받는다는 조건은 여전하다. 이 때문에 저축은행 등 일선 금융기관들에선 "며칠만 더 연체하면 최대 80%까지 채무를 감면받을 수 있는 경우 이를 어떻게 걸러낸다는건지 모르겠다"며 "정부는 AI를 활용해 검증할 수 있다지만 스스로 부실채권자로 넘어가는 이들을 찾아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문제는 탕감 재원이다. 당초 새출발기금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사각지대는 서민금융 생태계 붕괴였다. 소상공인 채무감면 상당부분은 지역마다 있는 신용보증재단들이 감당하도록 설계돼 있다. 하지만 지역 신보들은 2년여에 걸친 코로나 기간 동안 보증 잔액을 소진했다. 여기에 정부가 운영하는 대규모 채무 감면 프로그램이 또다시 작동되면 소상공인 보증업무에 나설 수 있는 자산이 고갈된다. 이번 채무감면으로 소상공인 대출이 종료된다면 모르겠지만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추가 대출은 불가피하다.

지역 신보에 대한 정부 출연금 인상, 법 개정을 통한 지역 신보 자산 구성 요건 변경 등 근본적 개선책이 시급한 이유다.

서울시는 "코로나19 사태로 2년 이상 큰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들을 지원하고 이들을 옥죄는 채무를 감면한다는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면서도 "향후 지자체와 소통을 확대하고 지역 신보재단의 손실이 예상되는 경우 시급히 보완책을 마련하는 등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정부가 지자체 신보들의 보증여력을 유지하기 위해 출연금을 인상한 사례가 있다.

탕감재원과 관련,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관련 입법을 추진 중인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 이동주 의원(민주당)은 "채무조정을 추진하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부채탕감을 비롯한 채무조정으로 발생하는 손실을 지자체와 소상공인 금융을 지원하는 지역 신보에 떠넘겨서는 안된다"며 "정부의 결정에 의해 큰 규모 지원이 이뤄지는 것인 만큼 전적으로 정부 재정으로 충당하는 것이 현장 혼란을 줄이고 실효성 있는 지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발표한 정부안은 감면 대상 축소, 감면 방식 조정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부실이 확실시되는 채권은 지원대상에서 제외하고 사업을 유지하고 있거나 회생이 가능한 소상공인들을 되살리는데 주력하기로 했다. 3개월 이상 연체가 발생한 대출자에 한해 자산을 초과한 빚을 최대 80%까지 탕감하고 남은 빚은 10년간에 걸쳐 장기 상환하도록 방식을 바꿨다. 폐업자와 6개월 이상 휴업자 등 부실이 우려되는 대출자는 원금 감면 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이들은 감면 대신 금리와 상환 방식 조정만 가능하다.

고의 연체 등 도덕적 해이로 인한 사례는 엄격한 심사로 철저히 막겠다고 밝혔다. 나중에라도 고의 연체 행위가 적발될 경우 채무 조정 프로그램을 중단한다는 방침도 내놨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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