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말하는 산재예방 ⑩
빗장 걸린 산업안전 정보
지난 15일 카카오 데이터센터에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사망재해는 없었지만, 많은 국민들이 크고 작은 불편을 겪었다. 메신저 교통 금융 배달 등 카카오의 정보기반 서비스는 어느덧 국민생활에 큰 자리를 잡고 있음이 증명됐다.
이 사고가 시사하는 것 중 정보의 위력 만큼 정보관리의 중요성이 단연 부각됐다 반세기 전 미래학자들이 예측한 정보, 지식사회는 이미 현실이 됐다.
위험과 안전은 동전의 양면이다. 산업안전은 생산과정에서 형성될 수 있는 사고위험이 배제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위험을 보는 것이 안전의 시작이라는 슬로건이 시사하듯,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위험정보가 필수적이고, 안전수준은 위험정보의 양과 질에 비례하게 된다.
정보가 서구 안전선진국과 우리의 안전의 수준 차가 발생되는 중요 지점이다. 서구는 스리마일섬(TMI) 원전사고, 체르노빌 원전과 챌린저호 사고와 같은 대형사고를 심리 사회 등 다방면의 석학들이 조사·분석·연구하는 과정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해법들을 얻어왔다.
우리가 불안전한 상태, 불안전한 행동이라는 사고의 직접 원인 즉, 안전 1세대에 머물고 있는 사이에, 그들은 사고원인을 역학적, 관계를 보는 2세대, 시스템을 살피는 3세대까지 발전했다.
2009년 산업안전보건법 제36조로 위험성 평가가 법제화됐다. 생산과정에 형성될 수 있는 위험을 선제적으로 살피고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기 위한 방법이다.
정부 고시라는 틀이 형식화를 조장하는 면은 있으나, 작업 전에 참여자들이 구체적인 작업 특성을 고려할 수 있다는 면에서 틀에 박힌 점검, 개선 위주의 방식에 비하면 실용적이다.
사장되고 있는 귀한 위험 정보들
그러나 사고 발생 현장에서 사고 전에 실시한 위험성평가를 살펴보면 발생된 사고의 위험요인에 대한 평가는 누락돼있고, 수사기관에서는 이를 위반으로 보려는 경향까지 있다. 이는 사후편향적 관점이고, 실수나 고의적 누락이 아닌 위험에 관한 정보 부족이 주요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과거의 사고는 사고예방을 위한 매우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으나, 개별 기업 수준에서는 사고 건수가 매우 적고, 참여자들의 경험과 지식을 위험성평가를 통해 더한다고 하더라도 위험요인의 상정에는 양적, 질적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연평균 발생되는 산업재해 중 사망재해는 2000건 이내이나, 산업재해 전체는 10만건을 상회한다. 손실 우연 즉, 길 가다 넘어졌을 때의 부상정도처럼 사고에 따른 손실이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점을 고려하면 연 평균 10만여건의 산업재해 정보는 사망재해 예방에 있어서도 매우 유용한 정보다.
이 중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조사가 이루어진 사망사고의 일부 만이 사례로 간략한 정보로 공개되고 있다. 그 외 연간 10만건이 넘는 사고 관련 정보는 사장되고 있다. 의지가 있는 기업에게는 규제 보다 정제된 위험정보가 훨씬 더 유용할 것이다.
사망 아닌 일반재해 정보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상 업무 기록에서 수집된다. 이는 보상을 위한 업무 연관성 관련 정보인 바, 산재통계를 집계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수년 전 산재발생 사업장의 보고서 제출을 사업장에 의무화했으나 필요한 위험 정보를 얻기에는 이행과 내용이 미미한 상황이다.
사고예방에 유용한 위험 정보 공급
정보가 중요하고, 그 위력이 질과 양에 좌우되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으로 기업의 사고예방을 위한 부담이 급격히 증가됐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 사고예방에 필요한 정보를 기업에 공급하는 것은 법이 정한 정부의 의무 중 최우선이라 생각한다.
다행히 국내에는 이 역할에 적합한 전문 공기관으로 안전보건공단이 있다. 그간의 조직 경험과 학습을 바탕으로 변화된 산업안전보건 환경에 부응하는 혁신 차원에서 연 10만여건의 사고를 조사 분석 정제해서 생산현장별 특성에 따른 사고원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검토가 필요하겠으나, 공공 행정 중복의 해소와 산업안전 선진화라는 일석이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전의 습관을 보다 나은 습관으로 무한히 바꿀 수 있는 능력이 동물과 인간의 차이라는 베르그송의 통찰을 되새기며 정보 창고의 빗장을 풀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