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 민간인학살사건' 국가배상

2023-01-12 11:04:31 게재

법원 "국가가 국민의 신체의 자유·생명권 침해 … 유족 60여명에게 11억원 지급" 판결

"인공(북한) 치하에서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국군) 수복 후 경찰에 의해 죽은 주민 중 아버지 A씨를 비롯해 9명이 있는데 한 명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충남 당진군 일대에서 군인과 경찰 등으로 구성된 치안대에 의해 살해된 '충남지역 민간인 희생사건' 유족들에게 국가가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14부(서보민 부장판사)는 A씨 유족 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애초 140명이 소송에 참여했으나 일부는 소를 취하했고 103명이 끝까지 했다. 재판부는 이중 희생자 유족으로 확인된 60여명에게 모두 11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정부 소속 공무원이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A씨를 살해해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된 신체의 자유, 생명권, 적법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했다"며 "(정부는) 소속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해 A씨와 유족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A씨 유족 17명에 1억2000만원을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2010년 8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한국전쟁 중 1950년 9월 28일(수복 후)부터 1951년 1.4후퇴 무렵까지 충청남도 당진군 금산군 홍성군 등 7개 지역 163명 이상의 주민들이 부역혐의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치안대 등에 의해 불법적으로 희생됐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에는 당진군 일대 희생자 유족들이 함께했다.

과거사위는 경찰의 '처형자명단' '사실조사서' '부역자명부' '사살자명부' 등을 토대로 당시 경찰관들에 대한 진술 및 현장 조사를 한 뒤 이같이 밝혔다. 당진군 외에도 금산군 비비미재와 부리면 부리지서 지하벙커, 어재리 형석굴, 논산군 두마지서 천변, 조치원여중 인근 등에서 사건이 이어졌다.

치안대란 수복 후 우익단체와 의용소방대 낙오군인·경찰 등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치안대는 인민군 점령시기 부역혐의나 좌익활동 경력자 등을 색출·처벌한다는 명목으로 보복적인 살해와 연행, 구금 등을 했다. 1951년 서산검찰은 치안대로 활동한 15명을 적발해 기소한 뒤 실형을 선고 받게 했다.

B씨 유족도 부친이 북한군 점령 당시 마을에서 일을 하게 됐고, 냇가 구덩이에서 총살됐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B씨 유족은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는데다가 부친의 제적등본상 사망일시는 1950년 9월 30일로 사건 발생 시점과도 근접했다. 재판부는 B씨가 희생자로 유족들에게 손해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재판부는 소송을 제기한 일부에 대해 희생자 또는 희생자의 유족이라고 보지 않았다.

C씨 유족은 이 사건으로 선친이 희생됐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C씨 부친의 이름과 희생자 이름이 발음만 유사했기 때문이다.

전시 상황에서 정부 기록이 부정확했던 특수사정을 고려해도 제적등본이나 가족관계가 입증되지 않는 경우 재판부는 희생자나 희생자의 유족이라고 보지 않았다.

교사로 활동하던 D씨의 경우 군인이나 경찰이 아닌 마을 청년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D씨 유족들도 정부의 손해배상을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D씨 유족이 가해자로 지목한 이들이 당시 군경 등 정부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청구를 기각했다.

정부는 민사상 손해배상 시효가 지났다며 맞섰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2020년 5월 대법원은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이나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조작의혹 사건' 등에서는 국가재정법상 5년의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

재판부는 또 각종 사정을 고려해 희생자 본인의 위자료를 8000만원, 배우자 4000만원, 자녀 800만원, 형제자매 400만원으로 각각 정했다.

1심에서 희생자 및 유족으로 인정받지 않은 일부는 추가 증거를 확보해 항소할 것을 검토 중이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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