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너무 불안한 전세제도, 이제는 고쳐야 할 때

2023-01-19 11:20:37 게재
최승호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

변호사로 살아온 지 16년이 되었다. TV 개그콘서트의 '달인'이라는 코너에서, 달인은 16년을 수련하면 그 분야에 통달하는데 필자는 달인이 되지 못했다. 특히 부동산 관련해서는.

서울에 아파트 한채를 구입하는 것은 고사하고 2년마다 큰 폭으로 상승한 전세보증금을 올려주는 것도 급급했다. 2년마다 전세계약을 체결하면서 숱한 고민을 했고, 힘들게 번 돈을 잃을까봐 불안에 떤 적도 있었다.

집주인이 최초 약속과 달리 전세금을 받아 근저당권의 일부만 말소한다거나, 이사 갈 집을 먼저 계약해서 집주인에게 통보했는데 집주인이 살고 있는 집의 전세가 나가지 않으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해 고통을 받은 것은 약과다.

소개받은 물건 중에서는 신탁등기가 됐거나 전세가가 매매가에 근접한 물건도 있었는데, 도저히 계약할 수 없는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중개사무소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최근 문제된 전세사기 사건은 내가 경험하고 고민한 건과 유사한 사례가 상당수다. 특히 조금만 파 보면 문제의 소지가 높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개사들이 앞장서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치부해 온 방식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놀랍기만 하다. 대부분의 피해자가 거래경험이 일천하고 순수하여 타인을 잘 믿는 20~30대라는 점에서 너무 안타깝다.

정부대책, 전세사기 근본 해결책 못돼

전세사기가 속출하자 정부는 임대인 동의없이 미납국세를 조회하는 방안, 임대인 변경 시 종전 임대인의 국세체납액 한도에서 국세우선원칙을 적용하는 방안 등을 통과시켰다.

무주택자를 위한다며 전가의 보도처럼 내놓던 전세대출금 변제기한 연장, 대출한도 확대 등을 언급하고, 서울시는 중개사무소를 점검한다는 대응책도 내놓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미봉책일 뿐, 전세사기를 근본적으로 막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필자가 전세계약을 체결하면서 경험한 바로는 전세는 너무나 불안한 제도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1항은 '임대차는 임차인이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을 마친 때에는 그 다음 날부터 제삼자에 대하여 효력이 생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주택을 인도받고 주민등록을 마친 다음날 0시부터 대항력이 발생한다. 이는 집주인이 임차인으로부터 잔금을 지급받은 당일에 근저당권을 설정하면, 근저당권이 임차권의 대항력보다 우선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문제점이 있음에도 아무도 법과 제도의 변경을 말하지 않는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최근 역전세가 시작되었다. 불안해서 중개사를 통해 집주인의 동향을 알아보았더니, 집주인은 역전세로 인한 하락분을 돌려줄 돈이 없지만 정부 규제가 풀렸으니 집값이 다시 오르면 집을 팔아서 돌려주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세 세입자로 살아가는 불안감은 영원히 해소되지 않을 것 같다.

전세제도와 작별할 시기 다가와

이제는 전세와 작별할 시기가 다가온 것은 아닌가. 정부도 속시원히 전세제도의 문제점을 실토하고, 전세와의 종말을 고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래야 전세로 인한 갭투자가 사라져 집값의 안정화를 가져올 수 있고, 결국에는 출산율도 제고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