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리포트

국립공원을 보는 철학이 필요하다

2023-01-31 11:33:02 게재
"우리나라 국립공원은 틀려먹었어. 지리산과 설악산을 봐. 국립공원 지정하고 몇년도 못 가서 산 정상이 자갈바닥이 됐어. 원래 초록색 이끼로 완전히 덮여있던 곳이야."

우리나라에서 잊혀졌던 '백두대간'을 되살려낸 지리학자 고(故) 이우형 선생의 말이다. 그는 술이 얼큰하게 들어가면 "국립공원은 자연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제도인데 우리나라는 국립공원이라고 하면 등산하고 놀러가는 관광지로 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 열리는 국립공원위원회에서 흑산도공항이 화두다. 흑산공항은 사업비 1833억원을 들여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인 흑산도 68만3000㎡ 면적에 길이 1.2㎞, 폭 30m의 활주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금호컨소시엄이 시공할 예정이다.

공항건설 부지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안에 있어 환경부 국립공원심의위원회의 국립공원 계획 변경안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오늘 안건은 흑산면 예리 공항 건설예정지와 인근 도초, 비금, 흑산면 일대 249만299㎡를 국립공원에서 해제하고, 지도읍 선도 갯벌 공유수면과 도초 비금면 일대 557만219㎡을 국립공원으로 편입하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흑산공항 추진 배경은 MB정부로 거슬러올라간다. 2011년 10월 이명박정부가 '국립공원 안에 있는 섬에 활주로 길이 1200m 이하 소규모 공항을 건설할 수 있도록' 대통령령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흑산공항 전략환경평가 당시 환경부 산하 연구기관들은 모두 '반대' 입장을 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사업계획의 입지 타당성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고, 국립생태원은 "활주로를 조성할 경우 조류충돌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립환경과학원도 "흑산도를 대표할 지형을 훼손시킬 가능성이 높아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고 했고 국립습지센터도 부정적 의견을 냈다. 흑산도에 있는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도 '부적절 대상지'라는 자문의견을 제시했다.

'연간 60만명'이라는 이용객 예측치도 뻥튀기 논란에 휩싸였다. 인근 무안공항의 경우 국토부는 이용객 예측치로 2012년 253만9000명을 제시했지만 2012년 실제 이용객 수는 예측치의 3.8%에 불과한 9만6000명이었다.

흑산공항 건설은 공항시설법 시행규칙과 국토부 고시 '조류 및 야생생물 충돌위험 감소에 관한 기준'에도 어긋난다. 섬 대부분이 공항 반경 8㎞ 안에 들어가는 흑산도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의 핵심 경유지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흑산도 일대는 수만km를 날아온 철새들의 쉼터이자 먹이공급지다. 우리나라 최고의 철새 교육장소이자 이동하는 철새에 가장 많은 가락지를 부착해 모니터링을 하는 연구장소이기도 하다. 환경부는 이런 연구결과를 중요 보도자료로 발표해왔다.

설악산국립공원 케이블카, 덕유산국립공원 무주리조트, 지리산국립공원 성삼재도로 등 국립공원 개발사업은 그 지역주민들을 분열시키고 공동체 파괴로 이어졌다. 오랜 시간 같은 땅에서 문화를 만들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형벌과도 같은 비극이다.

환경부는 생태계 보전과 국립공원 관리를 책임지는 정부부처다. 이런 원래 역할을 잊어서는 안된다.
남준기 기자 namu@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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