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플라스틱, 환경재앙 지름길

2023-02-20 11:15:37 게재

배런스 "재활용 더 비싸 … 셰일가스 호황, 신흥국 수요 증가로 플라스틱 감축 어려워져"

매년 3억5400만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매립·소각되거나 바다에 버려진다. 코카콜라와 몬데레즈인터내셔널, 네슬레 등 많은 기업들이 신품 플라스틱을 줄이고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진척은 더디다. 시장의 여러 요소들과 충돌하면서다. 코카콜라 부사장 마이클 골츠먼은 "너무 힘든 과제이자 위기"라고 말했다.

18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자매지 금융전문매체 '배런스'에 따르면 가장 큰 문제는 신품 플라스틱 비용이 재활용 플라스틱보다 훨씬 싸다는 점이다.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은 세제와 샴푸 자동차오일 우유 등과 같은 것을 담는 용기로 쓰인다. '케미컬 마켓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신품 HDPE 1파운드 가격은 54센트인 반면 재활용은 1.33달러로, 146% 비싸다. 2018년만 해도 가격 차는 31.3%였지만 이후 크게 확대됐다.

케미컬 마켓 애널리틱스의 플라스틱·고분자 글로벌 대표인 닉 바피아디스는 "재활용 플라스틱 비용이 점점 비싸지고 있다. 조만간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1회용 플라스틱 제품을 금지했고 최근 새로운 재활용 목표치를 제시했다. UN은 2024년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법적 강제력을 갖는 국제적 합의를 개발하는 방안을 구상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뉴욕을 비롯한 8개주는 1회용 플라스틱 봉지를 금지했다.

행동주의 주주들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행동주의 비영리단체 '애즈유소우'(As You Sow)의 압박에 펩시콜라는 지난해 12월 음료디스펜서와 같은 재활용 시스템을 통한 음료 판매량을 기존 10%에서 2030년 20%로 2배 늘릴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신품 플라스틱 생산량과 폐기물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호주 비영리단체 '민더루재단'에 따르면 2019~2021년 1회용 신품 플라스틱 용기 사용량은 재활용 용기의 15배에 달했다. 2021년 배출된 추가적인 플라스틱 폐기물은 2019년 대비 660만톤 늘었다.

기업들의 한가지 선택지는 재활용 플라스틱에 따른 비용증가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공급이 타이트한 데다 소비자의 물가 민감도가 크기 때문이다. 스웨덴 룬드대학교 화학공학 연구자인 프레드릭 바우어는 "기업들의 목표 달성이 많은 이유에서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고군분투하고 있다. 네슬레 패키징·지속가능성 대표인 조디 루셀은 "2025년 신품 플라스틱 사용량을 1/3 줄일 계획"이라며 "네슬레 포장재 95% 이상이 재활용 또는 재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플라스틱 사용 기업 중 하나인 코카콜라는 2030년 포장재 재활용 비율을 50%로 높일 것이라고 약속했다. 코카콜라와 펩시는 또 플라스틱을 덜 쓰는 제품을 설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경량화'(lightweighting)다.

하지만 신흥국을 중심으로 플라스틱 수요가 늘면서 신품 플라스틱 생산량도 늘어나고 있다. 현재 연간 5억톤 이상이 생산된다. 케미컬 마켓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전세계적으로 120곳 이상의 플라스틱 생산공장이 착공했거나 운영에 들어갔다. 포장재에 쓰이는 폴리올레핀 생산용량은 4000만톤 이상 추가됐다. 잠재적 생산량의 20%가 늘어난 셈이다.

또 다른 공급 물결은 중동에서 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는 다각화 차원에서 플라스틱 생산 공장에 투자하고 있다. 전기차 열풍이 불면서 석유수요 감소를 예상하기 때문이다. 케미컬 마켓 애널리틱스의 바피아디스는 "플라스틱 수요가 늘고 있다. 반면 원유 수요는 정점에 달하고 있다"며 "중동 산유국들은 수요가 커지는 곳으로 초점을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는 더 많은 플라스틱 폐기물과 온실가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60년 전세계 플라스틱 폐기물이 현재보다 약 3배 늘어나지만, 이중 재활용 물량은 1/5이 안될 전망이다. 플라스틱 생산에 따른 탄소배출량 역시 2019년 18억톤(총량 중 3.4% 비중)에서 2060년 43억톤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전기차와 태양광발전, 기타 탈탄소 노력을 통해 얻는 효과를 무화시킬 수 있다. 미국환경보건국(EPA) 전임 지역행정관이자 현재 비영리단체 '비욘드 플라스틱' 대표인 주디스 엔크는 "이는 재앙으로 가는 경로"라고 말했다.

현 상황의 기원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오른다. 경합하는 여러 요소들이 플라스틱과 지속가능성을 충돌하게 만들었다.

우선 수압파쇄법(프래킹) 호황이다. 에너지기업들이 셰일암석에서 석유와 가스를 캐내기 시작했다. 프래킹은 천연가스 공급 과잉을 낳았다. 에탄 공급량이 풍부해졌다. 여러 플라스틱의 공급원료나 원재료다. 엑슨모빌과 셸 등 에너지기업들은 에탄을 에틸렌으로 전환하는 공장을 확장하거나 신규로 지었다. 이를 폴리에틸렌으로 전환하면 비닐봉지 등을 만들 수 있다. 국제환경법센터 기후·에너지 부문 선임 변호사인 스티븐 페이트는 "플라스틱은 21세기 화석연료 산업의 성장스토리"라고 말했다.

오늘날 생산되는 신품 플라스틱 전부를 흡수할 만큼 수요가 받쳐주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플라스틱이 생산되고 있다. 셸은 최근 펜실베이니아 소재 폴리에틸렌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케미컬 마켓 애널리틱스의 바피아디스는 "미국 석유기업들은 천연가스를 공급원료로 쓰면서 비용 이득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만든 신품 플라스틱 상당수는 수요가 상승하고 있는 중국과 다른 지역에 수출될 전망이다.

또 다른 요소는 재활용 플라스틱 수요가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ESG가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기업들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고 재활용 플라스틱을 더 많이 사용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2020년 월마트와 타깃 코카콜라 제너럴밀스 몬데레즈인터내셔널 다논노스아메리카 등 100곳에 육박하는 미국 소매기업과 소비재 제조사들은 '2025년까지 포장재를 100% 재활용·재사용하거나 쉽게 썩도록 만들겠다'는 미국플라스틱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재활용 진척은 더뎠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플라스틱 폐기물의 약 5%만 재활용된다. 나머지 플라스틱은 미국 내 매립·소각되거나 다른 나라로 수출되거나 바다에 버려진다. 게다가 한때 주요 재활용 국가였던 중국은 더이상 플라스틱을 받지 않는다. 플라스틱을 잔뜩 실은 바지선이 아시아 여러 국가를 종착지로 삼지만 매립되거나 결국 해양에 버려진다.

네덜란드 로렌스 마이어 연구팀이 2021년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제출한 논문에 따르면, 전세계 10대 플라스틱 해양 투기국 가운데 브라질을 제외하고 모두 아시아 국가였다. 필리핀은 연간 35만6371톤의 플라스틱을 해양에 버려 1위에 올랐다. 2위는 인도(12만6513톤), 3위 말레이시아(7만3098톤), 4위 중국(7만707톤), 5위 인도네시아(5만6333톤), 6위 미얀마(4만톤), 7위 브라질(3만7799톤), 8위 베트남(2만8221톤), 9위 방글라데시(2만4640톤), 10위 태국(2만2806톤)이었다. 그외 나머지 국가들이 바다에 버린 플라스틱은 17만6012톤으로 1위 필리핀 투기량의 절반 수준이었다.

기업들은 진퇴양난이라고 하소연한다. 유니레버 글로벌 지속가능성 선임간부인 에드 셰퍼드는 2022년 UN기후변화 패널에서 "신품 플라스틱이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춰 재활용 노력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니레버는 2018년 1%였던 플라스틱 재활용 비율을 2020년 11%로 늘렸지만, 신품 플라스틱이 저렴해지면서 이익과 관련한 도전과제를 제기한다"고 덧붙였다.

펩시의 경우 2021년 포장재 6%에 재활용 플라스틱을 썼다. 이 기업 최고 지속가능성 대표인 짐 앤드류는 "2025년 25% 목표치에 크게 못미친다. 우리 노력만으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펩시는 2020~2021년 신품 플라스틱 사용을 전반적으로 늘렸다.

글로벌 순환경제 네트워크를 주도하는 '앨런 맥아더 재단'에 따르면 글로벌 플라스틱 포장재 시장 비중이 20%에 달하는 기업들이 2021년 신품 플라스틱 사용을 전년 대비 2.5% 늘렸다. 2018~2021년 사용후 버려진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PCR플라스틱 활용이 중량 기준 10%로 두배 이상 늘었음에도 신품 플라스틱 사용도 덩달아 늘었다.

맥아더 재단은 기업들과 협약을 맺어 2025년까지 신품 플라스틱 사용을 2018년 수준보다 20% 낮추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불가능해 보인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플라스틱 사용을 연 평균 5.4%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석유화학기업 다우는 2035년까지 포장재에 사용하는 모든 제품을 재활용 또는 재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우는 캐나다 앨버타에 전세계 최초 탄소중립 에틸렌 공장을 짓고 있다. 이 기업 CEO 하워드 웅거라이더는 "우리는 현재 85%의 포장재를 재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네덜란드 석유화학기업 리온델바젤 인더스트리즈는 2030년까지 2020년 탄소배출량의 30%를 줄이겠다던 약속을 42%로 상향했다. 이 기업은 재활용은 물론 유기성폐기물로 만든 플라스틱 등 화석연료에 기반하지 않은 제품에 투자하고 있다.

재활용과 관련해 한가지 떠오르는 기술은 '화학적 재활용'이다. 플라스틱 분자를 분해해 새로운 제품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 기술은 보다 많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다. 다우와 엑슨모빌, 리온델바젤 인더스트리즈는 화학물 재활용 공장을 짓고 있다.

리온델바젤 CEO 페터 바나커는 "급성장하는 이런 제품 시장에서 선두주자가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액슨 선임부사장인 마이크 자모라는 "엑슨의 미국 텍사스 새로운 화학적 재활용 공장은 연간 8000만파운드 이상의 플라스틱을 처리할 수 있다. 세계 최대 규모"라고 말했다.

하지만 화학적 재활용이 게임체인저는 아니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화학적 재활용은 전통의 재활용 방법보다 비싸다. 에너지집약적이기 때문에 탄소배출을 크게 줄이진 못한다. 화학적 재활용 과정엔 열분해와 가스화가 필요하다. 오염물질과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과정이다.

사실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일 방법은 여러가지다. 각국 정부가 외부효과(금전적 거래 없이 어떤 경제 주체의 행위가 다른 경제 주체에게 영향을 미치는 효과)에 대해 소비자나 기업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 탄소배출권처럼 플라스틱배출권 제도를 시행할 수 있다. 법적구속력 있는 목표를 제시한다면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시킬 수 있다. 보다 많은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도록 경제적 인센티브를 주고 재활용도가 낮은 기업에겐 벌금 등 채찍을 가할 수 있다. 소비자들 역시 1회용 비닐봉지와 1회용 컵 사용을 줄이고 플라스틱 용기를 멀리해야 한다. 포장주문을 줄이고 온라인상거래 반품을 자제해야 한다.

배런스는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경제활동이 줄어들 것임을 시사한다. 도전과제가 너무 커 현재 정치시스템이 이를 해결하기에 벅찰 것"이라고 비관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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