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방음터널 화재도 '안전관리·초동조치 부실' 인재

2023-02-21 11:16:51 게재

경찰, 트럭운전자·관제센터 직원 영장 신청

정부 '불쏘시개' 소재 퇴출 안전지침 개정 중

지난해 12월 5명이 사망하는 등 총 6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사고는 인재인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특히 트럭의 불길이 방음벽에 닿은 지 4분 만에 터널 전체가 화염에 쌓이는 등 소재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경기남부경찰청 제2경인고속도로 화재 사고 수사본부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최초 발화한 5톤 폐기물 운반용 집게 트럭 운전자 A씨와 (주)제이경인연결고속도로 관제실 책임자 B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20일 밝혔다.
경기도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현장에서 지난해 12월 30일 경찰과 소방 등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A씨는 트럭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해 화재를 예방하지 못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A씨가 몰던 이 트럭이 2020년에도 고속도로를 달리다 불이 난 전력이 있는 점 등에 미뤄 차량 정비 불량 등 관리 미흡에 따른 화재로 판단했다. 앞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차량 배기 계통의 열기에 의해 차체가 과열돼 매연저감장치 부근의 전선이 약해지면서 발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감정 결과서를 경찰에 전달했다.

A씨는 불이 붙자 차량을 3차로에 세운 뒤 소화기를 이용해 1분여간 자체 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불길이 잡히지 않자 오후 1시 49분 119에 신고하고 대피했다. A씨는 화재 직후 바로 인근에 있던 소화전 및 비상벨 등을 사용하지 않아 더 큰 피해를 막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피 방송, 통제 안내 없어 = B씨는 화재 발생 시 비상 대피방송 실시 등 매뉴얼에 따른 안전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피해를 키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당일 오후 1시 46분 A씨 트럭에 화재가 발생한 장면은 관제실 폐쇄회로(CC)TV에 송출됐다. 하지만 B씨를 비롯해 근무자 3명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B씨는 3분 뒤인 오후 1시 49분 순찰 중이던 직원이 화재를 목격해 보고한 후 인지했다. 그러나 매뉴얼에 따라 조치해야 할 비상 대피 방송이나 진입 통제 안내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또 불길이 번져 전기 공급이 끊기는 바람에 안양 방향 방음터널 입구에 있는 차단시설이 작동하지 않아 피해를 키운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들 이외에도 트럭 소유 업체 대표와 관제실 직원 2명 등 3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아울러 방음터널을 공사한 시공사에 대한 수사도 계속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혐의가 중한 피의자들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시공사 등 남은 부분에 관해서도 계속해 수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9일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을 지나던 폐기물 수거 트럭에서 불이 났다. 불길은 도로 옆 방음터널에 옮아 붙으면서 총 길이 830m 방음터널 가운데 600m 구간을 태웠다. 이로 인해 5명이 사망하고, 41명이 다쳤다. 또 터널 내부에 고립된 차량 45대가 전소됐다.

◆발화 4분 만에 대형 화재로 번져 = 이번 수사 결과에서는 대다수 방음터널에 사용한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MMA) 소재가 얼마나 화재에 취약한게 여실히 드러났다. 쉽게 불에 타는 PMMA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것이 경찰의 시각이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이번 화재는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1시 46분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 내 성남 방향 200여m 지점에서 발생했다. 화재 초기 상황을 보면 트럭 하부에서 불이 나기는 했지만 연기가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이 차츰 커지면서 방음벽과 천장에 옮아 붙기 시작한 뒤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트럭 불길은 화재 발생 4분 만인 오후 1시 50분 천장에 닿았다. 연기도 반대편 차로인 안양 방향 차로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방음터널 벽과 천장을 하나둘 타고 넘어가던 불은 급속히 확산했고, 오후 1시 54분에는 불똥이 쏟아져 내렸다.

방음터널 소재가 화재에 취약한 PMMA였던 탓에 불과 4분 만에 대형 화재로 번진 것이다. 이때부터는 터널 안이 검은 연기로 가득 차 진입 차량이 오도 가도 못하는 '고립' 상태에 빠진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내년 초까지 소재 전면 교제 = 이런 가운데 정부도 화재에 취약한 소재 사용을 제한하는 등 방음터널 안전강화 지침을 마련한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불연성 소재·자재 사용 의무화 등 방음터널 화재 안전 강화를 위한 터널 방재지침 개정작업에 착수했다.

현재 '도로터널 방재·환기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에는 방음터널을 설치할 경우 재질을 '불연성'으로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국토부 전수조사 결과, 전국 170개 방음터널 중 58곳(34%)과 1만2118개 방음벽 중 1704개(14%)에 PMMA 소재가 사용됐다.

국토부는 지침 개정과 더불어 PMMA를 사용한 방음터널의 소재를 교체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방재지침 개정작업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개정 마무리 전까지 우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신규 시설에는 불연성 소재·자재를 사용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도로관리청, 지자체 등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이어 "도로관리청은 올해 말까지, 지자체는 내년 2월까지 예산을 확보해 기존 방음터널 등의 소재를 교체할 것을 명령했다"면서 "교체 전까지 소화설비·CCTV·진입 차단시설 설치 및 피난·대피 공간 확보 등 임시 안전조치를 위할 것도 명령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PMMA를 사용한 방음터널 19곳과 방음벽 136개를 내년 초까지 불연소재로 교체할 계획이다. 또 방음터널의 전부 철거·교체 전까지는 방음터널 상부 또는 측면 방음판 일부를 우선 철거하기로 했다. 부산시 역시 PMMA 소재가 사용된 방음터널을 유리 또는 금속재질로 교체한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장세풍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