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말하는 산재예방 ⑭
방안의 코끼리 몰아내기
사무실에 함께 있는 코끼리를 상상해 보자. 잠깐 신기할 수는 있겠지만 공간 차지, 동선의 불편, 소음, 악취 등 많은 불편을 토로할 것이다. 그런데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마치 코끼리가 없는 것처럼 생활하게 된다. 어떻게 그럴까? 인간의 적응 기제가 그 상황의 주역이다.
우리 사회에도 사회적 비용과 불편에도 불구하고 필 없는 관례가 유지되는 경우들이 있다.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국립공원 입구에서 징수한 사찰 문화재 관람료가 그에 해당할 것 같다.
'마지막 강연'으로 유명한 랜디 포시 교수는 "사회의 불필요한 관례를 없애기 위해서는 코끼리를 인식한 사람들이 코끼리를 외치고, 그런 사람이 많아져야 코끼리를 몰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산업안전 행정 중 사망재해 발생 작업에 대한 작업중지 명령이 이제 그렇게 된 것 같다.
효용 한계를 넘어선 작업중지 명령
작업중지 명령은 사망사고가 발생된 작업 또는 설비를 개선하지 않고 그대로 작업하는 경우에 발생될 수 있는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다. 취지는 매우 타당해 보여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 시행 1년이 지난 지금 사망재해가 발생된 작업 또는 설비의 위험을 방치한 채 작업하다가 같은 사고가 발생되는 경우가 있을까.
위험을 가중시킨 행정
경영자 대상의 상한 없는 실형, 법인 대상의 엄청난 벌금 등의 처벌이 중대재해법에 정해져 있고 '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과 그 이행' 의무도 법에 명시돼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일 사고의 재발 위험을 방치할 '바보기업'은 없을 것이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전, 사고예방에 관한 기업 경영 차원의 관심과 기여를 유인하기에 사망재해에 대한 법적 처벌 수준이 너무 낮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작업중지 명령은 안전확보를 위한 경영적 조치를 유인하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중대재해법이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는 현재,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 기업에 대한 작업중지 명령은 '방안의 코끼리'가 돼버린 셈이다.
한 아파트 부지조성 공사 현장에서 방음벽 시공 중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동식 크레인으로 들고 있던 길이 6m의 철 기둥이 고정기구인 반자동 샤클(집게)에서 이탈되는 바람에 임의 방향으로 넘어지면서 작업자가 맞아 사망했다.
사고 수습 후 기업은 현장에 내려진 작업중지 명령을 해제하기 위해 정부 지정 전문업체에 재발방지대책 수립을 의뢰했다.
그 대책에 사고 시 사용되었던 반자동 샤클을 일반 샤클로 변경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오작동을 일으킨 반자동 샤클은 당연히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반자동 샤클은 일반 샤클 작업에 수반되는 차량형 고소작업대 사용 시에 발생됐던 장비의 전도, 작업자 추락, 감전 등의 사고위험을 제거할 목적으로 수년 전에 개발·활용돼온 기구이다.
이번 사고를 제외하고는 반자동 샤클 사용과 관련된 사망사고 사례는 없었다. 하지만 일반 샤클을 사용하는 경우에 수반되는 차량형 고소작업대 사용 작업에서는 과거 3년(2019년~2021년) 간 34건의 사망재해가 발생했다. A방법, B방법 각각의 위험성에 관한 검토는 생략한 채 A방법에서 사고가 났으니 B방법으로 하라는 비논리적인 대책이다.
'제정'보다 중요한 '개정'
이후 검토 과정에 예측하지 못한 분리핀 이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중구조의 반자동 샤클 제품을 찾았고, 해당 모델로 교체하는 대책이 관할 기관에 제출됐다. 이중구조라는 의미는 단일 구조의 오작동 확률이 1/100인 경우에 오작동 확률을 1/200이 아닌 1/10000로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기관은 반자동 샤클을 일반 샤클로 대체할 것을 조건부로 작업중지를 해제했다. 그에 따라 현장에서는 공기 압박에 더해 불필요한 고소작업의 위험에다가 공사비까지 감수해가며 후속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위험의 제거라는 가장 근본적인 안전조치가 적용된 반자동 샤클은 부적절한 행정으로 인해 사장될 위기를 맞았다.
같은 행동의 반복이 판단을 생략하게 되는 습관 또는 중독 상태가 되듯이 규제도 유사한 면이 있는 것 같다. 더구나 강제력과 적용범위 면에서 부적절한 규제는 엄청난 자원낭비와 발전의 저해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마침 정부에서 관련 법규 개정을 착수했고 특별팀도 편성했다고 한다.
어려운 작업이나 세밀한 실상 파악을 통해 합리성 효용성에 현장 수용성까지 해결되는 개정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