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 빠진 도서관에 책 붓기' … 서고가 없다

2013-08-13 11:19:46 게재

서울 22개 도서관만 계산해도 지난 5년간 책 154만권 구입, 115만권 폐기

도서관계 "지역별 공동보존서고 건립 절실 … 중앙정부 관심 보여라" 촉구

전국의 공공도서관에 책을 보관할 장소가 크게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오래된 책 순으로 폐기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도서관계는 그 대책으로 지역별 공동보존서고의 건립 필요성을 수년째 역설하고 있지만 중앙정부나 각 지자체의 사업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더구나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지난해말 용역연구를 통해 각 지역 공공도서관의 서고 부족 문제를 구체적으로 파악했지만, 현재 수립중인 제2차 도서관발전종합계획(2014~2018년) 초안에 관련 대책을 누락한 것으로 확인돼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내년이면 전국 공공도서관 용량 포화 = 문체부가 지난해 10월 대구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지역단위 공동보존서고 건립 타당성 연구'에 따르면 내년 전국 모든 시도의 공공도서관 서고 용량이 가득차는 것으로 분석됐다(우측 표 참조).

특히 울산과 대구, 부산의 경우 벌써 올해 부족률이 -49.7%, -28.6%, -21.3%로 나타나 사안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울산 지역의 '연도별 장서증가량 대비 수장공간 부족률'이 -49.7%라는 것은 울산 지역 전체 도서관이 보관 가능한 책수가 100권이지만, 신규구입 도서 또는 구입 예정도서를 포함해 현실적으로 도서관이 보관해야 할 책이 149.7권, 즉 150권으로 나머지 49.7권(50권)은 폐기처분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현재 상황대로 도서관 시설은 그대로인 채 신규 구입 도서가 계속 늘어난다면 2020년 전국 도서관 평균 수장공간 부족률은 -118.9권에 이르게 될 전망이다. 즉 보관해야 하는 책은 218.9권인데, 실제 공간엔 100권밖에 채울 수 없어 나머지 118.9권, 즉 119권을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용역을 수행한 대구대 산학협력단은 "2012년 현재 부산과 대구, 울산, 강원, 전남, 제주 등 6개 시도의 공공도서관은 한계에 직면한 상태이며 2014년부터는 모든 시도의 공공도서관 수장공간이 부족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며 "지역단위 공동보존서고를 건립해 도서관 수장공간의 부족 현상을 타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식 버리듯 눈물 머금고 책 폐기" = 위 자료는 각 시도별 공공도서관을 총합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교육청 산하 도서관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교육청 산하 도서관의 경우 개관이 오래돼 보존해야 할 책은 많은 반면 보관장소는 협소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서울시교육청 산하 22개 도서관 및 평생학습관을 보면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구입한 책은 154만8313권인 데 반해 폐기 권수는 115만4755권에 달했다.

물론 이용자가 거의 찾지 않는 오래된 책들을 중심으로 처리한다고 해도 한해 평균 100권을 구입하고, 동시에 75권을 폐기하는 것은 사안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서울교육청 산하 한 공공도서관 관계자는 "단지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자료실 공간이 없어 책을 폐기해야 하는 일은 생때같은 자식을 버리는 심정과 다를 바 없다"며 "공공도서관 서고 부족 문제를 시급히 공론화해 관련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901년 개관해 부산에서 가장 많은 소장권수를 자랑하는 부산시민도서관 관계자 역시 "지난해 9월 현재 시민도서관의 보존공간 부족률이 39%에 달하는 등 부산 전체 공공도서관의 부족률이 평균 19%에 이르렀다"며 "올 하반기 부산시와 공동보존서고 건립 문제를 협의할 예정이지만, 지자체에 모든 걸 맡기지 말고 중앙정부가 적극 나서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

대책 마련 소홀한 문체부 = 지난 2006년 개정된 도서관법은 공공도서관 자료의 통합적 보존관리 책임을 광역자치단체에 부과한 바 있고, 지난해 8월 최종 개정된 현행 도서관법은 광역자치단체가 설립한 지역대표도서관에 자료수집 지원 및 보존 업무를 맡겼다.

하지만 대부분 지자체장의 관심이 도서관의 양적 성장에 치우쳐 있어 자료 보존엔 무관심하다는 점, 교육청 산하 도서관과 지자체 산하 도서관 등으로 관리 체계상 이원화됐다는 점 때문에 현재까지 도서관 보존서고의 문제점이 공론화되지 않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도서관계는 "국민적 공감대를 불러일으켜야 할 중앙정부가 뒷짐을 진 채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실제 문체부 산하 도서관박물관정책기획단은 내년부터 향후 5년간 공공도서관 발전의 로드맵으로 기능할 '도서관발전종합계획' 초안을 짜면서 서고 부족 문제 해결의 핵심인 공동보존서고 부문을 누락한 것으로 확인돼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서울의 한 공공도서관 관장은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도서관발전종합계획에 공동보존서고 부문이 누락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최종 계획안에는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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