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말하는 산재예방 (17) | 안전 선진국으로 가는 길 (3)
중대재해법 1, 2호 사건 판결을 보며
법원 판결은 사회에 어떤 이야기를 하는 걸까. 정의 공평 등 여러 면이 있겠지만, 입법목적 달성을 위한 일벌백계의 교훈이 아닐까 싶다.
그러려면 그 법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판결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각자가 살아온 환경과 학습에서 만들어진 판단의 틀을 가지고 살아간다. 판결이 사람마다 다른 개인적 판단의 틀을 꿰뚫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려면 상식적 이해가 기본이다.
사고의 직접원인으로 간주되는 현장 안전조치 미이행과 근로자의 안전수칙 위반의 근본적인 배경에는 경영 요소에서 안전의 누락 또는 경시가 자리잡고 있다. 사고예방 분야에서 일하면서 이런 경우를 자주 접한 필자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법(중대재해법)에 많은 기대를 한다.
경영자의 관심과 기여라는 입법취지에 더해 핵심의무가 안전보건시스템의 구축과 이행이기 때문이다. 법 집행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의 산업안전 수준을 도약시킬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업무 차 이동 중에 17년의 법관 생활을 마치고 같은 회사에 입사한 판사 옆자리에 앉게 됐다. 그 자리에서 "법원의 판결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상식이 지배하는가?"라는 내 질문에 그는 "그렇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듣고 수사 일선에서 종종 일어나는 무리한 위반규정 적용이 검찰과 법원 단계를 거치며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게 됐다.
중대재해법 1, 2호 사건이 판결됐다. 판결의 총론적 취지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두 판결에서 명시한 범죄사실들이 마음에 걸린다. 법리의 문제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판결이 중대재해 예방에 도움이 되려면 준수 의무자들이 공감이 필요한데,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준수 의무자들의 공감 대신, 부담과 혼란으로 메울 것 같다.
두 판결에서 범죄가 된 작업계획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규칙) 제38조에 '중량물 취급작업'은 작업계획서를 작성하고 그에 따라 작업하도록 정해져 있다. 작업계획서에 포함시켜야 할 내용은 '추락, 낙하, 전도, 협착, 붕괴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안전대책'이다. 그것이 전부다.
적절한 작업 계획수립과 이행은 작업의 원활한 수행에 도움이 되고, 그 결과로 사고가 예방되는 면에서 필요한 절차다.
그런데 '중량물 취급작업'에 관한 중량 기준이 없다. 또 작성해야 하는 내용인 '사고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의 의미는 '사고방지는 알아서 하고, 사고가 나면 책임지세요' 아닌가. 불친절하기 이를 데 없다.
작업계획은 작업 내용, 목표 수준, 도구, 환경, 재료와 인력 등 여러가지 작업조건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익숙하거나 단순해서 사전계획이 필요치 않은 작업들도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작업계획서가 사고를 방지하거나 피해를 경감시킨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있을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느 누구도 어느 작업에 대해 어떻게 작업계획서를 작성해야 법규를 준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게다가 생산현장의 대다수 작업은 자재나 도구 등의 물건을 다루는 일이어서 거의 모든 사고의 경우에 법적 책임을 문제삼을 여지가 있다. 실제 대다수의 중대산업재해 수사에서 위험성평가와 작업계획서를 문제삼고 있다.
실제 현장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기업 입장에서 법원 판결은 취사선택 사항이 아니다. 이런 판결에 따라 물 한양동이 나르는 작업까지 작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기업도 있을 것이다. 면책을 위해 외부용역을 통해 실용성도 없는 방대하고 포괄적인 작업계획서를 마련하는 기업도 있을 것이다. 엄청난 자원낭비가 일어날 것 같다.
근로자 수 50인의 제조업의 경우 중대재해 발생 확률은 통계적으로 500년에 한번 정도다. 이런 중소규모 기업 경영자들은 법규 준수를 아예 포기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면 우선 현재 정부에서 진행중인 '안전규칙 개정'에 반영하는 것이 급선무 같다.
위험성 평가나 작업계획서 등 결과적 책임을 묻게 되거나, 인과관계에서 객관적인 근거가 없거나, 의무가 모호한 포괄적 조항들은 법규에서 제외시켜 법 준수의 당위성을 확보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권고기준인 KOSHA GUIDE(안전보건기술지침)로 편입시켜 현행화 구체화시켜 현장적용을 위한 유연성은 반드시 유지해야 할 것이다. 수사관 검사 법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기업에 어떤 메시지가 될지 깊이 헤아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