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정부 대 중국전략 효과 불투명

2023-08-14 11:13:16 게재

영국 이코노미스트 "얽히고설킨 공급망 … 미국 동맹국들, 오히려 중국과 더 가까워져"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중국을 겨냥한 관세 부과, 투자 검토, 수출 통제를 늘리고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각) 바이든 대통령이 대 중국 경제전쟁에 쓸 미국의 최신무기를 공개한 게 최근 사례다. 해외투자심사를 도입하고 중국 양자컴퓨팅, 인공지능(AI) 프로젝트 및 첨단 반도체칩에 대한 일부 투자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민감한 산업에 대한 중국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다.

미국의 새로운 정책은 일견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과 미국 간 직접적인 경제관계는 줄어들고 있다. 컨설팅기업 '키어니'에 따르면 2018년 미국이 '저렴한'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수입한 품목의 66%가 중국산이었지만 지난해엔 51%에 그쳤다. 미국은 대신 인도와 멕시코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투자흐름도 조정되고 있다. 2016년 중국기업이 미국에 투자한 금액은 480억달러에 달했지만, 6년 뒤인 지난해 31억달러로 줄어들었다. 최근 주중 미국상공회의소 회원사들이 꼽은 3대 투자대상국에서 중국이 탈락했다. 2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은 아시아 대상 신규 외국인투자 프로젝트의 대부분을 가져갔지만 지난해엔 인도나 베트남에 뒤처졌다.

미중 직접교역은 줄었지만…

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다르다는 지적이다. 미국이 중국에서 다른 국가로 눈길을 돌렸지만 이들 국가의 생산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는 동남아시아다. 이 지역의 대미수출이 증가함에 따라 이들 나라가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중간재는 폭발적 증가세다. 또 멕시코에 대한 중국의 자동차부품 수출은 지난 5년 동안 2배 증가했다.

가장 심각한 사례는 중국산 제품이 단순히 재포장돼 제3국을 거쳐 미국으로 보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22년 말 미국 상무부는 동남아시아에 본사를 둔 4개의 주요 태양광 공급업체가 중국산 제품을 사소한 가공을 통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발했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피하기 위해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얽히고설킨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며 "더 걱정스러운 건 미국의 동맹국들을 중국에 더 가깝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의 글로벌 정책·전략부 학장인 캐롤라인 프룬드에 따르면 특정산업에서 중국과 가장 강력한 무역관계를 맺은 국가들이 미중 무역재편의 가장 큰 수혜자였다. 이는 특히 첨단 제조제품 범주에서 두드러졌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의 첨단제품 수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4%p 감소한 반면, 중국에서 대거 수입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대만과 베트남의 점유율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중국 존재감은 가장 민감한 제품 생산에 여전히 필수적인 요소임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연구도 비슷하다. IMF에 따르면 미국이 탈중국화에 가장 열을 올리고 있는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시장에 가장 많이 진출한 국가는 중국과 가장 밀접한 산업적 연관성을 가진 나라들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공급망은 더 복잡해지고 무역은 더 비싸졌지만 중국의 지배력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이 모니터링하는 97개 제품 카테고리 중 69개 카테고리에서 중국의 대 아세안 수출비중이 늘어났다. 특히 배터리와 산업용용광로, 이발기 등 전자제품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올해 첫 6개월 동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에 대한 중국의 전자제품 수출은 5년 전보다 80% 증가한 490억달러였다. 외국인직접투자(FDI)도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에 대한 중국의 투자는 미국을 추월했다.

여전한 중국 지배력

아시아 각국 정부가 중국의 독단적인 행보에 우려감을 표한다. 하지만 아시아 최대 경제대국과의 상업적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2020년 11월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와 중국이 체결한 무역협정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최근 수년 동안 무역이 급증한 중간재 분야에서 일종의 단일시장을 형성한다.

미국 인접국가에서도 중국 존재감은 여전하다. 특히 자동차산업에서 두드러진다. 멕시코 '전국자동차부품제조업체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니어쇼어링(인접국가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것) 투자의 40%가 중국에서 멕시코로 이전한 공장들에 돌아갔다. 풍부한 중간재 공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기업들은 멕시코에 한달 평균 3억달러의 부품을 수출했는데, 이는 5년 전보다 2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

최근 수년 동안 자동차산업이 호황세인 중부유럽과 동유럽에서도 중국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2018년 체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가 수입한 자동차부품 중 중국산은 3%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기자동차의 급속한 보급에 따라 중국산 수입이 급증하면서 현재 중국은 중부유럽 및 동유럽이 수입하는 모든 자동차부품의 10%를 공급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을 빼고 그 어떤 나라보다 많은 규모다.

미국 동맹국과 중국 간 긴밀해지는 무역관계는 역설적인 결과다. 미중관계 악화에 당황한 기업들은 일부 생산을 중국에서 유지하고 나머지는 베트남과 같이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로 이전하는 '중국 플러스 원'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동맹국 최종제품에 대한 미국의 수요는 중국산 중간재에 대한 수요를 늘리는 동시에 중국기업이 다른 곳으로 이전해 제품을 생산하고 수출할 유인을 제공한다.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대기업인 애플은 최근 수년 동안 중국 이외 지역으로 생산을 이전했지만, 여전히 생산의 상당부분을 중국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애플의 공식 공급업체엔 베트남에 소재한 25개 생산기업이 있지만 중국본토에도 여전히 9개 생산기업이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아시아와 멕시코, 유럽 일부 국가들이 궁극적으로 중국으로부터의 수입과 투자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실은 많은 국가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적어도 공급망 전환과 관련해선 형편이 좋을 때만 미국의 우호적인 친구가 되려는 상황을 설명해주는 대목"이라고 전했다.

미중 한 나라만 선택하라면…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수출국들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진은 최근 각국이 미중 양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나리오를 모델링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최악의 영향을 받는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이 4.7%까지 감소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특히 중국과 인접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중국과 미국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청을 받으면 이들 국가는 미국 편을 들지 않을 수도 있다"며 "미국이 새로운 무역협정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들이 미국을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로 여기는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무역이 가져다주는 투자와 고용을 절실히 원한다. 특히 가난한 국가들 입장에서 중국으로부터 투자와 중간재를 받아 미국과 서방에 완제품을 수출하는 과정은 일자리와 번영의 원천이다. 많은 국가들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만족하고 있다. 때문에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무역과 투자에서 중국과 헤어지려는 과정이 실제로는 중국과 미국 동맹국 간의 금융·상업적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자유시장은 소비자에게 상품을 공급하는 가장 저렴한 방법을 찾기 위해 적응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방대한 인력과 효율적인 물류를 갖춘 중국이 여전히 가장 저렴한 공급자로 남아 있다"며 "미국의 새로운 규칙은 중국과의 무역을 재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공급망 전체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제거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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