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진압 '경찰관 면책특권' 확대 추진
여당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 발의 … "인권침해 피할 정교한 입법 필요" 주장도
정부·여당이 계속되는 '묻지마 범죄' 등 잇단 강력범죄를 막기 위해 현장 경찰관의 면책특권 확대를 추진한다. 경찰이 요구해온 '고의·중대과실' 요건을 없애고, 면책 대상 범죄도 대폭 확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인권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2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만희 의원은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경찰청이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의 필요성을 제시했다"면서 "경찰의 의견을 존중해 이번 주 중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의원은 "개정안을 중심으로 야당과 협의해 인권침해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절충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정안의 핵심은 면책 범위의 확대로 알려졌다. 특히 법에서 나열된 면책 조건 중 주관적 평가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때'라는 대목을 삭제한다. 이를 통해 현장 경찰관들이 자신의 행위가 위법한 것인지 고심하지 않고 단호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은 '범인 검거 과정에서 타인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 경찰관에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면책 조항이 적용되는 범죄의 종류도 확대된다.
현행법에 따르면 경찰은 형법상 살인·상해 및 폭행·강간·강도, 가정폭력범죄나 아동학대범죄 등이 행해지려고 하거나 행해지고 있을 때 진압을 위해 벌어진 일에 대해서만 형의 감면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가 변화하고 범죄 행태도 다양해지고 있어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 경찰의 입장이다.
이처럼 당정이 면책 규정을 손보는 것은 흉악범죄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지만 현장 경찰관들이 공권력 행사에 따른 책임이 주어질 것을 우려해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특히 당정은 잇단 흉악범죄의 원인 중 하나로 이를 판단한다.
당정은 앞서 지난 22일 '묻지마 흉악범죄 대책 마련 당정협의회'를 열고 면책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모았다. 당시 윤희근 경찰청장은 "경찰 면책 규정이 있지만 굉장히 한정적이고 고의 중과실에 한해서 한다"면서 "법 개정이 수반돼야 할 사항이기 때문에 법 개정 논의를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역할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최소한의 규제 장치를 축소하는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경찰관에게 '고의·중과실'이 있을 때만 형사책임을 묻는 현행법은 경찰관에게 법체계가 허용하는 최대치의 면책 범위를 허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칫 범죄 현장에서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진압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지난 5일 중학생이 흉기 난동 용의자로 지목돼 체포되는 과정에서 심한 상처를 입는 일이 발생했다. 이 학생은 이어폰을 끼고 조깅 중이었다. 윗선에서 강경 대응이 강조되면 현장에서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찰에 의해 온몸을 다쳤다는 학생의 아버지는 당시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잘못된 신고로 인해 무자비하고 강압적인 검거가 이뤄질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미성년자까지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다"고 주장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현장에서 범죄자 진압에 적합한 방법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그런데 현장 경찰관들이 공권력 행사에 따른 과도한 책임이 주어질 것을 우려해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인권침해 논란을 피할 수 있도록 국회 논의과정에서 정교한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당정은 법안이 발의되면 행안위 법안소위원회에서 야당과 타협의 과정을 거쳐 이번 정기국회 내에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