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미래 생물다양성

"국가 차원의 구상나무 복원 대응 지침서 필요"

2023-09-18 11:11:53 게재

저지대 수종 경쟁에 밀려, 산림생물다양성 위협 … 중복되지 않도록 지역별 거점 연구 대학 등 역할 분담할 때

"한라산 영실 지구의 경우 구상나무 고사 원인 중 기후변화 영향이 두드러지는 지역입니다. 구상나무 건전성 평가 지표 개발 등 한라산 구상나무 복원 대응 지침서(매뉴얼)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김종갑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녹지연구사

"좋은 생각입니다. 한라산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 차원의 구상나무 복원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장

한라산국립공원 영실 지구 내에 고사된 구상나무들. 사진 김아영 기자


14일 '고산지역 기후변화 취약생태계 연구협의체'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아고산대 상록침엽수 보전 방향성 설정'을 위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2018년 발족한 고산지역 기후변화 취약생태계 연구협의체에는 환경부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국립수목원 국립공원공단 국립생태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세계유산본부 등이 참여한다.

구상나무는 한국 특산식물(한정된 지역에서만 생육하는 고유식물)이다. 한반도 기후변화의 척도가 되는 '기후변화지표종'으로 꼽힌다. 한반도 남부지방에만 자라며, 한라산과 지리산이 주요 집단 서식지다. 2013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멸종위기종으로 등재됐다.

구상나무 유묘(幼苗). 사진 김아영 기자

◆고온 가뭄 등 스트레스 받는 구상나무 = 구상나무 등 상록침엽수들은 해발 1200미터 이상의 서늘한 지역에만 제한적으로 자생하는 특성상 기후변화로 인한 건조기후와 고온현상에 취약하다.

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온 상승률은 지난 100년 동안 약 1.7℃로 지구 평균 0.75℃보다 2배 이상 빠르다. 제주도의 온난화 속도는 더 가파르다. 겨울철 기온이 꾸준히 상승, 고온과 가뭄이 겹치는 확률이 높아지면서 구상나무 등 상록침엽수들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한라산 고산식물의 분포 특성' 논문(공우석)에 따르면, 기온이 오르면 식물의 개화 시기가 빨라지고 난대성 식생의 분포대가 확대된다. 반면 구상나무 등과 같은 한대성 식생은 쇠퇴한다.

또한 구상나무 분비나무 등과 같은 고산 및 아고산지대(고산대와 산지대 사이 수직분포대) 식생의 경우 저지대에서 올라오는 수종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나는 상황이다. 넓은 지역에 걸쳐 침엽수림과 혼효림(두 종류 이상의 수종으로 구성된 산림)은 줄어들고, 상록활엽수림·낙엽활엽수림 등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나아가 산림의 기후변화 적응속도보다 기후대의 이동속도가 더 빨라 멸종위기종이 증가하는 등 산림생물다양성이 감소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효인 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사는 "최근 기후변화에 따라 산 정상에 분포하는 고산 침엽수종의 생육상태가 취약해지고 있다"며 "지속가능한 숲 유지를 위한 자생지 내 유묘(幼苗) 출현빈도도 감소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물론 구상나무 고사 원인은 기후변화 외에도 다양하다. 한라산의 경우 노루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노루가 구상나무의 어린잎을 먹어치우면서 문제가 된다. 한라산에서 구상나무의 발아된 싹이나 그로부터 자라나는 작은 유묘를 거쳐 치수(稚樹)로 커 나가는 기간은 20여 년 이상 걸리는데, 이 기간에 노루 피해를 입게 되면 자연히 성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아고산 생태계 연구 DB 구축 계획" =구상나무 절멸 가능성에 대해서는 찬반 입장이 나뉘는 상황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변화에 대해 폭 넓은 연구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부분에는 공감대가 형성된지 오래다.

명현호 국립공원연구원 기후변화연구센터장은 "구상나무 고사 지역에 대해 복원으로 방향을 설정할지, 아니면 자연천이에 무게를 둬야 할지 고민"이라며 "사회적 합의가 있지 않다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우석 기후변화생태계연구소장은 "구상나무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작은 초본류나 관목류가 고사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구상나무에 대한 연구가 중복되지 않고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지역별 거점 대학 등을 중심으로 가장 인접한 곳에서 해당 지역의 구상나무를 연구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 공유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오승환 경북대학교 산림생태학 조교수는 "구상나무에 대한 연구는 다른 분야보다 관련 데이터 축적량이 상당하다"며 "가공하지 않은 원자료(row data)들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연구자들이 관련 자료들을 분석하다 보면 새로운 발견을 할 수도 있고 더 발전적인 논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데이터 표준화 작업도 필요하다. 다양한 영역에서 수집된 데이터들을 연계해 활용하기 위해서는 변인(연구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현상과 관련된 자료의 속성이나 특징)의 형태 등이 일관성 있게 관리돼야 한다.

고산지역 기후변화 취약생태계 연구협의체 의장인 양희문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장은 "아고산 생태계 관련한 다양한 연구 내용들을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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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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