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환자·가족 위해 '동네방네' 나섰다

2023-11-28 10:37:29 게재

금천구 주민 주도 '안심 보듬마을'

교통편의 제공하고 기억학교 운영

"귀에 쏙쏙 들어오게 잘 가르쳐요. 하나라도 놓칠까봐 수업 시작하기 전에 일찍 와요."

서울 금천구 시흥5동주민센터 강의실. 노년층 주민 10여명이 '초성 이어가기'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기사가 수업 소재다. 첫 글자 초성을 확인한 뒤 다음 순서 자음으로 시작하는 글자를 찾아 동그라미를 치는 식이다. 놀이처럼 수업을 하면서 흐릿해져 가는 기억을 붙드는 '동네방네 기억교실'이다.
유성훈 금천구청장이 지난해부터 기억안심택시를 운행하고 있는 이정식 기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금천구 제공


인근 시흥2동에서 수업을 위해 시흥5동을 찾는다는 91세 84세 부부는 낱장짜리 복사물에서 초성 찾기를 일찌감치 끝내고 두툼한 금천구소식지를 펼쳐든다. 부부는 "집에서도 열심히 숙제를 한다"며 웃었다.

28일 금천구에 따르면 구는 주민과 지역사회 자원을 활용해 치매안심마을 사업인 '동네방네 안심 보듬마을' 사업을 추진 중이다. 치매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을 바탕으로 환자와 가족이 지역사회 내에서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기억교실은 그 중 대표적인 사업이다. 홀몸노인이나 노인부부, 초기 인지장애가 있는 주민을 대상으로 치매 발병 가능성을 완화하기 위해 마련한 과정이다. '두근두근 뇌운동' '기억력 훈련'을 비롯해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통한 정서 지원까지 이루어진다. 보건소 치매안심센터 전문가가 수업을 주도하지만 주민자치회 자원봉사자 등 '기억친구'를 양성해 지역 곳곳으로 찾아갈 계획이다.

치매 선별검사와 진단검사를 위해 치매안심센터를 찾는 주민들에게는 이동편의를 제공한다. '기억안심택시'다. 지역 내 운수회사와 손을 잡고 센터에 외부 전문의가 방문하는 매주 화요일 오전과 목요일 오후에 택시를 운영한다.

금천구 전체 택시회사에 연락을 했는데 딱 한곳에서 응했다. 회사에서 추천한 기사 두명을 대상으로 치매 관련 교육을 진행한 뒤 지난해 8월부터 송영서비스를 시작했다. 올해까지 400여명이 혜택을 봤다. 김명애 간호사는 "기사들이 치매안심센터와 검사 등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주민들에게 추가로 필요한 서비스를 우선 귀띔해줘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정식(64) 기사가 14년째 한 택시를 모는 동료와 함께 서비스를 맡고 있다. 그는 "센터를 올 때는 '괜찮다' '괜한 걸음 하는 거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분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면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며 "더 많은 분들이 혜택을 보도록 서비스를 확대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억안심택시 이용자는 상담을 통해 정한다. 거동이 불편하고 기억력 저하가 중증까지 진행된 경우가 우선이다. 교통 여건도 따진다. 조우리 사회복지사는 "거동이 불편하고 보호자가 없는 경우 치매가 상당히 진행됐는데도 검사를 부담스러워 한다"며 "집부터 치매안심센터까지 택시로 이동하기 때문에 검사가 훨씬 수월해진다"고 분석했다.

안전망 구축에는 무엇보다 주민들 역할이 크다. 공인중개사 약국 편의점 음식점 등 개인 사업장은 '치매 안심 가맹점'이 된다. 배회하는 환자를 발견하면 임시로 보호했다가 가정으로 빠르게 복귀하도록 돕는 곳들이다. 주민 개인은 '기억보듬 봉사단'에 참여해 건강꾸러미를 제작하고 나눠주는 데 동참한다.

유성훈 금천구청장은 "치매가 있어도 안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금천구를 만드는 데 동네방네 주민들이 함께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치매 관리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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