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충격 새 기후대응
막 내린 COP28(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 국제탄소시장 힘겨루기는 '계속'
진정한 의미의 '전지구 이행점검'은 아직 … 재생에너지 용량 3배 늘리기 위해 유연한 전력시스템 강화 시급
우려가 현실이 됐다. 지난 13일(현지시각) 막을 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화석연료 퇴출(phase-out)' 합의는 불발됐다. 대신 '에너지 부문에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transitioning away from fossil fuels in energy systems)'이라는 당사국들의 동의를 힘겹게 얻었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기후총회 끝에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의 필요성을 전세계가 인식했을지 몰라도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여전히 모호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COP28에서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 합의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기후위기가 가속화하고 있지만 화석연료 사용을 감축하거나 중단하는 방법·시기가 정작 당사국총회에서 정해진 적이 없었다.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야 석탄에 한정해 퇴출이 아닌 '단계적 감축(phase down)'을 논의했다.
사이먼 스틸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은 13일 COP28 폐막 연설에서 "우리가 두바이에서 화석연료 시대를 넘기지는 않았지만 이번 결과는 종말의 시작"이라며 "이제 모든 정부와 기업은 이러한 약속을 지체 없이 실물 경제 성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번 총회에서 합의된 '전지구적 이행점검 결정문(Global stocktake. Draft decision-/CMA.5)'의 주요 내용은 △전지구적 이행점검(GST)을 통해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 억제 1.5℃ 목표 달성을 위한 2050 탄소중립 이행 중요성 재확인 △에너지시스템에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 △2030년까지 전지구적으로 재생에너지 용량 3배 확충 및 에너지효율 2배 증대 △원자력 및 탄소 포집 활용 및 저장(CCUS) 등 저탄소 기술 가속화 △저감 장치 없는 석탄발전의 단계적 감축 등이다.
◆석유 수요 2028년 10.6% 증가 = 전지구 적 이행점검 결정문 채택 과정은 예상했던 대로 험난했다. 유럽연합(EU) 미국 도서국가 산유국 등 각 국가별 산업의 향방은 물론 생존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그동안 계속되어온 화석연료 소비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은 COP28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지구적 이행점검 결정문 28항에는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 등을 포함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당사국들이 해야 할 일들이 담겼다. 진일보한 건 분명하지만 전지구 이행점검 결정문 어디에도 '석유(oil)'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 등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2022년부터 2028년까지 석유 수요가 10.6% 증가한다는 전망치를 내놓은 바 있다.
물론 전지구 이행점검 결정문 21항에서는 지금 수준의 각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이행하면 2030년까지 평균 배출량 감소량은 2019년에 비해 약 2%에 불과하다며 파리협정 목표에 맞춰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 궤적을 긴급하게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만으로는 석유 수요 증가 전망치를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 대응을 위한 기금'에 1750만달러 규모의 신규 재정 투입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다량의 석유 생산국들 중 하나다.
게다가 15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 국영 석유 및 가스 회사 애드녹(ADNOC)의 대표(CEO)이기도 한 술탄 알자베르 COP28 의장은 "애드녹은 석유 및 가스 분야에 7년에 걸쳐 150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며 "이러한 투자계획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 1.5C 한도 내에서 실행 가능하다"고 밝혔다. 물론 그는 "생산량을 늘리기보다는 현재 생산량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하긴 했다.
◆BNEF "허가절차 간소화 등 고민" = 전지구 이행점검 결정문 28항 (a)에 따르면 당사국들은 2030년까지 전세계적으로 재생가능 에너지 용량을 3배로 늘리고, 전세계 연평균 에너지 효율성 개선 속도를 2배로 향상시켜야 한다. 이는 기업들의 탈탄소화 속도를 앞당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다.
하지만 종전 체제를 유지하면서 재생에너지가 석유 석탄 가스 등을 대체하는 역할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 많은 국가들에서 풍력 등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여전히 상당량의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재생에너지 용량과 실제 전력 생산량은 동일하지 않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재생에너지는 다른 에너지원과 비교했을 때 설치 발전용량이 높아도 계통연계 전력 생산량은 이보다 훨씬 아래인 상황이다.
블룸버그의 에너지 조사 기관인 '블룸버그 뉴 에너지 파이낸스(BNEF)'는 "어렵지만 달성 가능한 목표"라면서도 "풍력과 태양광이 대부분 국가에서 저렴한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과거 발전 용량을 3배로 늘리는 데는 12년이 걸렸지만 향후 8년 동안 동일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미 일정 부분 궤도에 이른 태양광발전과 달리 풍력발전이 인플레이션 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원이 필요하다"며 "전력망 투자는 물론 허가 절차 간소화 등 보다 유연한 전력시스템을 위한 유인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9월 유럽의회는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방안이 담긴 재생에너지 지침(RED)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유럽연합 이사회가 공식 승인하면 발효되는 이 개정안에는 재생에너지 시설 허가 간소화 내용이 담겼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은 재생에너지 발전지역에 시설 승인 요청이 들어오면 12개월 안에 승인해야 한다. 또한 해당 지역 밖이라도 승인 기간이 24개월을 초과하면 안 된다.
◆여전히 미해결 과제인 국제탄소시장 = 이번 COP28은 파리협정 이후 처음으로 전지구적 이행점검이 이뤄진 총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전지구적 이행점검이 이뤄지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각 국가별로 통일된 온실가스 인벤토리 등이 구축돼야 하는 건 기본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토대가 갖춰진 뒤 재정 국제협력 등 각종 자료들이 공유되고 관련 논의가 이뤄져야 하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2024년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한 당사국들은 2년마다 '격년 투명성 보고서(Biennial Transparency Report, BTR)'를 제출해야 한다. 격년 투명성 보고서를 통해 제출된 정보는 '기술 전문가 검토' 과정을 거쳐 검증되고 해당 국가가 개선해야 할 사항 등에 대한 권고가 이뤄진다. 또한 '촉진적 다자 고려(FMCP)'를 통해 격년 투명성 보고서 공개 검토가 진행된다.
국제 탄소시장(파리협정 제6조)의 실질적 이행을 위한 세부 기준 마련도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선진국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있던 교토의정서(교토체제)와 달리 파리협정의 신기후체제에서는 모든 국가가 해당되기 때문에 국제 탄소시장 이행 규칙 설정은 중요하다.
본디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 온실가스 감축분을 국가 간에 거래하는 방법에 관한 규칙은 폴란드에서 열린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서 완료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20년 이전 발행된 감축분 인정, 온실가스 감축분 거래 시 이중사용(double counting) 방지 등 여러 쟁점에 대해 개도국-선진국 간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시장메커니즘을 제외한 파리협정의 세부이행규칙만 채택한 뒤 막을 내렸다.
이후 2019년 스페인에서 열린 제2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5)에서도 제자리걸음을 반복했고 코로나19로 한해 연기된 COP26에서도,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3일 환경부는 "COP28에서도 합의에 실패함에 따라 파리협정 제6.2조 정보 제출 양식 등 국제 감축 사업 이행에 필요한 세부 기준 마련에 추가적인 시간이 소요되고, 파리협정 제6.4조 메커니즘 사업의 등록 개시 시점이 다소 늦춰질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는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다.
알기 쉬운 용어설명
파리협정 = 2020년 끝난 교토의정서 체제를 대체한다. 선진국의 선도적 역할이 강조되는 가운데 모든 국가가 전지구적인 기후변화 대응에 참여해야 한다. 국제사회 공동의 장기목표로 산업화(1850~1900년)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하고 온도 상승을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추구한다.
교토의정서 =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과불화탄소(PFCs) 수소화불화탄소(HFCs) 육불화황(SF6) 등 6가지 온실가스배출량을 줄이도록 합의한 국제협약이다. 교토의정서는 2005년 2월 공식 발효되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대표적인 국제 규약으로 자리 잡았으나, 개도국의 대표주자인 중국이 온실가스 감축 의무에서 제외되고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이 자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이탈하면서 반쪽짜리 규약이라는 한계를 갖게 됐다. 교토의정서는 2020년 만료됐다.
전지구적 이행점검 = 기후위기 대응 현황을 확인하고 평가하는 도구로 파리협정의 핵심 원리다. 이번 COP28 이후 5년 주기로 시행된다.
온실가스 인벤토리 = 온실가스 배출원을 규명하고 각 배출원에 따른 배출량을 산정할 수 있도록 목록화한 통계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국가 또는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파악한 뒤 국가는 적절한 감축량을 설정하고 기업은 감축 활동의 성과를 인정받거나 배출량을 검증받을 수 있다.
엘니뇨 = 감시구역(열대 태평양 Nino 3.4 지역 : 5°S~5°N, 170°W~120°W)의 3개월 이동평균한 해수면온도 평년 편차가 0.5℃ 이상으로 5개월 이상 지속될 때 그 첫 달을 엘니뇨의 시작으로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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