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까지 부추기는 가스라이팅(심리적지배)
2024-01-12 11:03:19 게재
'영등포 건물주 살인' 교사범 구속기소
범죄 잇따라 "법리 구체화 필요" 지적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형사3부(서원익 부장검사)는 11일 지적장애 2급의 30대 김 모씨를 심리지배 해 자신과 경제적 다툼을 벌이던 80대 건물주 유 모씨를 살해하도록 한 혐의(살인교사)로 40대 조 모씨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동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조씨는 옆 건물주인 유씨로부터 주차장을 임차해 쓰면서 주변 일대 재개발 관련해 이권을 두고 갈등을 빚어왔다. 그러던 차에 지난해 9월 주차장 계약해지와 명도소송을 계기로 자신을 친형처럼 따르던 김씨를 부추겨 지난해 11월 12일 유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도록 한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조씨는 쉼터 등을 떠돌던 김씨를 데려와 2020년 7월부터 "내가 아빠이자 형이다"라면서 전적으로 따르게 했다.
하지만 실상은 김씨를 주차 박스에 기거하게 하고 임금도 주지 않으면서 모텔 관리와 주차장 관리를 시켰다. 심지어 김씨의 장애인 수급비도 가로챈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김씨가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보였지만 몇 년 동안 세뇌를 당해 살인까지 할 정도가 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조씨가 살인교사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재판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심리적 지배를 통한 범죄 사례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2일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은 19년간 일가족 4명을 심리적으로 지배해 2억5000만원을 갈취한 무속인 부부를 특수상해, 강제추행, 공갈, 감금 등으로 징역 15년과 징역 10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들 부부는 폐쇄회로(CC)TV로 일가족을 감시하고 서로 폭행하게 하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배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 범죄가 이어지면서 개념이 모호한 심리지배를 구체화해 피해자보호를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도 제기된다.
지난해 9월에는 이른바 '계곡 살인 사건'으로 기소된 이은해와 내연남이자 공범인 조현수가 남편 윤 모씨를 2019년 6월 경기도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빠지도록 해 살해한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무기징역과 징역 30년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 사건은 심리적지배에 의한 직접(작위) 살인인지가 쟁점이었다. 법원은 이은해가 윤씨를 구조장비 없이 4m 높이 바위에서 3m 깊이 계곡물로 뛰어들게 한 것을 직접 살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윤씨를 일부러 구하지 않은 간접(부작위) 살인이라고 판단했다.
김혜미 박사(형법)는 형사정책연구 135호에서 "심리적지배 상황에서 범행의 대상이 됨에도 제대로 저항하지 못할 때 범죄의 성립요건을 충족하는지 아닌지 모호한 경우가 있다"며 "심리적지배 상황의 (범죄) 구성요건 적용 법리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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