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오 마이 갓! 뎀 아메리카

1% 사기꾼이 99% 국민을 털어먹는 나라

2013-10-11 11:05:38 게재

차미례 언론인·칼럼니스트

'미국을 무너뜨리는 거품기계와 흡혈오징어, 그리고 고도의 금융사기'란 범상치 않은 부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책은 미국의 '롤링스톤'지 매트 타이비기자(43)가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왜 월가에서 금융위기와 관련해 감옥에 간 사람이 한명도 없었을까?" 하는 단순한 의문을 파고 든 결과물이다. 파면 팔수록,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들이 빠져나온 법망의 허술함과 '모두가 한통속'이었던 전말을 알면 알수록 저자의 분노는 커져갔고 그는 이를 특유의 블랙 유머와 '나꼼수'를 능가하는 욕설로 버무려 '오 마이 갓! 뎀 아메리카'로 엮었다. 원제목을 번역서 책 제목에 그대로 쓴 게 이해가 간다.

그는 재계의 천재로 통하는 앨런 그린스펀을 '우주 최고의 악질'로, 월가의 가장 영향력있는 금융회사 골드먼 삭스의 행태를 '인류의 얼굴에 달라붙은 흡혈 오징어'로 비유하면서 미국의 금융계와 정부, 정치인들이 선량한 미국인들의 부를 어떻게 착취해 가는가를 파헤쳤다. 왜 감옥에 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느냐고? 가긴 갔다. 아니, 갈 뻔 하다가 돌아온 것이다. 위험자산에 대한 선량한 국민의 투자를 유도하고 사기극을 벌였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딱히 불법이라고 볼 수 없어서"어쩌고 하며 슬슬 재판정에서 빠져 나오는 모양새는 "크게 한탕 해먹은" 거물들은 거의 집행유예나 병보석으로 방면 또는 사면되고 힘없는 생계형 범죄자만 교도소를 지키는 한국과 몹시 닮았다. 법조문과 정치적 배려가 모두 돈과 권력에 휘둘려 한 방향으로 휘어 있는 탓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책에 대해 "미국 가계의 경제안전망이 무너진 근본 원인을 예리하게 탐사한 저자는 월가와 워싱턴의 격렬한 비판과 고발을 각오하고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바로잡는 데 매진했다. 최근 몇년간의 비극이 시장시스템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임을 밝혀냈다"고 평했다.

동양증권 사태 재발을 막으려면
요즘 며칠 동안 우리 TV뉴스 화면을 메우고 있는 동양증권 사태의 피해자들의 절박하고 비통한 모습을 보라. 몇년 전 저축은행 사태와 똑같다. 피해자들은 저금리 시대에 조금 높은 이자소득을 얻기 위해 금융회사 직원의 말을 믿고 평생 모은 재산, 목숨같은 노후자금, 10년 노동의 댓가인 결혼자금, 암수술 후 목돈으로 받은 보험금까지 날린 서민들이 대부분이다. 가장 나쁜 것은 리먼 브러더스나 골드먼 삭스와 똑같이 동양증권 역시 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게 알려진 막판까지도 현금잔고를 가진 고객들에게 위험성을 감춘 채 단기 부실채권 매입을 강권하고 '끝판 장사'를 해치웠다는 점이다.

울부짖는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지는 사람이라면 이 '시스템'이란 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 나는 매일 외신을 주무르고 있다 보니 "사상 초유의 미국 정부 셧다운(폐쇄)"을 초래한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개혁안이 2010년 통과되고도 이 지경이 된 것 역시 시스템 탓이요, 사실은 통과 이전부터 공화·민주 양당의 찬반 줄다리기 속에서 보험업계의 줄기찬 전방위 로비로 중요 알맹이는 거의 사라진 것을 눈치 채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정치쇼와 골드먼 삭스가 시발점인 금융위기가 같은 '시스템'의 미국적 현상임은 미처 연결해 생각하지 못했다. 이 책은 그것을 통찰하게 해준다.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미국의 시장 경제를 역이용해서 1%의 사기꾼들이 국민의 99%를 털어먹고 유가폭등이나 건강보험안 역시 합법적 착취의 도구였음을 난삽한 경제용어와 금융 약어들을 치워버리고 '문외한의 용어로' 직설적으로 쉽게 풀어 썼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갈수록 이미 월가 점령군을 탄생시킨 이 문제가 우리 좁아터진 한국까지도 똑같은 바이러스에 감염시켰음을 독자는 느끼게 될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움에 처한 서민들을 털어먹고 중산층까지 붕괴시키는 허술한 금융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방만한 경영과 현금 빼돌리기를 한 재벌 총수가 법정관리제도를 이용해서 위기를 면하고 슬며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막도록 구멍뚫린 법망을 기워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작업은 피해자들의 지리한 집단 소송과 뜻있는 금융인, 법조인의 헌신이 필요한, 힘든 사업이 될 것이다.

금융범죄에 면죄부 주는 정부와 대중
월가 범죄의 물결 중 주목할 부분은 뇌물, 내부자거래, 수익은폐, 회계부정, 주택담보 모기지론의 사기성 투자유치같은 짓을 한껏 저지르고도 넘치는 돈으로 유능한 변호사를 사서 빠져나올 뿐 아니라 대중과 사회 전체의 지지까지 얻어내는 사기술이다.

이들은 "부를 창출해 내는 그들 손에 우리 미래가 걸려 있으므로 너무 심하게 밀어붙이면 안된다" "대기업이 성장해야 중소기업과 서민들도 잘산다"는 터무니없는 이론의 세뇌공작에 미디어를 동원해서, 국민을 거지로 만들면서 동시에 '봐주기'에 동참하게 만든다. 99%는 봉이 되어 1%를 떠받들고 범죄행위까지 용인하게 되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전후한 유가폭등으로 자동차의 나라 미국민들은 고통과 희생을 치렀다. 유가조작으로 돈을 번 자는 따로 있었다. 하지만 몇배나 치솟은 기름값이 무서워 투잡족은 일자리 하나를, 고학생은 야간대학 강의청강을, 건축업자는 모처럼 맡은 주택건축사업을 포기했다. 삶의 질 유지와 미래의 희망을 포기하고 추락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이처럼 사정없이 털린 사람들의 수입이 줄어 세수증가가 둔화되자 연방정부와 주 정부들은 공적자산을 아랍의 국부펀드에 매각하기 시작했고 금융기업들이 중간에서 알선해 수익을 올렸다. 주차관리시스템을 매각당한 시카고 시민은 2년 만에 5배의 주차요금을 물게됐고 미국 전역에서 고속도로, 주차장, 유료도로 등이 전 세계 입찰자들을 대상으로 세일중이니 수탈은 더 심화될 것이다.

경제성장의 약발이 사라진 시대인데도 한국은 아직 '성장'의 마약에 취하여 '세계 최강국 미국 따라하기'에 바쁘다. 서민과 취약계층은 '복지'라는 지출 대상으로 무시당하고 경제정의는 "재벌이 살아야 중소기업과 서민도 산다"는 미신 때문에 폐기처분 당했다. 골드먼 삭스라는 거품기계와 흡혈오징어 역할자는 한국에도 수두룩하다. 유사감염증후군도 빈발하지만 미국보다 훨씬 더 비민주적이고 허점많은 법 때문에 피해도 더 크다. 2001년 NYT모스크바 지국장 얼굴에 크림파이를 던져 그해 러시아의 '최악의 언론인상'을 받았던 저자는 미국 투기세력의 본질과 '제도'의 문제를 통해 한국에게도 닥칠 지옥같은 양극화와 사기극의 희생을 예고해준다. 우울하고 끔찍하지만, 읽는 재미 때문에 한편 웃음도 나오는 책이다.

서해문집
매트 타이비 지음/유나영 옮김
1만4000원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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