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ESG 평가기준 정비 시급하다

2024-03-25 13:00:00 게재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느 기관에서 발표한 ESG등급 때문에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올해 처음으로 그 기관에서 평가를 했는데 등급이 여타의 평가기관보다 낮게 나왔단다. 그 이유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때문에 회사의 평판이 나빠지니 답답하다고 했다.

현재 국내외 ESG 평가기관은 약 600~1000여개에 이른다. 예를 들어 국내 어느 회사에 대한 평가기관의 ESG 평가결과는 B+, A, C, 32, BBB, 47 등 천차만별이다.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무리 평가기관이 각자 책임 하에 독립적인 평가 체계를 개발해 평가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결과가 상이한 수준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재 많은 기업들은 평가등급을 잘 받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공시한다. 그런데 낮은 평가등급으로 인해 회사에 대한 평판이 나빠지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기업측에서는 막상 구체적인 대응책을 세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기관마다 내놓는 평가 등급에서 이렇게 차이가 나면 ESG 평가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고 투자자 또한 기업에 대한 투자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ESG 평가등급은 기업이 지속가능한 경영을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평가등급은 기업의 신용등급과 마찬가지로 자금조달 뿐 아니라 거래관계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활용된다.

평가에 대한 체계적 방법론이나 기준 없어

현재 전세계 많은 평가기관들이 독자적인 평가방법론에 따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거버넌스와 경영진의 노력과는 별개로 기업이 속한 산업, 정부정책, 지리적 특성, 인프라, 공급망 등 매우 복잡한 변수들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것을 평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관련해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세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지표 및 공시기준을 개발해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의 기준에 따른 ESG 공시의무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지속가능성 평가와 관련, 체계화된 평가방법론이나 이해관계자들에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기준은 없다.

2023년 금융위원회는 ‘ESG 평가기관의 가이던스’를 마련해 평가기관의 내부통제체계, 원천데이터의 수집 및 관리와 평가방법론을 공개하도록 했다. 이 가이던스에 따라 국내 평가기관들은 홈페이지 등에 평가방법론을 공시하고 있으나, 평가방법론의 표준화 및 고도화를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2023년 12월 유럽이사회와 유럽의회에서는 ESG등급 제공자의 투명성과 무결성을 제고해 잠재적인 이해상충 리스크를 방지하고 ESG등급의 신뢰성과 비교가능성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ESG 평가기관 규제안’에 잠정 합의했다. 이 규제안에 따르면 ESG 평가기관은 유럽증권시장감독청(ESMA, European Securities & Markets Authority)의 승인과 감독을 받아야 하며 평가방법론 및 데이터 출처의 투명성 요건을 준수해야 한다.

이미 유럽 등 ESG 선도국들에서는 AI 및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ESG 북(BOOK)’ ‘아라베스크(Arabesque AI)’ ‘오르테크(Ortech)’ 등의 다양한 솔루션을 이용해 기업들의 지속가능성 데이터를 자동으로 수집해 이를 S&P 등 평가기관에 제공하거나 직접 평가에 활용하고 있으며, 평가방법론의 경우에도 산업별 또는 분야별(E,S,G)로 상세하게 공개하고 있다.

표준화, 고도화, 데이터 수집 자동화 필요

ESG와 관련된 공시기준이 마련되어 시행되는 것처럼 평가기준에 대해서도 표준화가 필요하다. 평가기준의 표준화는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성과와 전략에 더 많은 가중치를 두고 객관성과 투명성 및 기업간의 비교가능성을 갖춰야 한다.

평가 결과에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지속가능성 경영에 적극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평가기관에 의해 누락되거나 호도되는 경우에, 반대로 그린워싱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함으로 인한 피해자도 나올 수 있다. 무엇보다 평가 결과의 기준이 명료하지 않으면 기업은 ESG경영에 대한 동기부여를 잃기 쉽다. 데이터 및 평가기준, 그 과정까지의 표준화가 시급하다.

윤길배 공인회계사 BDO성현회계법인 대표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