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시민참여
시민 마음 모아 열받은 지구 식히고 지역경제 살린다
광주광역시,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탄소 45% 감축
아파트 거주 비율 67% 등 주민 자발적 참여가 목표 달성 관건
“이웃에게 한달에 한번 약 5분 전등을 끄는 일에 동참해 달라고 기회가 될 때마다 얘기해요. 에너지 절감 효과가 엄청나지는 않죠. 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려고 합니다. 어른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기후위기가 심화돼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잿빛이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28일 광주광역시에 사는 박미영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출산한 뒤 기후와 환경 문제에 관심이 높아졌다. 최근에는 아파트 주민들과 힘을 모아 우유팩이 그냥 버려지지 않고 재활용이 될 수 있도록 분리배출 수거함을 만들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때론 번거롭고 누가 시키거나 돈이 되는 일도 아니지만 아이들을 위해 즐겁게 하고 있다며 박씨는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하향식 정책 수립이 아닌 상향식 의사 결정 과정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은 물론 기후변화 적응을 위해선 시민 참여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27일 김태호 광주광역시 탄소중립지원센터장은 “광주는 아파트 거주 비율이 약 67%(2022년 국토교통부)로 높고 수송 건물 등 비산업부문 배출량 비중이 더 크다”며 “이런 특성 때문에 탄소중립 전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 참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28일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산업 부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상대적으로 크지는 않다”며 “지자체의 경우 건물과 수송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고 실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기 때문에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이 부분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또 “건물 부문의 경우 시민들의 냉난방과도 연결이 되기 때문에 에너지 전환 측면에서 중요하다”며 “게다가 이 영역에서 녹색 지역 일자리가 가장 많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송 건물 등 비산업부문 배출량 커 =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11조에 따라 특별시장·광역시장·특별자치시장·도지사 및 특별자치도지사는 국가기본계획과 관할 구역의 지역적 특성 등을 고려해 10년을 계획 기간으로 하는 시·도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해야 한다.
이에 따라 광주광역시는 4월 23일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5% 감축하고 2045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한다. 광주광역시는 2024~2028년 예산 3조6341억원을 투입해 △건물 △수송 △산업 △폐기물 △농축산 △흡수원 △전환 △녹색성장 △정의로운 전환 등 11개 부문 128개 세부사업을 추진한다.
2020년 광주광역시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866만1000톤CO₂eq(이산화탄소 상당량)다. 2020년 광주광역시 온실가스 총 배출량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문은 수송(32%)이다. 이어 △가정 22% △상업·공공 21% △산업 17% △폐기물 6% △농축산 1%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광주광역시는 “가정과 상업·공공은 합쳐서 건물 부문으로 볼 수 있다”며 “이를 합치면 건물 부문 배출량이 2020년 총 배출량의 43%로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
광주광역시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서 특히 건물과 수송 부문에 신경을 쓴 이유다. △신축건물 제로에너지건축물 의무 적용 확대 △기존 건물 그린리모델링 △에너지 사용 효율화 향상 △대중교통 중심 교통 체계 구축 △친환경차 보급 확대 등 그린 모빌리티 전환 등 다양한 계획을 세웠다.
물론 산업부문과 폐기물 및 농축산 부문에 대한 대책도 마련했다. 산업 부문은 지역산업 탄소중립 대응을 위해 첨단산단과 첨단3지구 에너지 자급자족 기반시설 구축, RE100(전력량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 전주기 공정지원 기술개발 및 실증사업을 진행한다. 중소·중견기업의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 유도와 역량 강화를 위해 ‘광주기업탄소액션’ 자발적 감축 사업도 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마을’에서부터 =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행동에 옮기는 시민들의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정책 설계와 집행이 중요하다. 다행히 광주광역시민들의 정책 참여 의지는 높은 편이었다.
광주광역시가 지난해 11월 광주광역시민 500명(표본오차 ±3.09%p, 95% 신뢰수준)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광주광역시민의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도’는 76.80점(100점 만점)이다. 이는 2021년 69.05점에 비해 7.75점 높아진 수치다.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도’ 역시 76.90점으로 높은 편이었다. 이 역시 2021년 74.88점에 비해 2.02점 상승했다.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높은 관심만큼 정책 참여 의지도 강했다. ‘2045 탄소 중립 도시 광주 정책에 동참 의향도’는 76.30점으로 나타났다.
28일 김미숙 첨단전환마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기후위기 대응은 마을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며 “어떤 의미에선 정책은 자본이 투입되는 측면이 크고 공동체가 움직이는 건 마을이기 때문에 △에너지의 효율적인 사용 △에너지 절전 △재생에너지 생산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시민들의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집행위원장은 “2045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에너지전환마을이 제대로 성과를 거두는 일이 중요하다”며 “월 1회 아파트 5분 소등행사나 주민들이 월 1회 전기요금 고지서를 해당 단톡방에 사진으로 올려 공유하면 탄소감축량이 얼마나 되는지 산정을 해서 절전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첨단 RE100)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에너지 전환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광주광역시는 ‘에너지전환마을 거점센터 조성 지원 사업’을 실시 중이다. 마을 단위로 거점공간을 조성해 에너지 자립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자발적인 신·재생에너지 확대 참여를 높이는 게 목적이다.
‘광주 온도 낮추기 우수아파트’ 조성 사업도 한다. 올해는 100세대 이상 공동주택 100곳을 대상으로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평가해 보상을 준다. 광주광역시는 2010~2023년 사업을 실시한 결과, 온실가스 약 2만8149톤CO₂eq를 감축했다고 밝혔다. 이는 30년산 소나무 약 427만그루를 심은 효과라는 설명이다.
◆독거노인 등 소외받는 사람 없도록 =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시민 참여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 지역 공동체가 살아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시카고 폭염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시에서 41℃까지 올라가는 폭염이 1주일간 지속되면서 700여명이 사망했다.
특이한 점은 길 하나를 사이를 둔 지역 간에 사망자 수가 크게 달랐다는 점이다. 미국 시카고시의 노스론데일에서는 폭염으로 19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바로 인접 지역인 사우스론데일(리틀빌리지)에서는 1/10에 불과한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 노스론데일과 리틀빌리지 두 지역은 모두 경제적 수준이나 인구 연령 구성 등은 동일했다. 차이가 있다면 지역공동체의 유무다. 지역공동체가 파괴된 노스론데일 주민들은 거리의 위험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방에서 폭염을 견뎌내야 했다. 반면 리틀빌리지 주민들은 이웃과 교류하며 살인적인 더위를 이겨낼 수 있었다.
27일 이상환 효천LH 천년나무 1단지 관리사무소 부장은 “지구온난화를 억제한다는 말은 좋지만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여러 촉매제가 필요하다”며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주변에 식물들을 심어 더위도 피할 수 있고 보기에도 좋은 ‘힐링터널’을 만들었더니 주민들이 하나둘씩 나와 이야기도 하고 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독거노인과 1인가구 비중이 높은 아파트단지 특성에 맞는 에너지절약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저절로 주민 교류도 활성화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효천LH 천년나무 1단지는 지난해 광주온도낮추기 우수아파트 조성사업에서 에너지 절약 부문 노력상을 받기도 했다.
◆목표만 거창한 게 아니라 달성이 중요 = 광주광역시뿐만 아니라 다른 지자체들도 각각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들 계획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환경부는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 6월 말에 보고한다. 전문가들은 어렵게 첫발을 뗀 만큼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목표만 거창할 뿐 실제 달성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송건범 한국환경공단 지자체 탄소중립 액트센터장은 “광역지자체의 기본계획 수립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협업의 성공적인 산출물”이라며 “지역·실천중심의 탄소중립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지자체가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기술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 한국환경공단 액트센터는 지자체 탄소중립 기본계획 수립 지침을 제공하는 등 지역의 탄소중립 실현을 지원해왔다.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시민·기업 등 자발적 참여에 기반한 다양한 사업은 물론 보행권 확보와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한 걷고 싶은 길 조성, 도로 줄이기로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해 시민 건강권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