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1
2025
물과 불은 늘 인류 문명의 두 기둥이었다. 물이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냈다면 불은 문명을 앞당기기도 파괴하기도 했다. 불은 우리 삶에 스며들었지만 통제되지 않은 불은 항상 인류 최대의 위협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그 통제를 놓친 불 앞에 무릎 꿇었다. 산불은 결코 갑작스레 발생하는 돌발사고가 아니다. 봄철이면 예외없이 찾아오는 예고된 현상이다. 겨우내 쌓인 낙엽과 마른 나뭇가지들은 건조한 날씨 속에서 쉽게 발화되는 일종의 연료다. 봄철 강수량은 적고 습도가 낮으며 남쪽에 고기압 북쪽에는 저기압이 형성되고 그 틈바구니에서 일시적으로 강풍이 형성된다. 매번 산불에는 우연처럼 강한 바람으로 진화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지만 우연이 아니다. 남고북저의 기압패턴이 강풍과 고온건조를 유발하는데 항상 이 조건들이 완벽하게 겹치면서 산불과 강풍이 동행하는 일종의 산불 패키지인 것이다. 과학적 분석에 따르면 산불발생 요소는 세가지다. 첫째는 낙엽 고사목 풀과 같은 자연 속
04.10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윤석열 피고인에 대한 형사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인해 2007년 마련된 현행 체포·구속제도의 개선이 필요해졌다. 체포·구속은 흔히 인신구속(人身拘束)으로 불리며 이로 인해 신체의 자유가 박탈된다. 따라서 피의자를 체포·구속하려면 법관의 영장이 필요하다고 헌법은 규정하고 있다. 영장에 의한 체포도 가능하나 구속은 영장에 의해서만 가능한데, 법관에게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 있는 주체를 헌법은 검사로 한정하고 있다. 경찰은 체포·구속 영장 신청권한이 없다.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법관에게 청구할지 여부는 검사에게 달려있다. 이런 헌법 규정이 타당한지 향후 개헌 논의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체포의 유형에 관계없이 긴급체포 현행범체포 영장체포 모두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은 체포 후 48시간, 곧 이틀이다. 이 기간 중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으면 체포한 피의자를 즉시 석방해야 한다. 체포한 피의자
04.09
반헌법적인 12.3 비상계엄 선포에 국회의장과 제1야당 대표가 국회 담장을 넘었다. 국가비상사태를 자의적으로 초래한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지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초인 입법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심각하게 위협한 사건이었다. 더구나 국회 경호가 임무인 국회경비대가 계엄해제 의결을 위해 모인 의원들의 출입을 막았고 문을 열라는 국회의장의 요구마저도 묵살된 것은 묵과하기 어렵다. 이 사건으로 회기 중 회의장과 그 주변 등 국회 안에서 주로 이루어졌던 기존의 국회 경호·경비 운영체제에 대한 대폭적인 변화는 불가피하게 됐다. 국회 출입문과 울타리 등에 대한 외곽경비를 행정부 소속의 경찰관으로 구성된 국회경비대에 맡겨온 방호체계는 더 이상 헌법기관인 국회의 헌법적 권한을 물리적·기능적으로 온전히 보호하지 못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의 경호·경비 체계는 3선 방어개념을 따른다. 첫번째 경호구역은 국회 경위가 담당하는데, 본회의 또는 위원회의 회의장에서의 질서유
04.07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12.3 비상계엄 이후 넉달여만에 헌법재판소의 탄핵판결로 극단의 분열을 해소할 단초는 마련됐지만 앞으로의 과제는 만만치 않다. 비상계엄 직후 탄핵소추 의결로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후 전개된 양상은 극단적 세력의 준동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했다. 반탄세력은 ‘자유우파’라는 단어를 그들의 상징구호로 신봉하면서 민주주의라는 단어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듯했다. 극우의 준동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해방과 분단, 미 군정과 전쟁,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극우는 보수의 우산 속에 독버섯처럼 기생했다. 보수 또한 ‘보수’란 이름으로 자신을 가린 채 극우와 이념적 지향을 공유했다. 이러한 극우와 보수의 동거가 윤석열 탄핵 정국에서 현출되었다. 이승만 우상화와 건국절 논란, 반공과 반중의 구태한 색깔론으로 상대를 압살하려는 음모적 퇴행 등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계엄 이후의 아스팔트의 준동 세력이 적
04.03
헌법재판소가 드디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일을 4월 4일로 지정했다. 워낙 지체된 상태인데다 만우절인 4월 1일에 공표되어 ‘거짓 장난’ 아니냐며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결과가 좋으면 술 한 잔 하자”고 여기저기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오기도 했다. 혼란스러운 정국과 극심해진 사회갈등 때문에 사람들이 깊은 피로감에 젖어 있었음을 알려주는 풍경이다. 주변의 정치학자들과 법조인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대체로 인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광장과 거리의 한켠에서 극우파의 탄핵반대 목소리가 드세고, 이에 편승해 국민의힘 주류가 집권당 지위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도 그렇다. 민주주의의 규범의 준수와 헌정체제 수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 필자도 인용될 거라 예상하고 기대한다. 하지만 탄핵 인용 자체를 ‘민주 시민의 진정한 승리’라며 축배를 들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탄핵 인용은 혼란한 정국의 끝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끝의 시작도 아니기 때문이
헌법재판소, 참 많이 끌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결정 말이다. 헌재가 선고기일로 공지한 내일은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무려 123일째 되는 날이다. 국회가 12월 14일 두번째 시도 끝에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켜 윤 대통령의 권한행사가 정지된 지 111일째 되는 날이며, 11차례에 걸친 긴 공개변론이 종결된 지도 한달이 훌쩍 넘어 38일째가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변론종결 이후만 놓고 보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이 변론종결 후 11일 만에, 노무현 대통령이 14일 만에 결정 선고를 한 것과 비교하면 두 세배의 시간이 더 걸린 셈이다. 그래도 내일 드디어 선고를 한다고 하니 늦었지만 다행이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내일 헌재 선고가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묻는 분들이 많다. 만장일치의 인용결정으로 윤 대통령이 파면될 것으로 본다. 최악의 경우 2명 정도의 헌법재판관이 각하의견을 쓸 수도 있다. 그래도 인용 6명 대 각하 2명이면 인용결정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04.02
“유럽연합(EU)은 미국의 적이자 착취자다.”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연합(EU)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동맹의 반전'으로 그는 EU에 분노하며 적대시하고 있다. 1980년대만 해도 미 대통령이 이같이 표현했다면 유럽에서 수십만명이 거리로 나와 ‘반미 시위’를 벌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EU는 조용하다. 한때 유럽의 반미주의는 전설적이었다. 유럽의 좌파지식인들은 “미국은 영혼이 없고 물질적이고 저속하다”고 비난했다. 그런 구대륙을 신대륙의 괴짜 정치인이 두려워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해방의 날'로 선언한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EU국가들에게도 25% 관세폭탄을 투하할 예정이다. 미국의 대 EU 무역적자가 2023년 1570억유로에 달해 트럼프는 ‘불공정 무역’이라고 비판하고 조치를 취한 것이다. 구대륙(독일) 이민자 출신 트럼프가 왜 EU 및 독일을 증오하고 있는가? 그는 EU을 군사적으로 "무임승차하는 기생충"으로 간주하면서 경제적으로 덩치 큰 초식동물로 치부한다.
03.31
기술업계에는 신기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유명한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기술의 단기적인 영향력은 과장되게 생각하는 반면 장기적인 영향력은 하찮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특히 당장 세상이 크게 변하거나 무언가 큰 일을 낼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던 수많은 신기술들이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아예 사라지고 없거나 비록 살아는 있지만 존재감이 미미한 경우들이 많았다. 대략 20년 전의 전자책 기술이 있고 가까운 사례를 보자면 수년 전의 블록체인 등이 있다. 하지만 전자책이나 블록체인이 장기적으로도 별 비전이 있을지 없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발표 당시의 기대 효과를 훨씬 초월해서 장기적으로는 세상에 큰 변화를 만들어 낸 기술들도 무수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195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윌리엄 쇼클리 존 바딘 그리고 월터 브래튼이 반도체 트랜지스터를 만들어낸 것은 1947년이었다. 이후 노벨상 수상에 대략 9년이 걸린 걸 고려하면 보수적인 학계에서는 꽤 빠른 시간 내에 이 발명의
03.28
지난 4일 업계 2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2월말 홈플러스는 단기사채 신용등급이 A3에서 A3-로 강등되면서 부도가 날 것을 우려해 선제적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매출 6조원이 넘는 대형유통업체가 기업회생에 들어가면서 납품업체, 입점업체, 채권자 그리고 노조까지 모두 큰 혼란에 빠졌다. 법원이 신속하게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하면서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결정을 해줘 우선은 영업이 유지되고 있다. 무리한 차입매수와 온라인 전환 실패 특히 금융감독원은 홈플러스가 회생 신청 직전에 신용등급 하락을 알고도 기업어음을 발행했다는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홈플러스 사태로 인해 사회적인 파장이 커지자 정치권은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 파트너스 김병주 회장에게 사재 출연을 요구하고 있다. MBK는 2015년 홈플러스를 7조2000억원에 인수했다. 기존 부채 2000억원을 승계하면서 약 5조원이 투자됐다. 인수대금은 MB
03.27
연금제도는 급여의 적정성, 재정의 지속 가능성, 대상의 보편성 차원에서 ‘일부분을 가지고 전체인 것’처럼 말하는 군맹무상(群盲撫象)의 코끼리와 같다. 노후 생활의 안정을 바라는 현세대와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방점을 두는 미래 세대의 갈등으로 연금개혁에 대한 정치적 합의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OECD 선도국들이 겪고 있는 연금개혁의 몸살을 타산지석 삼아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때 연금 개혁에 성공했다. 2025년 계엄과 이에 맞물린 탄핵정국에도 정당 지도자의 결단과 적극적인 중재로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2026년부터 소득대체율을 43%로 높이는 연금개혁을 이루어 냈다. 세차례의 연금개혁에도 불구하고, 초저출생과 급속한 고령화가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기본적인 노후소득보장과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연금구조 개혁을 통해세대 간 갈등 완화와 아이의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국회개혁특위에 박수를 보내며, 개혁을 위한 제언을 덧붙인다.
03.26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하면서 앞에서는 미국이 가로막고 뒤에서는 중국이 거칠게 밀어제치며 대한민국이 추락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각종 지표가 한국판 ‘잃어버린 30년’의 시작을 알리면서 피크 코리아를 예고한다. 통합적 관리가 절실한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 내란사태를 계기로 진영대결이 급기야 내전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너도나도 내전을 기정사실로 간주하며 내면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영락없이 망국의 길을 걷고 있다. 담대한 시각으로 사태를 직시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기획해야 할 때다. 이럴 때는 역사 공부가 제격이다. 작은 나라가 강국으로 부상했던 세계사의 명장면들을 복기해 보자. 페르시아는 고대 중동지역을 지배한 강력한 대제국이었다. 하지만 아테네 등 그리스의 작은 도시국가들 상대로 연거푸 패전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절대 규모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그리스 도시국가 군대가 오로지 제국의 명령을 기계적으로 따르던 페르시아 군대를 격퇴한 것이다
03.24
정치권의 명운을 가를 한 주가 열렸다.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 선고를 시작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2심 선고가 예정돼 있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까지 내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 정권과 미래 정권의 향배가 걸린 사법적 결정이 한꺼번에 이루어져 ‘사법 슈퍼위크’이자 ‘대한민국 운명의 한 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엇보다 헌법재판소에 국민의 시선이 온통 쏠려 있다. 윤 대통령 탄핵 선고가 지연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국민의 일상에까지 영향을 주는 모습이다. 나라의 운명을 헌재가 통째로 쥐고 있고 온 국민이 헌재만 쳐다보는 지금의 상황이 정상인가. 헌재에 이런 막중한 임무와 권한이 맡겨진 것이 합당한가. 그럴 자격과 역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가. 신뢰할 수 있는가. 이런 의문들을 제기해볼 만하다. 헌법재판소는 현행 헌법인 1987년 제9차 개정 헌법에 근거해 설치됐다. 탄핵심판은 위헌법률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과 함께 헌
03.21
“초등 1년생 딸과 다섯살 아들의 학원비로 한 달에 324만원을 쓴다.” 배우 김성은의 이 말에 입이 딱 벌어졌다. 그것도 324만원은 중학생인 첫째 아이의 사교육비를 제외한 금액이란다. 돈도 돈이려니와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 가짓수가 너무 많다. 김성은의 딸은 11개 학원에 다닌다. 영어 수학 독서 논술 바이올린 피아노 미술 학습지 축구 생활체육에다 방학 때는 추가로 리듬 줄넘기와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운다. 아들은 영어유치원생이다. 별도로 수학과 학습지 공부를 하고 미술도 배운다. 김성은은 “또래 아이들이 다 그렇게 한다”고 했다. 그가 지난달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밝힌 내용이다. 방송인 현 영이 공개한 딸의 채드윅 국제학교 학비에 다시 입이 딱 벌어졌다. 이 학교의 연간 학비는 초등과정이 4646만원, 중등과정이 4993만원이다. 국내 대학 연간 평균 등록금 800만원의 몇 배인가. 채드윅은 인천 송도에 있는 미국 교육과정의 외국교육기관이다. 현역 기자로 일할 때 취재를 가
03.20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선고 결과에 대해 정치권과 국민들이 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까지 탄핵 정국에서 진영으로 나누어져 골이 극도로 깊어져 있다.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파여진 골이 500m 정도였다면 지금은 5만m를 훌쩍 넘길 정도로 심각하다. 지난 3월 10~12일 실시한 NBS조사(케이스탯리서치 엠브레인퍼블릭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 한국리서치)에서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받아들이겠는지, 생각과 다르면 받아들이지 않겠는지’ 여부를 물어보았다. ‘내 생각과 달라도 수용하겠다’는 응답이 54%, ‘내 생각과 다르면 수용하지 않겠다’는 응답은 42%로 나왔다. 수용 의견이 12%p 더 높지만 불수용 의사가 40%가 넘을 정도로 매우 민감하다. 특히 60대와 70세 이상은 오차 범위 내 ‘생각과 다르면 받아들이지 않겠다’가 더 높았다. 지역별로 보면 호남에서
03.19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는 고전적 전쟁 개념은 현대에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세계 각국은 국가폭력을 동원해 치열한 전쟁을 벌여왔다. 이웃 나라를 침공하고 식민지 침탈을 감행했다. 반작용으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가 오래도록 지속했다. 오로지 국가권력의 온전한 독식과 독점의 궁극적 목적은 ‘적의 궤멸’이었다. 고대 문명 제국이 그렇게 명멸했고 중세는 종교를 앞세운 처절한 전쟁이 처러졌다. 근세들어 국가자본의 독점을 위한 대전으로 세계는 수천만 인류의 희생으로 얼룩졌다. 그 어디에서 공영을 전제로 이익분배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는 고등정치의 면모를 찾을 수 있겠는가. 전쟁의 바탕에 깔린 이데올로기는 사실 무슨 ‘이즘’이나 ‘자유’와 같은 가치가 아니라 이기적인 권력에 의해 부추겨진 적개심과 혐오주의였다. 그렇게 국가는 덩치를 키우며 이른바 선진국이 되었고 세계 패권을 거머쥐었다. 지구의 한편에선 국민이 배제된 고도의 중앙집권 통치 및 경제 제도로 국가의 규모와 힘
03.17
우리나라에는 사회적 대화 기관으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있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로 출발해 2018년 현재와 같은 명칭으로 전환됐다. 경사노위를 뒷받침하는 법도 제정돼 있다. 일본에는 경사노위와 같은 기관이 없다.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으면 그때마다 사회적 대화를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아베 전 수상이 매우 의욕적으로 추진한 일하는 방식 개혁에 관한 사회적 대화다. 아베 수상은 일하는 방식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2016년 '일하는 방식 실현회의'를 발족시키고 10번째 회의에서 '일하는 방식 개혁 실행 계획'을 결정했다. 일하는 방식 개혁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노동시간 규제로서, 잔업 및 휴일노동을 포함한 총 노동시간의 상한을 노동기준법(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에 규정하는 것이다. 이를 둘러싼 노사의 대립이 컸다. 경영자 단체는 반대 입장이고 노동자 단체는 찬성 입장이었다. 아베 수상은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흉금을 터놓고 책임 있는 논의를 노
03.14
부정선거론은 탄핵 쟁점은 아니지만 탄핵 국면에 등장한 주요 이슈다. 2020년 총선 이후 일부 부정선거론자들에 의해 간헐적이지만 부단히 제기됐던 이슈가 탄핵반대 세력을 결속시키는 중요한 인자가 되었다. 탄핵반대 세력들은 부정선거를 밝히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이 불가피하게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논리를 펴면서 탄핵을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 그리고 탄핵반대론자들에 의해 확고한 신념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명시적으로 부정선거론을 지지하지 않지만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이란 기분으로 광장의 부정선거론과 어정쩡하게 타협하고 편승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탄핵반대 집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선관위 헌재를 부숴버려야 한다’는 소속 의원의 발언에 대해서 경고조차 하지 않았다. 공수처와 헌재의 수사와 심판 절차에 대한 흠결은 지적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는 지점 또한 적지 않다. 이는 논쟁적이면서 당파적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헌법기관들의 절차적 정
03.13
바야흐로 난세다. 사방을 둘러봐도 어느 하나 마음 편히 기댈 곳이 없다. 정치적 상황이 그렇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철이 들 즈음에 미국과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저절로 배우게 된다.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의미는 무겁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미국이 주도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풍요를 누렸다. 신자유주의 열풍은 심각한 부의 양극화를 가져왔지만 한국민들의 뛰어난 적응력 덕분에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시대가 이제 저물어 가고 있다. 개발도상국 중국을 세계화의 물결 속에 편입시켜 누렸던 달콤한 열매가 어느덧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위협하는 독이 되었고, 미국은 뒤늦게 중국을 따돌리기 위해 신자유주의를 부랴부랴 보호주의로 바꿔나가고 있다. 그 조짐이 보인 지는 오래됐지만 트럼프 2기 들어서는 거침이 없다. 패권 도전국 중국에 대한 관세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동맹국을 대하는 트럼프정부의 태도는 아무리 영원한 적도 영원
03.12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타인이 그것을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타인을 설득하고 납득시켜서 그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타인이 하도록 하는 야만적인 방법은 물리력이다. 이른바 조폭이 흔히 이 방법을 사용한다. 요즘은 흔히 가스라이팅으로 불리는 방식으로 심리적 강제를 하기도 한다. 권한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이용해 타인을 강제하기도 한다. 지난해 벌어졌던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가 그 예다. 군사력과 경찰력을 동원해 야당 국회의원과 정치인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관철하려고 했다. 조폭과 다르지 않다. 돈(money)으로 타인을 강제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허용한 방법이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을 돈으로 산다. 돈을 주면 심지어 범죄도 불사한다. 돈이면 다 된다는 사고가 팽배한 것 같아 무섭다. 민주사회에서 허용된 타인을 강제하는 보편적인 방법은 바로
03.10
인류가 인공지능(AI)에 대한 꿈을 가진 것은 매우 오래된 일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탈로스’라는 인류 최초의 AI 로봇이 등장한다. 대장장이신인 헤파이스토스는 크레타섬을 지키게 하기 위해 청동으로 된 거인 탈로스를 만들었는데, 이는 인간을 단순 대체하는 기계가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AI형 로봇이었다. 인간은 신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선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지능이다. 근대 이전까지는 지능은 곧 이성이었다. 그래서 이성은 인간만이 지녔기 때문에 윤리와 합리성을 갖출 수 있었으며 이것을 곧 인간다움의 지표로 보았다. 그렇지만 이런 편향된 인식은 민족주의를 탄생시켰고 나아가 인종차별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인간은 지능이라는 인간만의 고유능력을 자신의 창작물인 로봇에 심고 싶어할까? 그것은 노동에서 벗어나고픈 인간의 원초적 소망 때문이다. 인간의 지능은 1900년대 이후 급속히 높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적 지능이 향상된 것인지 혹은 복잡한 사회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