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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흥망성쇠 과정으로 본 미국 경제

2024-08-02 13:00:01 게재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자유무역주의는 세계무역 확대와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자유무역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본 나라 가운데 하나인 미국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보호무역주의에 앞장서고 있다. 왜인가?

그에 대한 답을 세계 최고의 헤지펀드 회사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설립자인 레이 달리오의 견해에서 찾을 수 있다. 달리오는 저서 ‘변화하는 세계 질서’(2021)에서 제국의 흥망성쇠 과정을 7단계로 구분했다. 이에 따르면 1단계에서는 한 국가가 새로운 세계질서를 정립한다. 2단계에서는 평화와 번영 속에 경제가 높은 성장을 한다. 3단계에는 경제성장과 자산가격 상승으로 그 나라의 부(富)가 큰 폭으로 늘어나는 동시에 부채도 같이 증가한다.

그러나 4단계에 접어들면 부채에 의한 성장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자산가격 거품이 붕괴할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률도 크게 낮아진다. 이에 대응해 정책 당국은 대규모로 돈을 찍어내 신용공급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5단계에 접어든다. 6단계에는 통화정책에 의한 경기부양의 한계에 직면하면서 경제주체 간 갈등이 심화하고 혁명이나 내전이 일어난다. 7단계에 가서는 부채 재조정이나 신생 정치세력의 등장으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한다.

미국 흥망성쇠 과정

현재 미국은 어느 단계에 있을까? 제2차세계대전 종료 후 미국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인권과 법치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세계의 새로운 질서를 정립했다(1단계). 1990년대 미국 경제는 정보통신혁명으로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호황을 누렸다(2단계). 특히 1996~2000년 연평균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2.9%로 그 이전(1980~1995년 1.5%)보다 2배 정도 늘었다. 생산성 향상으로 총공급곡선이 우측으로 이동하면서 미국 경제는 고성장과 저물가를 동시에 달성했다. 이 기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4.3%로 매우 높았는데 개인소비지출 물가상승률은 1.7%에 그쳤다. 이를 일부 경제학자들이 ‘신경제’ 혹은 ‘골디락스 경제’라 극찬한 가운데 자산가격이 급등하는 등 미국의 부가 대폭 증가했다(3단계).

가계의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합친 총자산이 1989년 말 25조4367억달러에서 2000년 말에는 52조90억달러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부채도 같이 급증했다(4단계). 미국의 민간과 정부를 포함한 총부채가 같은 기간 13조4587억달러에서 30조2076억달러로 급증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도 234.2%에서 289.5%로 늘었다.

그러나 2000년에 정보통신혁명의 거품이 붕괴했고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로 미국 경제는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대규모로 돈을 풀어서 대응했다(5단계). 한 나라의 실물경제(명목GDP)에 비해서 통화(M2)가 얼마나 풀렸는지를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가 마샬 케이(M2/명목 GDP)이다. 2000년 0.47이었던 마샬 케이가 2010년 0.57, 2020년에는 0.86으로 급증했다. 돈을 풀어서 경제위기를 극복한 셈이다.

중국의 WTO 가입과 미국의 물가안정

신경제를 믿고 미국 가계는 돈을 빌려서 소비했다. 미국 가계의 가처분소득에서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1989년 말 83.7%에서 금융위기 직전 해였던 2007년에 137.3%까지 증가했다. 부채에 의한 소비가 증가하고 통화량이 늘었는데도 2000~2020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1%로 낮았다. 그 이유는 중국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싸게 공급해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달러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유효수요를 창출했다. 20센트의 비용을 들여 만든 100달러 지폐로 미국 가계는 소비를 늘렸고 이는 중국의 생산증가를 초래했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미국과 중국 경제는 상호 보완 관계를 유지했다. 중국은 저임금을 바탕으로 상품을 싸게 만들어 미국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해주었다. 2001~2020년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5조3659억달러였다. 월마트에 진열된 상품의 절반이 중국산일 정도로 중국의 생산자가 미국 소비자의 수요에 대응해준 것이다. 중국은 2001~2020년 연평균 8.7%나 성장했는데, 대미 수출이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중국은 미국에서 벌어들인 돈 일부를 활용해 미국 국채를 사주었다. 2010년 말에는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 규모가 1조1601억달러로 외국인 보유 비율 중 26.1%나 차지했다. 2013년 말 1조2700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중국의 이러한 미국 국채 매수는 미국의 시장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미국이 달러를 대량으로 찍어내면서 소비했는데도, 물가가 안정된 것은 통화 측면에서는 중국이 달러를 흡수해주었기 때문이다. 화폐와 물가의 관계를 설명하는 대표적 경제 이론이 ‘화폐수량설’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MV=PT’라는 교환방정식에 의해 화폐 공급과 물가 관계를 분석했다. 여기서 M은 화폐수량이고, V는 화폐의 유통속도이며, P는 물가수준, T는 거래량이다. 화폐 유통 속도(V)와 거래량(T)이 일정하면 통화(M)가 증가한 만큼 물가(P)는 오른다.

2000년대 들어서는 미국이 디스인플레이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할 정도로 물가가 안정되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국의 높은 경제성장으로 거래량(T)이 증가해서다. 달러 증가가 중국의 거래량 증가로 흡수되어 물가가 안정된 것이다. 미국의 달러가 중국의 외환 보유로 상당 부분 묻혔기 때문에 화폐 유통 속도(V)가 줄어들어 물가를 안정시켰다는 의미다.

미국의 소득불균형과 가치의 격차 확대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2024년 5월 중국의 미 국채 보유량이 7683억달러로 대폭 줄어드는 등 중국이 달러를 흡수해주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관세 인상으로 월마트에 공급되는 중국산 상품가격도 상승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높아졌다.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부의 불균형이 확대되었다. 1989년에서 2022년 사이에 미국의 실질 GDP는 117.6% 증가했으나, 중간가구의 실질소득은 6만2260달러에서 7만4580달러로 19.8% 증가에 그쳤다. 같은 기간 지니계수도 0.431에서 0.488로 높아졌다. 무엇보다도 국민 사이에 가치의 격차(사회 양극화)가 커졌다(6단계). 지난 46대 대통령 선거에 불만을 품은 트럼프 지지자들 의사당 난입 사건은 미국 패권주의 상징인 자유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의사당을 ‘자유의 성체’라 했다. 그런 의사당에서 깨진 유리창은 미국 민주주의 후퇴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가치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피격’ 사건도 크게 보면 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최근 레이 달리오는 그의 칼럼(Pick A Side And Fight For It, Keep Your Head Down, Or Flee, 2024.6.25.)에서 미국에서 내전이 발생할 확률이 50%를 넘어서고 있다는 극단적 진단까지 내놓았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패배할 경우 그 확률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았다.

달리오의 제국의 흥망성쇠 과정으로 보면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세계 패권을 이끌었던 법치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가 미국 내에서 무너지고 있다. 경제적 측면은 더욱 그렇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미국 GDP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30.1%에서 2021년에는 24.3%(2023년 26.1%)로 줄었다. 같은 기간 중국 비중은 3.5%에서 18.3%(2023년 16.9%)로 급등했다. 이 사이에 미국의 대내외 불균형은 더 확대되었다. GDP 대비 연방 정부 부채가 2000년 54.9%에서 2021년 125.5%로 대폭 늘었다. GDP대비 대외 순부채도 같은 기간 15.0%에서 79.8%로 급증했다.

경제적으로도 미국의 문제가 누적되고 있다. 미국정부와 가계가 돈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러한 정치 경제적 문제 해결책을 외부에서 찾고 있다. 미국의 패권이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가운데 세계 곳곳에서 지정학적 문제가 발생하고 미국 중심의 자유무역주의가 후퇴하면서 세계 무역은 위축되고 세계 경제성장률도 낮아질 것이다.

김영익 내일희망경제연구소 소장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