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이란 대선과 프랑스 총선을 통해 본 결선투표제의 효과
2024년이 출발할 시점부터 올해는 ‘역사상 가장 큰 선거의 해’로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선거와 미국 대통령선거를 포함해 세계 60여개국에서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정에 없던 선거를 시행한 나라들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슈퍼 선거의 해’가 되고 있다.
오늘은 이란 대통령선거와 프랑스 국회의원선거 결과를 결선투표제 효과에 초점을 맞추어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결선투표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었기에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이란-결선투표제가 투표율 상승 견인
이란 대통령선거도 연초에는 예정에 없던 일로 원래대로라면 2025년 8월에 다음 선거가 있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현직 대통령인 에브라힘 라이시가 5월 19일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는 바람에 보궐선거가 시행되었다.
이란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요즘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도 선거를 하는 나라가 하지 않는 나라보다 많다.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절 우리나라도 민주주의는 아니었지만 선거는 있었다.
민주주의가 아닌 나라에서도 선거가 정치에 큰 변곡점을 만드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우리나라 1978년 총선이나 1985년 총선은 대도시 지역에서 야당이 더 많은 득표를 해서 박정희-전두환정권의 몰락을 이끌었던 선거로 꼽힌다. 올해 이란 대통령선거에서도 이변이 일어났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결선투표제도였다.
이란에서는 시민들이 선출한 대표자들보다 종교 지도자의 권력이 더 세다. 이란의 최고 권력자는 알리 하메네이라는 종교 지도자다. 이란에서는 대선에 출마하려면 ‘헌법수호위원회’라는 기구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이 위원회는 하메네이가 직접 임명하거나 하메네이가 임명한 대법원장이 임명한 위원들로 구성된다. 올해 대선에 출마하려고 헌법수호위원회에 심사를 신청한 사람은 80여명이었지만 위원회는 6명에게만 출마 자격을 주었다.
6명 가운데 5명은 하메네이의 종교적 근본주의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당선된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만 개혁파로 분류된다. 우리나라 박정희-전두환 정권에서도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울 목적으로 일부 야당 정치인들이 선거에 참여하도록 허용을 했던 것처럼 하메네이 체제도 1명의 개혁파 정치인을 끼워 넣어 이런 효과를 노렸다.
이란에서는 2009년 ‘녹색혁명’으로 국민들의 개혁 열망이 분출되었지만 개혁은 실패했다. 그 뒤로 개혁파 정치인들이나 시민들은 선거를 통해 정치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점차 접게 되었고 이는 지속적인 투표율 하락으로 나타났다.
올해 대선 1차 투표율도 40%를 넘지 못했다. 또 ‘뻔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다수 국민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1차 투표에서 페제시키안 후보가 42.5%의 지지를 얻으면서 1위가 되었고 19년 만에 결선투표가 시행되었다.
6명의 후보 가운데 2명은 1차 투표가 시행되기 전에 출마를 철회했고 4명의 후보가 1차 투표에서 경쟁했다. 결선투표제 시행 국가들에서는 보통 1차 투표보다 2차 투표에서 투표율이 낮아진다. 1차 투표에 참여했던 국민들 가운데 최종 결선에 오른 후보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이란 대선에서는 2차 투표에서 599만명이 더 참여해 투표율이 10%p 이상 높아졌다. 예상과 달리 개혁파 페제시키안 후보가 1위를 하자, 개혁파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한 것이다.
최종 득표수를 보면 페제시키안 후보는 2차 투표에 새로 참여한 유권자들의 투표수에 육박하는 지지를 더 얻은 반면, 잘릴리 후보는 1차 투표에서 자신이 얻은 표와 갈리바프, 푸르모함마디 후보의 표를 합산한 것에서 47만여표밖에 추가하지 못했다. 결선투표제가 없었더라면 발생할 수 없었던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프랑스 총선-결선투표제로 제1당 교체
올해 프랑스 총선도 예정에 없던 선거였다. 프랑스 국회의원 임기는 5년이고 원래대로라면 2027년에 총선이 있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6월 프랑스에서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국민연합(RN)’이 1위를 차지하면서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해산과 총선을 요구해 2년 만에 총선이 시행되었다.
프랑스는 대통령을 유권자들이 직접 선출하지만 총리는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 연합 소속 정치인을 임명한다.
대통령이 원내 다수파의 의견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어떤 세력이 원내 다수파가 되는가는 국정운영의 관건이 된다.
프랑스에는 정당이 많고 총선에서는 그 정당들 사이에 만들어진 연합이 기본 경쟁 단위가 된다. ‘르몽드’지에 따르면, 올해 프랑스 총선에 3개 이상의 선거구에 후보를 낸 정당들만 해도 289개가 넘는다. 이 많은 정당의 후보들이 선거구 사정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연합을 하고, 그중에서 전국규모로 후보를 낸 정당들의 연합이 원내 제1당을 다투며 경쟁하는 구조다.
프랑스에는 총 577개의 하원 국회의원 선거구가 있다. 선거구마다 1차 투표에서 총유효투표수의 25%가 넘으면서 50% 이상 득표한 후보가 있으면 당선을 결정하고, 없으면 12.5%를 넘은 후보들끼리 결선을 해서 당선자를 결정한다. 결선투표 경쟁자는 2명이 가장 많지만 3명 이상이 되는 선거구도 있다. 이번 총선은 역대 선거 가운데 가장 많은 3인 이상 경쟁 결선투표가 이루어졌다.
1차 투표에서 당선자가 확정된 선거구는 76개였고, 나머지 501석은 모두 결선투표를 통해 채워졌다. 501개 선거구 가운데 200개가 넘는 선거구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소속 정당 ‘르네상스’가 속한 정당 연합 ‘앙상블’과 사회당·공산당·생태주의자당 등이 연합한 ‘신인민전선’이 후보단일화를 했다.
결선투표까지 치른 최종 결과 신인민전선과 앙상블이 1·2위를 차지했다. 득표수만 놓고 보면 1차 투표나 2차 투표에서 모두 극우정당 연합인 ‘국민연합과 동맹’이 가장 많은 득표를 얻었다. 그런데 신인민전선과 앙상블의 선거연합 결과로 ‘국민연합과 동맹’은 제3당이 되었다.
비용 들지만 민주주의 안정성 확보
결선투표제는 선거마다 비슷한 노선이나 정책을 가진 정당들끼리 선거연합을 촉진하는 제도다. 1차 투표에서는 개별 정당들이 경쟁해서 유권자들의 표심을 확인하고, 결선투표에서는 필요에 따라 다양한 선거연합을 구성해서 국정운영의 기본 구조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반이나 과반에 가까운 득표를 한 당선자를 냄으로써 당선자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주는 것도 장점이다.
두번 투표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비판도 있지만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 규모에서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위해 충분히 투자해볼 만한 제도적 선택일 수 있다.